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군/정보] 영월군 무릉도원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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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의 무릉도원면에 지금 존재하는 옛날 문화재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는가요??
친절하게 답변 해주셨으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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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비누향기님의 댓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의 문화재)
1.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 탑비
종 목 보물 제612호 지 정 일 1977.08.22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352 (법흥리 422) 시 대 고려시대
흥녕사를 크게 발전시킨 징효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석비로,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리고, 그 위에 용머리가 조각된 머릿돌을 얹었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에 가깝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특히 발가락과 발톱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어 눈에 띈다. 반구형에 가까운 등은 길쭉한 6각무늬로 채워져 있으며, 중앙에는 비를 꽂아두는 네모난 홈을 마련해 두었다. 머릿돌에는 네 마리의 용이 중심을 향해 마주보고 있다. 눈, 코, 입은 사실적으로 새겼으나 몸에 표현된 비늘은 약하게 새겨져 형식에 그치고 있다.
비문에는 징효의 출생에서부터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이 실려있다. 비문에 의하면 징효는 19세에 장곡사에서 승려가 되어 75세 되던 효공왕 5년(901)에 입적하였다. 끝부분에는 대사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도 새겨져 있다.
이 비는 대사가 입적한지 44년 후인 고려 혜종 원년(944)에 세워진 비로, 글은 최언위가 짓고 최윤이 글씨를 썼으며 최오규가 비에 새겼다.
2.영월 무릉리 요선암 돌개구멍
종 목 천연기념물 제543호
면 적 35,927.50㎡
지 정 일 2013.04.11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275-25 (무릉리 1423)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하식기원 돌개구멍들이 화강암반 하상 위에 폭넓게 발달되어 있어, 하천의 윤회와 유수에 의한 하식작용 등을 밝힐 수 있는 학술 가치가 크며, 여러 개의 돌개구멍이 복합적으로 발달된 지형자체가 가지는 경관 가치도 우수하다. 요선암은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문예가 봉래 양사언이 평창군수 시절, 이곳의 풍광을 즐기며 암반위에 ‘요선암’이라고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돌개구멍(Pot Hole)은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 구멍’이란 의미로 하천에 의해 운반되던 자갈 등이 오목한 하상의 기반암에 들어가 유수의 소용돌이와 함께 회전하면서 기반암을 마모시켜 발달하는 지형. 보통 하천의 상류지역에서 빠른 유속과 큰 에너지를 바탕으로 형성된 와지에 자갈이나 모래와 같은 퇴적물질이 들어가, 와동류(회오리가 이는 듯한 물살)에 의해서 반복적인 회전운동을 통해 포트 홀 내벽을 침식, 점차 포트 홀이 성장하게 되며, 지속해서 내벽 및 하부침식이 일어나 커다란 항아리 모양으로 기반암을 파게 됨. 주로 사암이나 화강암과 같은 등질성의 단단한 암석에서 잘 발달하며, 형태로는 원형이나 타원형이 다수를 차지한다.
3.영월 징효국사 부도 (영월 징효국사 승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318-6 (법흥리 산5-3) 시 대 고려시대
통일신라의 승려인 징효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이다. 징효국사는 19세에 탁월한 총명으로 수행을 시작하여 효공왕 4년(901)에 75세로 입적하였다. 철감선사 도윤의 제자였으며 경문왕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부도는 기단부 위에 탑신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었으며, 각 부분이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의 세부분으로 나뉜다. 아래받침돌에는 각 면에 안상을 1구씩 얕게 새겼다. 가운데받침돌은 각 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둥근 윗받침돌은 연꽃무늬를 둘러놓았다. 탑신의 몸돌은 아래윗변의 모서리를 약간 죽인 듯 처리하였는데, 앞 뒷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안에 자물통 모양을 표현해 놓았다. 지붕돌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여덟 귀퉁이마다 꽃장식이 높게 달려 있다. 꼭대기에는 지붕을 축소한 듯한 장식 위로, 공모양의 장식이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으나, 두꺼운 지붕돌표현, 지붕돌의 높은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4.영월 법흥사 부도(영월 법흥사 승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352 (법흥리 산422-4) 시 대 고려시대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이 부도는 법흥사 적멸보궁 뒤쪽에 놓여 있는 것으로, 모신 사리의 주인공은 아직 밝혀 지지 않았다.
형태는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부 위에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추었으며,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넓고 네모진 바닥돌 위에 놓인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안상을 새겼다. 가운데받침돌은 여덟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탑신의 몸돌은 앞, 뒤 양면에 문짝모양을 새기고, 나머지 6면에는 1구씩의 신장상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높게 달았다. 꼭대기에는 축소된 지붕모양과 꽃봉오리 모양을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전체가 8각을 이룬 모습으로 두꺼운 지붕돌 표현이나 높은 지붕돌의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작품으로 보인다.
5.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4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도원운학로 13-39 (무릉리 산139) 시 대 고려시대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의 주천강이 흐르는 곳에 요선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 불상은 요선정 동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높이 3.5m의 마애불이다.
타원형의 얼굴에는 양감이 풍부하여 박진감이 넘치고 있고, 묵직한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간략한 옷주름을 선으로 새기고 있다. 두 손은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펴서 손등을 보이고 왼손은 오른손과 평행하게 들고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연꽃무늬가 도드라지게 새겨진 머리광배와 2줄의 선으로 표현된 몸광배를 갖추고 있다. 하체는 지나치게 크게 표현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잃고 있으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에는 연꽃무늬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상체의 표현이 사실적이고 박진감이 넘치지만 지나치게 커진 무릎이 불균형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불상은 고려시대 영월지방의 대표적인 마애불상으로 보인다.
6.영월 법흥사 석분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지 정 일 1988.08.25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352 (법흥리 422-4) 시 대 고려시대
법흥사 적멸보궁 뒤에 자리하고 있는 석분이다.
바깥부분은 낮은 언덕에서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리 높지 않은 봉토를 이루고 있다. 내부 돌방의 벽은 자연석의 평평한 면을 가려서 10단을 쌓았는데 6단까지는 수직이고 7단부터는 각을 줄여 쌓았다. 천장은 넓고 평평한 1매의 뚜껑돌로 덮어 놓아 내부전체가 거의 원형을 이루는 있다. 석분 뒷쪽에 돌로된 관이 있어서 이름 높은 스님의 사리 또는 유골을 모시던 곳일 수도 있으나, 기록에는 승려가 수도하던 토굴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7.흥녕선원지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6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352 (법흥리 385) 시 대 통일신라시대
흥녕사는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며, 선종 9산문 중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징효대사에 의하여 크게 번창하였다. 그후 진성여왕 4년(891)에 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져 고려 혜종 원년(943)에 다시 세웠으나, 계속되는 재해로 폐허가 되고 현재는 선원지만 남아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흥녕선원지의 길을 가리키는 3개의 안내 석탑과 1개의 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석탑은 충북 제천시 장락에 있는 석탑과 무릉리의 삼층석탑, 주천리의 삼층석탑이고, 입구 옆에 있는 돌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은 흥녕사의 수호불이라고 전해진다.
1902년 원각스님이 새로 절을 지으면서 이름을 법흥사로 바꾸었는데, 1912년에 화재로 없어지고, 1930년에 옛 절터에 다시 세웠으나 다음 해의 홍수로 인해 법당의 석탑이 떨어져 나가고 절터 일부가 유실되었다. 현재 진입로 오른쪽에는 종모양의 부도 1기와 사리탑의 기단석으로 보이는 돌이 나란히 놓여있고, 주위에는 주춧돌 10여개가 묻혀있다.
8.요선정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1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도원운학로 13-39 (무릉리 산139) 시 대 조선시대
남한강의 한 갈래인 주천강 상류, 풍경이 아름다운 강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요선암이라고도 불린다.
1915년 이곳 주민들이 정자를 세우고 주천 청허루에 보관되어 오던 숙종의 친필시를 이곳에 모셨다.
건물은 앞면 2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앞면 오른쪽에는 이응호가 쓴 ‘요선정’, 왼쪽에는 ‘모성헌’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외에 홍상한이 쓴 청허루중건기, 요선정기, 중수기가 걸려 있다.
주위에는 석탑과 마애불이 있어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9.법흥사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318-6 (법흥리 산5-3) 일대 시 대 통일신라
통일신라말 사자산문의 개창사찰이었던 흥녕선원이 조선후기까지 흥녕사로 경영되다가 법흥사로 개칭되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5대 적멸보궁 중 한 곳이다.
현재 법흥사 경내에는 징효대사보인탑비, 적멸보궁, 징효국사부도, 석실옆 부도, 석종형부도 2기, 연화대석, 추정불대좌, 소현당시비 앞 귀부, 석실, 석함, 사자산법흥사중건비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10.모현사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372-23 (무릉리 1165) 토실마을 시 대 조선시대
무릉리 토실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사당은 출입문에 「모현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사당에도 같은 현판이 걸려 있다. 한편 출입문 앞에는 「조선충신관란원선생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숙종이 1699년 원호(세조시인)가 토굴을 파고 은거하던 자리에 그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연시각」이라는 사액 현판을 내렸고, 고종 때 판서 심상훈이 이곳에 왔다가 「모현사」라는 현판을 써서 달았다. 매년 3월 3일에 정사를 올리고 있다. 원호의 문집인 『관란유고』에는 모현사의 모습을 그린 「연시각도」가 실려 있다.
11.비좌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아래골길 70 (무릉리 293) 양지모퉁이 시 대 조선시대
이 비좌는 수주면에서 제2무릉교를 건너면 무릉2리 양지모퉁이마을의 서울예림미술교육원 정원에 위치한다. 이 정원에는 최근에 제작된 탑과 석등, 절구 등이 함께 놓여져 있다. 비좌는 길이 72cm, 너비 48cm, 높이 37cm의 화강암재로 4면에 안상이 새겨져 있고, 상면에는 복연이 조각되어 있다.
비좌의 양식으로 볼 때 조선시대 (16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인위적으로 비신의 홈을 확장하여 마모가 심한 상태이다. 홈의 크기는 길이 57cm, 너비 36cm, 깊이 23cm이다.
12.흥령선원지 석종형승탑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318-6 (법흥리 산5-3) 일원 법흥사경내 시 대 고려시대
이 승탑은 고려시대 후기의 양식으로 추정된다. 승탑의 방형 대석은 높고 상면에는 탑신을 받치는 1단의 평면원형 단면호형의 괴임이 있다. 화강암재의 석종형승탑으로 탑신의 상단과 하단은 좁고 배가 부른 형태이다. 탑신 상단의 측면에는 팔엽의 연화문이 양각되었고 상면에는16개의 연주문이 돌아가고 그 위에 연봉형의 승탑이 있다.
13.법흥산성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968-14 (법흥리 산1-1) 일대 시 대 미상
법흥2리 광대평마을 광대평교를 건너 우측 개울을 가로지르면 나무사이에 산성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이 입구에서 약 1.7km 등반하면 무너진 성벽이 보인다. 이 성은 백덕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 5.7km지점에 해발 829m 고지를 중심으로 하여 구축된 성으로 법흥리와 거운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평창을 전면으로 하고 있다. 성의 방향은 남동∼북서향으로 포곡식의 산성이다.
14.요선정 청석탑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도원운학로 13-39 (무릉리 산139) 시 대 고려시대
요선정 옆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의 앞에 있는 탑으로 현재 4층의 옥개석만 남아 있다. 옥개석은 원래 모양으로 석재는 청석이다. 기단석은 120×120cm의 방형으로 현 지표상 20cm 높이의 기단석상면에는 호형 2단의 괴임이 있으며, 그 위에 우주와 주를 각출한 면석이 있다. 갑석은 두께 20cm, 갑석면 두께 8cm로 상면을 호형으로 깎아 처리하였다. 갑석은 일변 84cm이고 호형 일변은 64cm로 만들었다.
이것은 주천면 삼층석탑의 갑석과 같은 모양인데, 주천면의 탑과 비교해 볼 때 이 탑의 갑석이 뒤집혀 높인 것 같다. 그 위에는 점판암으로된 옥개석 4개와 탑신석이 4개 있는데, 옥개석에는 락수면이 뚜렷하지 않으며, 옥개받침은 2단으로 아주 얕게 표현하였다. 탑신은 우주없이 원문에 범자를 한자씩 새긴 것을 각면에 각각 3개씩 조각하였다. 각 탑신의 하단에는 시멘트를 덧대어 높게 만들었다.
15.황장금표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황정길 29 (두산리 809) 시 대 조선시대(1802)
황장금표비는 섬안이강(411번 지방도)을 따라 운학방향으로 가다가 두산교를 건너 4km정도 진행하면 두산1리 마을회관이 나오는데 거기서 옥수사 방향으로 황장교를 건너면 다리 난간 오른쪽에 세워져 있다.
16.사자산 황장금표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 591 시 대 조선시대 금표는 법흥리 새터교 맞은편의 도로변에 위치한 자연암반에 음각되어 있다. 현 사자산국유림은 조선 왕실의 질좋은 관곽재를 공급하기 위해 황장산으로 지정한 국용림이었다. 특히 순조2년(1802)에는 일반백성들의 도벌을 금지하는 표석을 세워 송림을 관리코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