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군/정보] 평창군 대화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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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군 대화면의문화재점요급해욤빨리빨리내공200걸어요!!사진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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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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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대화면의 문화재)

 

1.최한성 효자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대화5리 경강국도변 시 대  일제강점기

1925년 효자 최한성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효자비이다. 비의 크기는 148×75×6cm으로 비각 안에 자리하고 있다.

최한성(은 조선 후기에 무과에 급제하여 공조참판, 부총관을 역임한 인물로 효성이 지극하여 성균관에 그의 효행이 상달되기도 하였다. 그의 나이 71세에 병환에 계신 홀어머니가 생선을 먹고 싶다고 했으나 겨울철이라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애를 태우며 강가에 나가 기원하였더니 잉어 한 쌍이 얼음 위로 뛰어올랐다고 한다. 부친상을 당했을 때도 3년 간 시묘살이를 했었는데, 마을 사람이 어리고 약한 그를 생각하여 가까운 곳에 장사를 지내려 했으나 한사코 말려 그의 뜻대로 묘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2.박진명 처 정씨 효열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하안미리  시 대  일제강점기

평창 대화면 하안미리 국도변에는 박진명의 처 정씨 효열비가 서 있다.박진명의 부인 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25년 효열비와 비각이 건립되었고, 2008년 비각을 수리하였다.

정씨는 천성이 온후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시부모의 산소 옆에 누군가 시체를 암매장한 것을 알게 되었다. 정씨 부인은 이 암매장한 시체를 파서 관가에 고발하여 시부모의 산소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이러한 효부의 착한 뜻을 기리기위해 정려를 내려 비를 세우게 하였다.  

 

3.위흥연 효자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하안미리 시 대  조선시대

1824년(순조 24) 효자 위흥연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효자비이다. 효자비는 비각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92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비의 크기는 129×58×10cm로 최근 보수공사를 통해 새롭게 단장하였다.

위흥연의 효행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위흥연은 병환이 심한 아버지가 연어고기를 먹고 싶다 하자 새벽에 150리 길을 걸어 연어고기를 구해 돌아오던 중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가 그의 앞을 막자 “나는 병환이 위중한 아버님께 생선을 구해 오는 길인데 네가 나를 잡아먹으려면 나를 잡아먹은 후에 이 생선을 집에까지 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호랑이가 감동하여 그를 태우고 쏜살같이 그의 집 마당까지 업어다 주었고 위흥연은 아버지께 연어고기를 봉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간 시묘생활을 했으며 밤마다 호랑이가 와서 그를 지켜주었다고 한다.  

4.평창 하안미리 돌무지무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하안미리

시 대  철기시대

평창강 동쪽에 자리한 하안미6리의 논 가운데 위치한다. 자갈돌을 쌓아 만든 무덤으로 철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은 일명 ‘예담평’이라 부르며, 임진왜란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무덤은 긴 타원형으로 위쪽이 많이 파괴되었다. 크기는 남북 지름 65m, 동서 지름 26m, 높이 1.5~2.3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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