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기타] 원주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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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역사에대해알려주세요.자세히요.길어야하는데,

숙제에요.삼국때부터지금까지

자세히,길게요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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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야희야님의 댓글

원주시의 역사

상고시대

현재 원주지역에서 발굴 되고 있는 유물에 의하면 원주에는 수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삼한시대에는 부족연맹국가의 하나인 마한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했었다.

삼국시대

백제 근초고왕 때 마한이 백제에 완전 복속됨으로써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가 고구려 20대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고구려의 영토에 편입되어 469년에 평원군(平原郡)이 설치되었다. 신라 진흥왕때 나제동맹에 의해 신라가 한강유역을 확보함으로써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는 등 한강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격전장이었다.

신라

678년 (문무왕 18년) 지방행정제도를 9주 5소경으로 완비됨에 따라 북원소경(北原小京)이라 부르고, 757년(경덕왕 16년)에 북원경(北原京)으로 명칭을 바꿔 불렀다.

9세기말 신라가 쇠퇴하면서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신라 말기의 호족의 한 세력이던 양길(梁吉)은 원주지역을 근거로 세력을 확장하여 오늘날의 강원도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세력으로 성장한다.

고려

940년(태조 23년) 북원경을 폐지하고 원주로 바꿨고, 995년(성종 14년) 전국의 행정구역을 10도 12목으로 개편하였을 때 원주지방은 충원도(현재 충북)에 소속되었다.

1269년(원종 10년)에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로 승격되고, 1291년(충렬왕 17년) 몽고의 합단적(哈丹賊)이 침입하였을 때에 향공진사 원충갑과 원주사람들이 이들을 물리친 공을 기리기 위하여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충렬왕 34년)원주목으로 승격하여 행정의 중심지가 된다.

조선

1395년 지방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고 강릉의 '강'자와 원주의 '원'자를 합하여 강원도라 하였고, 원주에 강원감영이 설치되어 이때부터 강원도의 수부로서 행정·치안·사회·문화 등의 중심지가 된다.

1895년 5월 26일 지방행정구역을 23부 337군 제도로 개편되면서 원주는 충주부에 소속되었고, 1896년 8월 4일자로 팔도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여 전국을 13도 1목 7부 331군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으나, 원주에 있던 강원도 감영은 원주에 회복되지 못하고 춘천으로 이전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

1914년 4월 1일 지방행정개편에 따라 원주군은 10면 67리가 된다.

1937년 7월 1일 원주면이 원주읍으로 승격하였다. 1읍 9면

1938년 10월 1일 호저면 사천리 등을 원주읍에 편입하였다.

조선총독부령 제197호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호저면 사천리

원주읍 일부

판부면 단구리 일부

원주읍 흥양리

소초면 일부

대한민국

1955년 9월 1일 원주군 원주읍 일원, 원주군 판부면 단구리, 행구리, 원주군 호저면 우산리를 관할로 원주시가 설치되었고, 원주군의 명칭이 원성군으로 변경되었다.

1983년 2월 15일 횡성군 서원면 매호리·산현리 및 압곡리중 일부가 원성군 호저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 원성군의 명칭이 원주군으로 바뀌었다.

1995년 1월 1일 원주시 일원과 원주군 일원을 관할로 도농복합형태의 원주시가 설치되었다.

2007년 10월 10일 강원도에서 최초로 인구 30만명을 돌파하여, 도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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