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정보]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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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의 유형,무형문화재좀요-!!
사진이랑 간단한 설명도 올려주시면 감사합니다!
제발 빨리요-!!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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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의 문화재)
1.고성 문암리 유적
종 목 사적 제426호
지 정 일 2001.02.05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1번지 외
시 대 석기시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진리 1번지에 위치한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은 동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구릉지대의 남쪽사면 사구 위에 형성되어 있는데, 인근에는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여러 시기에 걸쳐 형성된 유적이다. '98년 12월부터 '99년 3월까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전체 유적 중 약 200여평의 발굴조사를 한 결과 5개의 유물 포함층과 3개의 신석기시대 문화층이 퇴적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3기의 주거지와 야외 노지 등 다양한 유구가 발견되었다. 또한 제3차 조사에서는 신석기 시대 주거지 5기, 야외노지 13기 등의 유구와 함께 경작유구인 '밭'이 확인되었으며, 밭과 함께 경작과 관련된 유물도 다량 출토되었다. 발굴유구와 출토유물로 볼 때 국내 최고의 신석기유적으로 알려져 있는 양양 오산리 유적(B.C.6000∼3000)과 연대가 비슷하고 최하층에서 발견된 유구는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한반도 동북지방과 중국의 동북 3성 지방, 러시아 아무르강 연안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의 신석기 문화와 한반도 선사인의 원류 및 이동경로, 당시의 문화계통과 전파정도 등을 밝히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2.고성 어명기 고택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31호
지 정 일 1984.01.14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봉수대길 131-7 (삼포리 551-1)
시 대 조선시대
현 주인 어명기의 2대조 어용수가 1860년대에 사들인 집이다. 약 400년 전에 이 터에 처음 자리잡은 집으로 화재로 불탄 것을 영조 26년(1750)경에 어태준이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경사진 언덕바지에 넓게 집터를 잡고 'ㄱ'자형의 몸채가 위치하고 왼쪽으로는 방앗간, 오른쪽으로는 행랑채, 뒤쪽으로 헛간채를 두었다. 몸채는 안채와 사랑채를 따로 짓지 않고 한 건물에 모두 시설하였다.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로 세줄겹집이다. 건물 왼쪽에 넓은 부엌과 외양간이 있고 중앙에 안방과 건넌방·대청이 자리잡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사랑방 3칸이 세로로 있다. 외양간을 부엌 앞으로 돌출시킨 것은 보통 고성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평면형태이다. 부엌과 외양간 사이 간격에는 지붕을 설치하고 뒤쪽으로 뒤주를 붙박이하여 곡식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랑채 중 가장 앞쪽에 위치한 사랑방은 주인의 일상거처이며, 뒤쪽 2칸의 사랑방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이 집에서 주목되는 점은 '더그매'이다. 지붕과 천장사이에 나타난 공간을 더그매라고 하는데, 이 집에는 안방·웃방·가운데방 모두에서 더그매가 보인다. 필요할 때 집안물건을 넣어두는 보관장소로 사용되기도 하며, 지붕으로부터 내려오는 한기를 막기도 한다. 규모가 당당하며 건축기법이 능숙하고 옛 법식을 비교적 충실히 지니고 있는 모범적인 건축물이다.
3.고성 왕곡마을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235호 지 정 일 2000.01.07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길 35 (오봉리 413) 시 대 조선시대
동해안의 수려한 자연환경 속에 자리한 전통 한옥마을로, 14세기 경부터 강릉 함씨와 강릉 최씨, 용궁 김씨 등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고려 말에 함부열이 조선의 건국에 반대하여 은거한데서 비롯되며, 임진왜란으로 폐허화된 후 150여년에 걸쳐 형성된 마을이다. 함씨·최씨·진씨가 주를 이루고 이밖에 이씨·박씨·김씨·한씨·윤씨 등이 살고 있다.
19세기를 전후하여 지어진 기와집들은 모두 강원도 북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양통집이다. 이는 긴겨울의 추위를 견디기 위한 구조로, 특히 부엌 앞 처마에 외양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들은 원래의 모습대로 잘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자연경관 전통주택·농업위주의 생활 등이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전체에 잘 지켜져 오고 있어 전통 민속마을로 의미가 있다.
4.고성 이덕균 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7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송지호로 198-12 (인정리 419)
시 대 조선시대
현 소유자의 고조부가 150년 전에 세웠다고 전하며 현재 3대손이 살고 있다. ㄱ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으며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 2칸은 마루로 되어 있고 옆면에 사랑방과 골방이 있다. 부엌 앞에는 지형을 이용하여 본채보다 한단 낮추어 덧댄 외양간이 있다. 본채는 앞면에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부엌과 사랑방을 두고 마루 뒤로는 안방과 도장방을 두었으며, 뒷편에 헛간과 고방을 별채로 배치하였다. 세운 시기를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원래 구성리에 있던 것을 75년 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긴 것이다.
5.고성 함정균 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8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길 52 (오봉리 375)
시 대 조선시대
고성 함정균의 집으로 19세기 중엽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 마을은 강릉 최씨와 함씨의 집성촌으로 소유자인 함정균은 21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앞면에 2칸 마루가 있고 그 뒤에 안방을 두었으며 옆면에 사랑방과 고방이 있는 영동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본채 오른쪽에 있는 사랑채는 사랑방 옆면에 아궁이가 있다. 또한 고방과 사랑방 사이의 벽을 바깥쪽으로 연결한 후 지붕을 덧달아 헛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본채는 ㄱ자형을 이루고 있는 가옥으로 뒤쪽에 툇마루가 있고 대청마루 안에 뒤주를 설치한 점이 특징이다. 앞에는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주변은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다.
6.송호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 산22-1
시 대 현대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산 167번지 용소두봉에 위치하고 있는 송호정은 1959년 10월3일 당시의 최창길 면장이 하 이원섭 창건 기성회장 지방독지가들의 성금에 의해 건립되었다. 송호정은 그 주변이 울창한 송림과 송지호의 청명한 호수 와 함께 어우러져 동해의 푸른 망망대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물빛이 청명한 호수에는 많은 어족과 갯조개가 서식하 고 있어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은 겨울철새인 천연기념물 201호 고니와 청동오리등 이름 모를 철새의 도래지로서 장관을 이루어 많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그 규모와 건축양식의 형태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형식의 정자로서 초석은 네모난 화강석의 상부(H:18㎝)4각형으로 그냥 두었다. 초석의 상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아 정자 바닥을 완성하였고 마루의 중앙부분 아래에 같은 모양의 초석을 두어 마루를 받치게 했다.
마루에서 24㎝ 높이에 15×8㎝의 각재를 사방으로 둘러난간 구실을 하고 있으며 천정의 상부는 우물정자 천정+ 빗천정으로 되어 있고 판자로 내부천정을 마감하였다.
네 귀에는 주두를 얹어 귀포를 두었고 각 중간기둥과의 사이는 들보에 의해 연결되어 천정 아래에서“+”자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간과 간 사이에는 화반소로가 도리위에 얹혀 있는 형식으로 축조 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의 풍상으로 일부가 노후되어 지난 94년도 군에서 문화재 정비사업의 하나로 노후된 정자를 해체 복원하여 지역 주민들은 물론, 이곳을 오가는 여행객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천혜의 경관과 자태를 뽐냈으나 96년도 4월 23~24일 이틀간 토성, 죽왕면 일대의 산불의 대화란으로 불길을 막지못하고 안타깝게도 이곳의 천년 송림과 더불어 송호정이 잿더미로 불에 타 사라져 버렸다. 그후 97년도 5월 군비를 들여 복원하여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7.함희석 효자각
종 목 비지정문하재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396
시 대 조선시대
희석의 아버지인 덕인은(조선 순조 28년 무자 3년 서기 1828년 5월10일생~경신년 서기 1860년3월1일 졸수는 33세)3형제를 두었으며 희석은 그의 장남이였다.
어렸을때부터 천성이 온후하여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였으며 가세가 빈곤하여 하고 싶었던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집안 일을 도맡아 하여 왔으며 항상 부친이 술을 좋아하였으므로 10여세의 어린 소년이지만 혹시 부친에게 실수나 유고가 있을까봐 늘 걱정이 되어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찾아 다니며 효행 봉양하였다. 무오년 겨울 부친이 병환으로 앓아 눕게되자 엄동설한에 얼음은 깨고 잉어를 잡아다가 약으로 봉양하여 다시 소생케 하였으며 경신년 서기 1860년 2월 천화가 나서 영동 구읍이 일시에 화란이 일어나던 때 부친이 술에 취하여 귀가 도중 길가에서 잠들었다가 큰 화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성으로 간호하였다고 한다. 그때 당시 희석의 나이는 16세였었다.
동년 경신년 3월 1일 서기 1860년 부친의 상을 입고 3년간이나 묘앞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술과 과일을 차려 놓고 밤에는 범의 호위 아래 시묘하였다.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으로부터 정여를 하사받았다. 『효자전통대부돈영부도정』 희석은 조선조 헌종 12년 10월7일에 출생하였으며 서기 1918년 10월 14일 졸하였다. 자는 사언이요 호는 오헌 이요 묘는 공현진 선유담에 있다. 슬하에는 영두, 영준, 영우를 두었다.
8.고성 양근 함씨 4세 효자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374
시 대 조선시대
동몽교관 함성욱은 부친인 함취관이 병환으로 위독하게 되자 단지하여 피를 먹여 7일을 더 연명케 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를 선양하여 조봉 대부의 작위를 내렸다.
그뒤함성욱의아들함인흥과함인홍형제,함인호의아들함덕우,함덕우의아들함희룡에이르기까지4대에걸친5효자가모두단지하여부친의생명을연장하였으며,아울러3년의시묘를함으로서국가에서는보기드문효자가문이라하여작위와벼슬을내렸으며,이를후세에길이전하고자1820년효자비를건립하고"사세오효자가"이라명명하였다.
현재의효자각은1984년에건립되었으며,효자각의양기둥안쪽으로홍살문이별도로설치되어그안쪽으로효자비가배치되었으며,한가운데상돌이놓여있다.5기의효자비는각각그이면에효자의효행과행장을기술하고있다.비각은정면1칸,측면1칸(210cm×210cm)의팔작지붕이다.
비각의 초석은 화강암제로 장란의 한쪽을 절단한 형태이다. 비는 모두 1984년에 오석을 사용하여 다시 새겨 만든 것이다. 주변은 석축을 하고 기와를 없어 보존관리가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