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군/정보] 정선군 임계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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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에 대해서 문화재를 조사해 가는 게 사회 숙제인데요

아무리 찾아봐도 제대로 정리된 게 없네요ㅇㅅㅇ.....

3일 밤 새가면서 했는데 건진 게 없어요 오또카지....?

문화재 좀  적어주세요!

내공 200 드리구여, 내공 얌얌 신고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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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의 문화재)

 

1.정선 백복령 카르스트지대

종 목  천연기념물  제440호  면 적 543,000㎡(지정구역) 지 정 일 2004.04.09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서동로 5931 (직원리 산1-1) 외 

한반도의 캄브리아기-오르도비스기의 조선노층군의 석회암 지대에는 카르스트지형이 발달한다. 이들 중 백복령 카르스트 지대는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로서 백두대간 상에 놓여 있어 큰 의미를 갖는다. 이곳에는 카르스트 지형의 특징 중 하나인 돌리네와 폴리에가 분포한다. 대부분의 돌리네는 대체로 넓이에 비해서 깊이가 아주 얕은 형태이며, 폭은 수 m를 갖는 작은 규모로부터 수십여 m에 달하는 것까지 발달된다.

특히 임계면 가목리 북쪽 능선 주위에는 50여개의 크고 작은 돌리네가 있다. 이 지역에 발달한 돌리네를 비롯한 카르스트지대의 영향으로 지하에 스며든 유수나 빗물들은 산계리 지역으로 흘러나와 계곡수 또는 용천수와 같은 샘물을 이루는 것으로 추정된다. 백복령일대는 다른 카르스트 지대와 달리 경작지로 이용되기보다는 식생으로 덮혀 있다. 그러나 부근에 석회석 광산이 성업 중에 있어 이 지역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백복령 카르스트 지대는 지질학적 특징이 일정한 면적에 집중적으로 발달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뿐 만 아니라 자연학습장으로서 가치도 높다. 

 

 

2.외재 이단하 내외 옷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4호  지 정 일 1965.10.12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수고당길 110 (봉산리 216)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중기의 문신 이단하 선생의 옷과 그의 부인이 입었던 옷, 그리고 그에 따른 머리 장식품들이다. 이단하(1625∼1689) 선생은 송시열 선생의 제자로 현종 3년(1662)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숙종 때에는 우의정, 좌의정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재직할 때에는 청렴하기로 이름이 났고 죽은 뒤에는 그의 학문과 충성심을 높이 여겨 나라에서 ‘문충(文忠)’이란 시호를 내렸다.

 

이 유품은 좌의정 시절 그가 입었던 중치막 1점과 정경부인으로서 그의 부인이 입었던 대례복 1점, 누비저고리 1점, 그리고 머리 장식물인 봉대 1점, 다리 1점, 도투락댕기 1점, 용잠 1점 등 모두 7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치막은 사대부들이 관복 속에 입거나 겉옷으로 평소에 입는 옷인 창의의 일종으로, 지금의 두루마기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동정이 없고 소매가 넓고 길며 옆이 터져있는 흰 모시로 만든 겉옷이다.

 

대례복은 녹색으로, 어깨와 밑부분에 금실로 수놓은 넓은 단이 있고 안쪽은 붉은색으로 선이 둘러져 있다. 뒤가 앞보다 길고 소매가 길고 넓으며, 소매 끝에는 홍·황색의 줄과 덧댄 소매인 흰색의 한삼이 붙어 있다. 이 대례복을 입을 때 큰 머리를 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103㎝나 되는 가발과 자주색 바탕에 금박을 입힌 도투락댕기, 동에 금을 입힌 용무늬가 있는 비녀, 그리고 붉은색 바탕에 봉황무늬를 금박한 봉대 등은 함께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외 누비저고리는 방한용으로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대에 따라 복식은 양식이 달라지는데 이것들은 시대와 착용자를 알 수 있는 것으로, 조선 중기의 복식 형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3.정선 수고당 고택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88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수고당길 110 (봉산리 216)  시 대 조선시대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옛집으로,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자가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것이라 한다.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며, 90여 년 전에 안채를 크게 수리하였다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었고, 동남향을 하고 있다. 1m 정도의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지었으며,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안채는 영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겹집형에, 영서·중부지방에서 일반적인 대청과 건넌방이 ㄱ자형으로 접하여 있다. 대청에는 모두 문을 달았고, 건넌방과 대청·안방부분에도 툇마루를 달아 외부와 연결을 주었다.

 

부엌의 앞면에서 광·외양간과 대문·사랑채가 ㄷ자형으로 이어졌다. 사랑채는 큰사랑·작은사랑·서함·대청·머슴방으로 구성되었고, 특히 외양간이 대문 오른쪽에서 돌출된 것이 특이하다. 사랑채의 대청에도 문을 달았고, 앞뒷면에 툇마루를 두어 시원한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사랑채의 서쪽에는 별채인 수고당이 있으며, 대청·작은마루·다락·서고로 구성되어 있다. 수고당에는 외재 이단하 내외분의 옷(중요민속자료 제4호)이 있어 조선시대 의복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이 외에 각종 시문초고·교지 및 전적과 간찰·서화가 보존되어 있다.

 

4.정선 송계리산성 및 고분군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70호

지 정 일 1995.03.09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송계리 산80  시 대 삼국시대

송계리의 앞산 능선에 삼척시를 바라보며 지어진 성과 그 주위에 분포한 무덤들이다.

 

송계리산성은 강릉·동해지역으로부터 정선으로 넘어오는 길목인 삽당령과 백복령이 한 눈에 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 성은 경사가 심한 구릉의 동쪽면에 외벽만 돌로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채운 내탁산성으로 비교적 일직선으로 쌓았다. 남쪽 성벽의 끝부분에서 구릉은 급격히 낮아져 다시 능선을 형성하는데, 이곳을 따라 4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모두 도굴되어 돌덧널(석곽)이 노출되어 있는데 1기의 대형무덤만 내부를 확인할 수 있다. 확인된 내부구조는 앞트기식돌덧널무덤(횡구식석곽묘)이다.

 

산성과 무덤은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산성 안쪽에도 무덤이 안치되어 있어 무덤이 산성보다 늦게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산성과 무덤주변에서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편들이 수습되었으나, 산성이 정확하게 지어진 때를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랑채는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집으로, 마구간·대문간·부엌·방·사랑방·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앞에는 원래 대문간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기와담을 쌓아 사랑채에서 안채를 볼 수 없도록 하였다.

 

5.난포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마산봉  시 대  현대

조선조 숙종때 사정 공조참의를 역임한 수고당 이자선생이 정선에 낙향하여 본인의 호를 따 지은 건물로 문서편찬을 하던 곳이며 이위 가옥(동막댁) 의 외곽에 있는 별당 건축물이다.장대석 두겹대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두고 각 기둥을 세웠으며 굴도리의 오량가 팔작기와 지붕양식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축물로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전면 한칸은 퇴청 형식이며 서고로 사용하는 석실이 지하 우측 한칸에 있다.

석실은 3m×1.8m, 깊이 1.9m 크기로 천장, 벽, 바닥이 30cm 두께의 강회다짐 마감이고 특히 바닥은 화강석 위 강회다짐을 한 후 물매를 두어 천장의 결로에 대비하였으며 천장 상부는 다락으로 사용하고 있어 목재로 되어 있으나 다시 강회로 마감하여 화재에도 안전하게 되어 있다.

벽은 흙벽 위 회벽 마감이고 보와 도리는 둥글게 다듬은 목재에 장혀를 두었고 대들보는 50cm 굵기로 견실함을 보여주고 있다.

창호는 상·하에 머름이 있는 네짝 분합문이며 북쪽은 두짝 여닫이 올거미줄로 짜여있다. 1987년 국비지원 사업으로 전면해체, 보수하였다.  

 

6.임계 구미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 3리   시 대  조선시대

남한강 상류인 임계천 변에 소재한 구미정은 조선조 숙종때 사정(寺正) 공조참의를 역임한 「수고당 이자 선생」이 정선에 낙향하여 지은 건물이다. 단층 목조건물로 팔작기와지붕이다. 자연석 주초석에 사각 기둥을 세우고 장 마루를 설치하였다. 고적대를 바라보는 암석 위에 주변의 경치를 전망할 수 있게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건축하였으며, 정자 내부에는 2칸에 걸쳐서 온돌 바닥의 벽체가 있는 방을 둔 보기 드문 양식이나 지금은 벽체가 없고 기둥만 남아있다. 아궁이와 굴뚝이 측면에 설치 되어 있었다. 온돌방은 천장이 고미반자이고 그 이외 부분은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반자이다.

방의 출입문 위 상인방에 구미정 현판이 걸려있고 방 외부 우측에 구미 십팔경의 목록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구미정은 자연을 벗 삼으며 공부하기 위하여 온돌방을 배치한 특이한 예이며, 1946년 중수하였다.  

 

7.정선 함재환 효자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골지1리   시 대   일제강점기

함재환(1880∼1930)은 함병태의 4남매 중 둘째아들로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골지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가정이 가난했고 부친이 방탕한 생활로 허송세월하자 모친과 함께 강릉을 왕래하며 날품팔이 행상 등으로 부친의 병환시중을 하여 극진이 모셔 이에 감탄한 마을 주민이 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8.정선 최정일 효자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반천1리 양어장   시 대  현대

최정일은 어려서부터 소문난 효자로 부모님을 정성을 다해 극진히 모셨다.

어느 날 부친이 병으로 누워 사경을 헤맬 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함으로써 생명을 연장 시켰으며 부친이 돌아가시자 묘소 옆에 움막을 지어 놓고 근신을 하였다. 이런 그의 효행을 알리고자 건립하였다.  

 

9.정선 안동 김씨 열녀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용산1리   시 대  현대

안동김씨 기영의 장녀로 화암면 건천리에서 출생하였고 임계면 용산리 박병은과 20세에 혼인하여 시집온지 7개월만에 남편이 뚜렷한 병명없이 병상에 눕자 이를 극진히 간호하였으나 백약이 듣지 않았다. 남편이 사망하자 상복을 입고 삼년간을 시묘하였다. 시동생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양자로 들여 평생을 수절하며 생활한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이 건립하였다  

 

10.정선 박문언 효자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임계1리   시 대  조선시대

150여년전 박문언과 열녀인 박하균의 처 파평윤씨의 효행과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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