[고성군/정보]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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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고성 수동면에대해서 잘 문화재를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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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욱님의 댓글

고성군 수동면은 일부만 남쪽에 있어 문화재가 될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문화재를 올려드립니다.

(강원도 고성군의 문화재)

 

1.고성 건봉사 능파교

종 목  보물  제1336호  지 정 일 2002.02.06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냉천리 36)  시 대 조선시대

 

고성 건봉사의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아도 스님에 의해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이후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중수한 뒤 절의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라 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7년(1358년)에는 나옹 스님이 중수하면서 다시 건봉사라 이름하였다.

 

다리의 중앙부분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틀고 그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쌓아서 다리를 구성하였는데, 홍예는 하부 지름이 7.8m이고 높이는 기석의 하단에서 4.5m이므로, 실제 높이는 조금 더 높다.

 

조선 숙종 34년(1708)에 건립된 경내 불이문 옆의 '능파교신창기비'에 의하면 이 다리가 숙종 30년(1704)부터 숙종 33년(1707)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영조 21년(1745)에 대홍수로 붕괴되어 영조 25년(1749)에 중수하였고, 고종 17년(1880)에 다시 무너져 그 석재를 대웅전의 돌층계와 산영루를 고쳐 쌓는데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규모가 비교적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다리로, 축조연대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비석을 갖추고 있어 홍예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2.고성 육송정 홍교

종 목  보물  제1337호  지 정 일 2002.02.06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 1041  시 대 조선시대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의 경계에 있는 다리로, 하천의 폭이 12.3m 정도 되는 곳에 석축을 쌓고, 길이 10.6m의 다리를 놓았다. 현재 보존을 위해 다리 윗면에 목교(폭 3m)가 가설되어 있다.

 

홍예의 기초는 자연지형을 잘 활용하여 동쪽은 암반(높이 1.7m)을 그대로 이용하여 그 위에 홍예돌과 비슷한 크기의 장대석으로 1단의 지대석(높이 30㎝)을 두었다. 서쪽에서는 3단의 지대석을 쌓은 후 그 위에 홍예를 올렸는데, 1단에 2개씩의 장대석을 이어서 만들었다. 서쪽 지대석의 높이는 1단이 묻혀 있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단이 70㎝, 3단이 60㎝로 매우 거대하다.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능파교와 함께 을축년(1745년)의 대홍수로 붕괴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능파교(1704년)와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748년에 편찬된 《간성군읍지》에 육송정홍교가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어 능파교보다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축조한 단칸 홍예교로,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조선시대 석조 다리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3.고성 문암리 선사유적

종 목  사적  제426호  지 정 일 2001.02.05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1번지외  시 대 석기시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진리 1번지에 위치한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은 동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구릉지대의 남쪽사면 사구(沙丘)위에 형성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유적 중 최남단에 위치한 유적이며, 인근에는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여러 시기에 걸쳐 형성된 유적이다.

 

'98년 12월부터 '99년 3월까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전체 유적 중 약 200여평의 발굴조사를 한 결과 5개의 유물 포함층과 3개의 신석기시대 문화층이 퇴적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3기의 주거지와 야외 노지 등 다양한 유구가 발견되었다.

 

발굴유구와 출토유물로 볼 때 국내 최고의 신석기유적으로 알려져 있는 양양 오산리 유적(B.C.6000∼3000)과 연대가 비슷하고 최하층에서 발견된 유구는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한반도 동북지방과 중국의 동북 3성 지방, 러시아 아무르강 연안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의 신석기 문화와 한반도 선사인의 원류 및 이동경로, 당시의 문화계통과 전파정도 등을 밝히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4.고성 어명기 고택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31호   지 정 일 1984.01.10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봉수대길 131-7 (삼포리 551-1) 시 대 조선시대

 

현 주인 어명기의 2대조 어용수가 1860년대에 사들인 집이다. 약 400년 전에 이 터에 처음 자리잡은 집으로 화재로 불탄 것을 영조 26년(1750)경에 어태준이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경사진 언덕바지에 넓게 집터를 잡고 ㄱ자형의 몸채가 위치하고 왼쪽으로는 방앗간, 오른쪽으로는 행랑채, 뒤쪽으로 헛간채를 두었다.

 

몸채는 안채와 사랑채를 따로 짓지 않고 한 건물에 모두 시설하였다.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로 세줄겹집이다. 건물 왼쪽에 넓은 부엌과 외양간이 있고 중앙에 안방과 건넌방·대청이 자리잡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사랑방 3칸이 세로로 있다. 외양간을 부엌 앞으로 돌출시킨 것은 고성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평면형태이다. 부엌과 외양간 사이 간격에는 지붕을 설치하고 뒤쪽으로 뒤주를 붙박이하여 곡식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랑채 중 가장 앞쪽에 위치한 사랑방은 주인의 일상거처이며, 뒤쪽 2칸의 사랑방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이 집에서 주목되는 점은 더그매이다. 지붕과 천장사이에 나타난 공간을 더그매라고 하는데, 이 집에는 안방·웃방·가운데방 모두에서 더그매가 보인다. 필요할 때 집안물건을 넣어두는 보관장소로 사용되기도 하며, 지붕으로부터 내려오는 한기를 막기도 한다.

 

규모가 당당하며 건축기법이 능숙하고 옛 법식을 비교적 충실히 지니고 있는 모범적인 건축물이다.

 

 

5.고성 왕곡마을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235호  지 정 일 2000.01.07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길 35 (오봉리 413)  시 대 조선시대

 

동해안의 수려한 자연환경 속에 자리한 전통 한옥마을로, 14세기 경부터 강릉 함씨와 강릉 최씨, 용궁 김씨 등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고려 말에 함부열이 조선의 건국에 반대하여 은거한데서 비롯되며, 임진왜란으로 폐허화된 후 150여년에 걸쳐 형성된 마을이다. 함씨·최씨·진씨가 주를 이루고 이밖에 이씨·박씨·김씨·한씨·윤씨 등이 살고 있다.

 

19세기를 전후하여 지어진 기와집들은 모두 강원도 북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양통집이다. 이는 긴겨울의 추위를 견디기 위한 구조로, 특히 부엌 앞 처마에 외양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들은 원래의 모습대로 잘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자연경관 전통주택·농업위주의 생활 등이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전체에 잘 지켜져 오고 있어 전통 민속마을로 의미가 있다.  

 

6.청간정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동해대로 5110 (청간리 98) 시 대  조선시대

청간천 하구 언덕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중종 15년(1520)에 군수 최청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고종 21년(1884) 갑신정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2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누각형식 정자이다. 추녀 밑에 걸린 ‘청간정(淸澗亭)’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7.화진포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10호  면적 일원(2,389,843㎡)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 산24-1외 7필지 

동해안 최대의 호수로 둘레가 약 16㎞나 되며 명사십리에 버금가는 경치를 이루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서 이룩된 이 호수는 잉어 등 민물고기와 도미·전어와 같은 바닷물고기가 많아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 넓은 백사장과 아름다운 소나무로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또한 호수 주위에 피어 있는 해당화는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어 고성군의 꽃으로 지정되어 있다.

화진포는 동해안에서 모래빛이 하얗기로 유명하며, 최적의 해수욕장으로서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많이 찾아든다.

 

 

8.고성 건봉사지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51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냉천리 36)  시 대  신라시대

건봉사는 전국 4대 사찰의 하나로, 신라 법흥왕 7년(520) 때 아도화상이 지은 절이다. 처음에는 ‘원각사’라고 불렀으나, 이 절의 서쪽에 새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어 건(乾)과 봉(鳳)을 합쳐 ‘건봉사’로 바뀌게 되었다.

 

경덕왕 17년(758)에 발징화상이 고쳐 지었고,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나옹화상이 다시 고쳤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사명대사가 승병을 모집하였는데 모두 6,000여 명이 모여서 왜적을 무찔렀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불타 지금은 옛 절터만 남아있다.

 

 

9.건봉사 불이문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냉천리 36) 시 대 조선시대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된 건봉사 절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불이문은 해탈문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문이다. 건봉사터에 남아 있는 불이문은 1920년에 세운 것이다.

 

불이문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얹었다. 각각의 기둥에는 금강저 문양을 새겨 놓았으며 앞면 처마 밑에는 ‘불이문’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은 조선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스승이었던 해강 김규진이 쓴 것이다.  

 

10.고성 이덕균 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7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송지호로 198-12 (인정리 419) 시 대  조선시대

현 소유자의 고조부가 150년 전에 세웠다고 전하며 현재 3대손이 살고 있다.

 

ㄱ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으며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 2칸은 마루로 되어 있고 옆면에 사랑방과 골방이 있다. 부엌 앞에는 지형을 이용하여 본채보다 한단 낮추어 덧댄 외양간이 있다. 본채는 앞면에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부엌과 사랑방을 두고 마루 뒤로는 안방과 도장방을 두었으며, 뒷편에 헛간과 고방을 별채로 배치하였다.

 

세운 시기를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원래 구성리에 있던 것을 75년 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긴 것이다.   

11.고성 함정균 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8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길 52 (오봉리 375) 시 대  조선시대

고성 함정균의 집으로 19세기 중엽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 마을은 강릉 최씨와 함씨의 집성촌으로 소유자인 함정균은 21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앞면에 2칸 마루가 있고 그 뒤에 안방을 두었으며 옆면에 사랑방과 고방이 있는 영동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본채 오른쪽에 있는 사랑채는 사랑방 옆면에 아궁이가 있다. 또한 고방과 사랑방 사이의 벽을 바깥쪽으로 연결한 후 지붕을 덧달아 헛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본채는 ㄱ자형을 이루고 있는 가옥으로 뒤쪽에 툇마루가 있고 대청마루 안에 뒤주를 설치한 점이 특징이다. 앞에는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주변은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다.

 

12.간성향교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4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진부령로 2659 (교동리 664)  시 대 조선시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간성향교는 조선 세종 2년(1420)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그 위치는 성북 용연동으로 확인된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옮겼고,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지었다. 한국전쟁으로 향교의 건물이 다시 불타자 1954∼1956년에 대성전과 동·서재, 대성문을 지었다. 이어 1960년에 명륜당, 1966년에 동·서무를 다시 지었고 1982년에는 외삼문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 배치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재·서재가 있고, 그 뒤쪽으로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배치되어 있다. 1961년에 세운 앞면 4칸 규모의 명륜당 안에는 ‘간성향교외삼문창건기’를 비롯한 3개의 기문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건물은 세월이 흐르면서 불타거나 낡아서 다시 짓거나 고쳤지만, 처음 지을 당시의 위패는 지금까지도 잘 모시고 있다.

 

13.고성 화암사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4호 지 정 일 1990.09.07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화암사길 100 (신평리 산136-11) 시 대 신라시대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화암사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다.

 

조선 인조 1년(1623)에 소실되었다가 인조 3년(1625)에 고쳐 짓는 등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다. 고종 1년(1864)에는 지금 있는 자리인 수바위 밑에 옮겨 짓고 이름도 수암사라 하였다가 1912년에 다시 화암사(禾岩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국전쟁 때 다시 한 번 불에 타 훗날 법당만 다시 지었다. 1991년 세계 잼버리대회 준비를 위해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일주문,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부도군과 일부 계단석이 남아 있다. 

 

14.고성 합축교

종 목  등록문화재  제143호   등 록 일 2004.12.31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상리 214-1 외, 거진읍 대대리 6-1 외  시 대  현대

길이 216m, 폭 6m, 높이 5m인 총 25개의 교량으로 6·25전쟁을 전후로 남과 북에서 합작하여 건설했다. 그중 남쪽의 17개 교량은 1948년 북한의 강원도 인민위원회가, 북쪽의 8개 교량은 1960년 국군공병대가 완공했다.

6·25전쟁의 아픈 역사와 남북분단의 현실, 남북화해시대의 상징적인 구조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남북한 건설 공법의 차이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남과북이 건설한 시기는 다르나 남북한이 일부씩 만든 다리로 남북한 건설공법의 차이도 살펴볼 수 있는 점에서 의미있는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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