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정보] 안녕하세요. 원주변씨 질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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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형제분들은 변승* 가운데가 승 돌림이고
고향은 경기도 양수리라고 하십니다.
아빠와 형제분들은 변*주 로 끝에가 주 돌림이고
5살 이후에 서울에서 거주하셨다는데..
무슨파인지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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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맘임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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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1:1 질문에 답변을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원주변씨 질문드립니다.

할아버지와 형제분들은 변승* 가운데가 승 돌림이고

고향은 경기도 양수리라고 하십니다.

아빠와 형제분들은 변*주 로 끝에가 주 돌림이고

5살 이후에 서울에서 거주하셨다는데..

무슨파인지 알 수 있을까요..?

답변 : 님은 원주 변씨의 각파 항렬표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찾아본 결과로는,

별좌공파(別坐公派)에서 분파한 참판공파 항렬표(行列表)에 조부님 승(承)O자가 존재하며 배차배열(중간자와 끝자)가 맞습니다.

찾으시고자 하시는 님의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여 찾아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항렬표를 올려드릴테니 님이 직접 한번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부님 : 19세 승(承)O자 돌림이시고,

부친님 : 20세 O식(植)자 O근(根)자 돌림이시나, 수자를 쓰셨으며,

님은 : 21세손 희(熙)O자 영(煐)O자 돌림입니다.

님은 원주 변씨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이시니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한글과 한문을 병행해서 올리드립니다. 그 이유는 한문에는 그 만큼 깊은 뜻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 양해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해당 항렬자에는 녹색 글씨로 표기합니다.

아래는 원주 변씨에 대한 정보입니다.

원주 변씨(原州 邊氏)에 대(對)하여

1. 원주 변씨(原州 邊氏) 시조(始祖) : 변안열(邊安烈)

2. 원주 변씨(原州 邊氏) 유래(由來) :

원주 변씨(原州 邊氏)는 중국(中國) 송(宋)나라 말(末)에 고려(高麗) 황주(黃州)에 귀화(歸化)한 변요(邊幺)의 아들 변여(邊呂)가 태천백(泰川伯)에 봉(封)해졌다. 그의 현손(玄孫) 변순(邊順)은 1268년(원종 9) 사신(使臣) 탈타아(脫朶兒)를 수행하여 원(元)나라에 가서 심양(瀋陽)의 장수로 있다가 천호후(千戶侯)에 봉작(封爵)을 받았다. 그의 손자 변안렬(邊安烈)은 공민왕(恭愍王)과 왕비(王妃)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종하고 귀국(歸國)하여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을 격퇴시켜 이등공신(二等功臣)으로 판소부감사(判小府監事)에 올랐으며 이듬해 경도(京都)를 수복하는 데 공(功)을 세워 추성보조일등공신(推誠輔祚一等功臣)에 책록되고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가 되었다. 1376년(우왕 2)에는 추충양절선위익찬보조공신(推忠亮節宣威翊贊輔祚功臣)로서 이성계(李成桂), 유실(柳實) 등과 함께 운봉(雲峰), 부령(扶寧) 등지(等地)에서 왜구(倭寇)를 크게 소탕하여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올랐으며, 한방언(韓邦彦)과 함께 단양(丹陽)과 안동(安東)에 침입(侵入)해 온 왜구(倭寇)를 격퇴(擊退)시켜 원주부원군(原州府院君)으로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르렀으나 이성계(李成桂) 일파(一派)를 제거하고 쫓겨난 우왕(禑王)을 복위(復位) 시키려다가 김저(金佇)와 함께 죽었다. 그는 공민왕(恭愍王)의 인척인 원주원씨(原州元氏)의 딸과 혼인(婚姻)하여 원주(原州)에 정착(定着)하였다. 후손(後孫)들은 그를 시조(始祖)로 하고 원주(原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3. 원주 변씨(原州 邊氏) 본관(本貫) 연혁(沿革)

원주(原州)는 강원도(江原道) 남서부(南西部)에 위치(位置)한 지명(地名)으로 본래(本來) 고구려(高句麗)의 평원군(平原郡) 또는 치악성(雉岳城)인데,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북원소경(北原小京)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북원경(北原京)으로 고쳤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원주(原州)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 군으로 바꾸어 열월군과 제천군을 속군으로 평창현·단산현·영춘현·주천현·황려현을 속현으로 거느린 큰 군이 되었다. 1259년(고종 46)에 일신현(一新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260년(원종 1)에 원주군으로 복구되었다. 1269년(원종 10)에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로 승격되었으며, 1291년(충렬왕 17)에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원주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성안부(成安府)로 강등되었다가 1353년(공민왕 2)에 원주목으로 회복되었다. 조선에 들어서도 원주목을 유지했으며, 강원도의 관찰사영이 위치한 행정중심지였다. 1683년(숙종 9)과 1728년(영조 4)에 잠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23부를 실시함에 따라 강원도의 감영이 폐지되고 충주부 소속의 원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도제 실시로 강원도 원주군이 되었다. 1955년 원주읍이 원주시(原州市)로 승격되고 나머지는 원성군(原城郡)이 되었다. 1989년 원성군을 다시 원주군으로 개칭하였고, 1995년 원주군이 원주시에 통합되었다.

4. 원주 변씨(原州 邊氏) 가문(家門) 번성(繁盛)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한 후 이태조는 안렬의 충절을 기리고 그의 아들 3형제에게 벼슬길을 열어주어 맏아들 현(顯)은 봉상시사를, 둘째 이는 도총제를, 막내 예(預)는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사를 각각 역임하였고, 손자 상복(尙服)은 덕천옹주와 혼인하여 원주위에 봉해졌다.

한편 예조참판 상회(尙會)의 아들 수(修)는 호조 및 병조,형조,공조의 참의를 거쳐

충청, 경상, 함경도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냈으며, 면천 군수 계윤(季胤)의 아들 협(協)은 공조판서와 포도대장에 이어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특히 협은 어릴 때부터 성품이 호쾌하고 도량이 넓어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가 여섯살 때 샘에 빠진 일이 있었는데 우물 안에서 돌을 붙들고 밤새 버티고 있다가 새벽에 물을 길러온 아낙네들에게 큰 새끼를 빨리 가져오라고 호통쳤다고하며,

1565년(명종 20)에는 제주목사로 귀양온 요승(妖僧) 보우를 장살함으로써 백성들의 속을후련하게 했다고 한다.

공조 좌랑 열(悅)의 아들 응정(應井)은 임진왜란 때 조헌, 정담 등과 더불어 금산 전투에서 육박전을 벌이다가 전사했는데, 적장도 그의 충의에 감복하여 무덤을 크게 만들고

[조선국충간의담]이라 쓴 푯말을 세웠고, 나라에서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정문(旌門)을

고향에 내렸다.

또한 만취당 영순(永淳)의 아들 경회(慶會)는 임진왜란때 여러 전투에서 많은 훈공을 세웠으며, 선조때에 무과에 급제한 흡은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헌하여 원흥군에 봉군되어, 효행으로 명성을 떨쳤던 극태(克泰)와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그외 효종때 나선정벌에 출정하여 러시아군을 격파시켰던 급과 통역관으로 [노걸대신석]을 편찬한 헌(憲)이 유명했으며, 근대에 와서는 면와(勉窩) 태균(台均)의 주관으로 1924년 경북 봉화읍 거촌리에 구양사를 세워 백산(栢山) 경회(慶會)와, 봉은(鳳隱) 극태(克泰)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祭享)하여 왔다

그후 1984년 후손(後孫) 교우(敎雨)가 사림(士林)의 공의에 따라 강당을 중수하고 그규모를 확장하여 묘우(廟宇), 전사청(典祀廳), 장서각(藏書閣), 동서재(東西齋), 주사(廚舍), 삼문(三門), 문루(門樓)를 비롯한 기타 부속건물의 신축사업비를 전담하고 구양서원(龜陽書院)이라 이름하여 시조 대은공(大隱公), 백산공(栢山公), 봉은공(鳳隱公)을 향사(享祠)하고 있으며, 약국을 세워 봉화군 지역 영세민(零細民)에 대(對)한 의약품 무료(無料)지급(支給)과 사회자선사업가로서의 눈부신 활약으로 철탑산업훈장과 새마을 포장을 수상했고 사회봉사 부분의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어 명문 원주변씨의 전통을 살렸으며 문중단결을 위하여 전국에 산재한 후손들의 자발적인참여를 바라고 있다.

변안열의 후손(後孫)에서 많은 인물(人物)이 나왔다. 태조(太祖) 때 도총제를 지낸 변이(邊頤), 정종의 부마 변상복(邊尙服), 태종의 부마 변효순(邊孝順),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에 오른 변수(邊脩), 변사겸(邊士謙), 선조 때 공조판서(工曹判書)와 포도대장을 지낸 변협(邊協), 충신 정문이 세워진 변응정(邊應井), 이 밖에도 변양걸(邊良傑), 변영청(邊永淸), 변흡(邊潝), 변헌(邊憲) 등이 있다.

원주 변씨(原州 邊氏)는 조선시대에 변욱(邊旭), 변성(邊成), 변규창(邊奎昌), 변경준(邊景俊), 변경우(邊景祐), 변복일(邊復一), 변효성(邊孝誠), 변형순(邊亨淳), 변복일(邊復一), 변옥명(邊玉明) 등 모두 211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문과 31명, 무과 40명, 사마시 68명, 역과 32명, 의과 29명, 음양과 5명, 율과 3명, 주학 3명 등이다.

5. 원주변씨(原州邊氏) 계파(系派) 및 분파(分派)

원주 변씨(原州 邊氏)는 황주 변씨(黃州 邊氏)의 시조(始祖) 변여(邊呂)의 후손(後孫)이어서 황주 변씨(黃州 邊氏)에서 분적(分籍)한 것으로 추정된다.

파명(派名)을 보면, 별좌공파(別坐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첨추공파(僉樞公派), 남부령공파(南部令公派), 호군공파(護軍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군수공파(郡守公派), ​부마공파(駙馬公派),​ 사용공파(司勇公派),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로 나뉘어졌다.

6. 원주 변씨(原州 邊氏) 대동(大同) 항렬표(行列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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