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군/기타] 철원의 인물 (유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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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숙제를 하는데요 철원의 인물 조사하기인데 딱 세분만 알려 주세요~~~ㅠㅠ 또 그 분의 관련된 내용 을 좀 적어주시면 ㄳ해요 부탁드림 또 철원의 관련된 시도 알려주시면 더 ㄳ해요 내공 10드릴테니 부탁드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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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2

크림냥님의 댓글

김 응 하 장군

김응하장군은 철원군 어운면(現 東松邑)하갈리에서 조선 선조 13년(서기1580년) 출생했으며 광해군 11년(서기 1619년) 당시의 명장으로, 자(字)는 경희(景羲), 시호(諡號)는 충무(忠武), 본관(本貫)은 안동이며 고려명장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그의 나이 14세에 부모를 여의고 아우 응해(應海)와 우애가 지극하여 향리(鄕里)에서 칭송이 자자했다. 25세에 무과에 급제, 병조판서 박승종(兵曹判書 朴承宗)에게 선발되어 선전관(宣傳官)이 되었고, 도원판관(度原判官)과 삼수군수(三守郡守), 복우후(伏虞候)로 있으면서 국경지대의 방비를 튼튼히 했다. 서기 1618년(광해군 10년) 건주위(建州衛)가 반란을 일으키자 명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도움을 청함에, 김응하장군은 서기 1619년 도원수 강홍립(都元帥 姜弘立)의 좌영장(左營將)으로 명나라에 들어가 명장 유정(明將 劉廷)의 군사와 합세하여 건주위 정벌에 종군했다. 이때 명나라 군사는 곤경에 빠져 유정(劉廷)은 자살하고 김응하장군은 부하 3천명을 거느리고 적군 6만과 대치하여 싸우다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적군에게 포위되어 몸에 수십대의 화살과 창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여 오랑캐들은 장군의 용맹과 충절에 감격하여 버드나무 밑에 장군을 묻고 유하장군 (柳下將軍 : 버드나무밑에서 전사한 장군)이라는 푯말을 세워주었다. 서기 1620년(광해군 12년) 명나라 신종황제는 장군에게 요동백(遼東伯)을 봉(封)하고 처자에게 백금(白金)을 하사했으며, 우리 조정에서도 충무공의 시호를 내리고 영의정을 추증하였다. 현종 7년(서기 1666년)에 철원읍 화지리에 사당을 짓고 이듬해 7월에 사액(賜額)하였으며 사당의 칭호는 포충사(褒忠祠)이다. 현재 동송읍 양지리 여우산(如愚山 : 一名 軍糧峰)기슭에 장군의 의관(衣冠)만으로 조성한 묘역(墓域)이 있다.

박 용 만 (朴 容 萬) [1881~1928.10.16]  한국의 언론인·독립운동가. 본관 : 밀양 호 : 우성  출생지 : 강원 철원 주요수상 : 건국훈장 대통령장(1995) 주요저서 : 《국민개병설》 본관 밀양(密陽). 호 우성(宇醒). 강원도 철원(鐵原)에서 출생하였다.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가 1906년 헤이스팅스대학에서 정치학과 군사학을 전공하고 1909년 네브라스카에서 한인소년병학교(韓人少年兵學校)를 설립하였다. 1911년 《신한민보(新韓民報)》 주필이 되어 《국민개병설(國民皆兵說)》을 저작하고 이듬해 네브라스카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아 하와이로 가서 대한인국민회의 《신한국보(新韓國報)》의 주필이 되었다. 1914년 대조선국민군단(大朝鮮國民軍團)을 창설하였으며 17년 뉴욕에서 열린 약소국동맹회(弱小國同盟會)에 참석, 이듬해 《태평양시사(太平洋時事)》를 창간하였다. 1919년 대조선독립단(大朝鮮獨立團)을 설립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총장이 되고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군사통일회(軍事統一會)를 조직하였다. 1925년 하와이에서 열린 국제신문기자대회에 한국인 대표로 참석, 활약하였으며 1927년 국어교본을 편찬, 교포의 국어교육에 이바지하였다. 1928년 베이징[北京]에서 흉한의 습격을 받고 살해되었다.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이태준

한국의 소설가. 호 : 상허(尙虛)·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국적 : 한국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강원 철원(鐵原) 주요저서 : 《가마귀》,《달밤》,《복덕방》 내용 호 상허(尙虛)·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강원도 철원(鐵原)에서 출생하였다. 휘문고보를 나와 일본 조치[上智]대학에 수학하였으며, 《시대일보(時代日報)》에 《오몽녀(五夢女)》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하였고, 이후 이화여전 강사,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 학예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가마귀》 《달밤》 《복덕방》 등의 단편소설은 인물과 성격의 차분한 내관적(內觀的) 묘사로 토착적인 생활을 부각시켜, 완결된 구성법과 함께 한국현대 소설의 기법적인 바탕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작중 인물들은 회의적·감상적·패배적 성격으로 부각되어 작품 전체가 허무와 서정에 깊이 침윤되었지만, 때로는 그 속에서 현실과 밀착된 시대정신에의 추구를 지향하기도 했다. 《문장(文章)》지를 주관하다가 8·15광복 직전 철원에서 칩거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포섭되어 활약하다가 월북하였다. 그의 단편 《해방전후(解放前後)》(1946)에서 이러한 문학적 변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작품에는 앞에 든 것 외에 소설집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딸 삼형제》 《사상(思想)》 《해방전후》 등이 있으며, 문장론 《문장강화(文章講話)》가 있다.

정호승작 철원역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어느 겨울날 흰눈을 맞으며 원산을 떠나 서울로 가는 새벽 첫차를 기다렸다 죽은 들풀들이 죽어서 다시 사는 들녘에서 금강산 장안사로 간 아버지를 기다렸다 철원역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함박눈을 맞으며 서울을 떠나 원산으로 가는 밤열차를 기다렸다 월정역을 지나 평강역을 지나 원산에 내리면 지금 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재두루미들이 무심히 사라진 하늘을 보며 언제나 그리운 그대를 생각했다 도움이 되셨는지요...

퀸줄리아님의 댓글

.. ㅡㅡ

질문과 카테고리가 성격이 안맞네요 ;;

다시 올려주심 되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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