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군/정보] 양양군 현남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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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군 현남면에는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알려주세요. 꼭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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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엄마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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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군 현남면의 문화재)

 

1.양양 포매리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

종 목  천연기념물 제229호

지 정 일  1970.11.09

소 재 지  강원도 영양군 현남면 포매리 122-3

백로는 열대에서 온대에 이르는 전세계에 널리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에서 번식한다. 하천·호수·간석지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는데, 주로 소나무·은행나무에서 집단 번식한다. 왜가리는 우리나라의 백로과 조류 중에서 제일 큰 새로서, 우리나라 전지역에 걸쳐 번식하는 여름새이다. 그러나 일부 적은 무리는 텃새로서 우리나라의 남쪽지방과 섬지방에서 겨울을 나기도 한다. 논·하천·해안·간석지에서 살며, 개구리·물고기·뱀 등을 잡아 먹는다. 양양 포매리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에는 70∼150년 정도 된 20∼25m높이의 소나무가 약 500그루되는 숲이 있으며, 백로와 왜가리는 이곳에 둥지를 틀어 번식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전체 숫자가 2,000마리 이상 되었으나, 현재는 농약의 살포 및 각종 생활환경이 악화되고 소나무 또한 새들의 배설물로 점차 줄어들어 그 수가 감소되고 있다. 양양 포매리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는 동해안의 최대 번식지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2.양양 김택준 가옥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0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창리길 4 (시변리 29-12)  시 대 조선시대

야산을 뒤로하고 있는 이 집은 마을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집을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약 200년 정도 되었다고 하며, 현재 경주 김씨의 후손이 살고 있다.

 

전체적으로 H자 모양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겹집으로, 안채와 사랑채·부속건물로 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고, 부속채는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안채는 6개의 방이 겹쳐서 배치되었고, 그 오른쪽으로 샛방을 만들어 사랑채와 연결하고 있다. 사랑채 2칸은 외부에 툇마루를 놓아 연결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안채의 왼쪽에는 부엌이 있고, 그 앞쪽으로 곳간과 외양간을 덧붙였다. 부엌과 덧붙어 있는 방은 사당으로,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마당의 왼쪽에는 옛날에 사용하던 우물이 남아있고, 뒷쪽에는 야산을 파고 돌로 벽을 만든 약0.5평 정도의 냉장굴이 있다. 마당에는 두 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남녀가 따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3.양양 김성래 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9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북분안길 106-9 (북분리 391)  시 대 조선시대

김해 김씨 17대 손이 살고 있는 가옥으로 현 소유자의 14대 조부가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본래 초가였던 것을 60년전 기와로 바꿨다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어 있는데 안채는 양양지방에 남아있는 북방계통의 집이다. 왼쪽으로 넓은 부엌을 배치하고 오른쪽으로 가운데를 갈라 나눈 뒤, 다시 구획하여 6개의 작은 방을 만들었다. 부엌 앞으로 내밀어 지은 외양간은 창고로 개조하였다.

 

사랑채는 나중에 늘려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안채와 달리 큰 방 셋을 마련하고 밖으로 툇마루를 두어 방과 방이 서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대문은 전형적인 솟을대문으로 대문의 왼쪽에 마구간과 광이 있다. 출입로 오른쪽에 연꽃이 있는 방지가 있어 사랑채 앞쪽 지붕선과 함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4.양양 조규승 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0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포매리 106-1  시 대 조선시대

현 소유자의 10대조가 세운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는 ㅁ자형 평면을 가진 집이다. 집을 지을 당시에 현재 사랑채로 사용되는 건물을 먼저 짓고 그 뒤에 안채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넓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 옆에 방과 부엌을 배치하였다.

 

사랑채는 가운데 방 3칸을 배치하고 앞면에 툇마루를 놓았다. 툇마루 양 옆으로는 부엌과 창고를 마련하였다. 창고는 공간을 넓게 확보하기 위하여 앞으로 내밀고 앞면은 누마루 형태로 건물을 높였으며 방 앞쪽으로 툇마루를 놓았다.

 

가옥이 ㅁ자형 배치이므로 폐쇄된 안마당을 가지고 있고 출입구와 함께 건넌방과 아래사랑 사이에 좁은 문이 있어 작은 출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집이지만 3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5.양양 후포매리 산성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후매포리 시 대  신라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후포매리에 위치한 이 산성은 신라시대의 기단석축형 토성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토루 상면에는 할석과 흙을 피보·축조하여 경주 월성과 비교할 수 있다. 산성 내에서 수습된 신라 토기편들로 볼 때 이 산성은 신라 진흥왕의 북진기 이전에 축조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산성은 고도가 높고, 험한 산봉우리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처음에는 변방의 군사적 거점으로 만들어져 고구려에 대항하거나, 교통로·보급로 확보, 지방통제 및 변경 감제, 외부의 공격에 대한 방어 등의 기능을 하였을 것이다. 이후 이 산성은 『삼국사기』지리지에 나오는 명주의 직속 영현인 동산현의 치소 또는 치소의 배후성으로 활용되었다.

산성 내에서 다량으로 보이는 경주산 토기들은 사료에 보이는 지방관이나 군관의 파견 기사, 사민 기사 등 신라 중앙세력의 다양한 지방 지배 방식과 관련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후포매리산성은 군사적 거점으로 산봉우리에 축조하였고, 주변에 적석목곽묘 고분군이 존재하지 않아 군관의 파견 및 주둔군으로 볼 수 있는 적극적인 해석도 가능할 듯하다.

지금까지 강원도 동해안의 고고학적 조사는 신라고분 자료가 대부분이었으나, 이 후포매리신라 산성은 현재 남한의 동해안 지역에서는 가장 북쪽에서 발견되었으며, 앞으로 신라의 동해안 진출과 지배양상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데,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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