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군/생활] 정선전씨 족보을 찾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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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대에 궁전전씨에서 가족들간 사이가 안좋아 족보을 정선전으로 옴겯다고 하는데

우리집안에 명절때나 제사때 제가 물어봐도 족보가 없다고만 합니다. 이제는 다들있어야된다고

찾아야된다고 하는데 없으면 만들어야 할꺼고 모르면 알아야 되서 고수님에게 자문구합니다.

제이름은 전치우 지금 정선 전가로 쓰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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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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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났지만, 질문자님이 잘못알고 계시는것 같아 글 올립니다.

전씨성을 쓰는 사람(2000년 인구조사자료)중에

全 - 73개본에 493,419명

田 - 50개본에 188,354명

錢 -   3개본에    6,094명 으로 집계 되었으며, 궁전전씨는 없습니다.

질문자님이 정선 전씨라하니, 정선전씨 대종회나 각 문중사무실로 문의해보세요?

정선전씨(旌善全氏)

시조 : 전섭 시조 전섭은 백제 개국공신이다. 그는 고구려 동명왕의 세째 아들 온조(溫祚)가 부여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할때 오간(烏干), 을음(乙音)등과 함께 온조를 도운 10명의 공신중의 한사람으로 후에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삼국통일의 전란속에 전섭의 후손에 관한 기록은 7세에 걸쳐 소멸되었다. 신라통일 이후 8세손 전선이 성덕왕 22년 당나라에 입국하여 중국의 문물을 국내에 소개한 인물로 후에 벼슬이 전법(典法)판서에 오르고 정선군(旌善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전섭을 시조로 하고 전선을 득관중시조로하고 있다. 전씨문중은 정선,천안,성산 등 18본으로 분관되지만 모든 전씨는 전섭을 도시조로 하고 정선을 대종으로 한다

   18본(정선정씨 분관)

1)감천전씨(甘泉全氏)  -  시조 : 전언(全彦) 시조 전언(全彦)은 도시조 전섭의 30세손이다. 전언은 고려 충숙왕 때 밀직부사 판전농사사(判典農寺事)를 역임했으며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감천(안동에 속한 현으로 현재의 예천)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 전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감천으로 하였다.

2)경산전씨(慶山全氏, 옥산) - 시조 : 전영령(全永齡) 시조 전영령(全永齡)은 도시조(都始祖) 전섭의 27세손이다. 그는 고려 신종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으로 공을 세워 옥산군(玉山君, 지금의 경산)에 봉해졌다.그래서 후손들이 정선전씨(旌善全氏)에서 분적,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옥산(경산)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있다.

3)경주전씨(慶州全氏) - 시조 : 전공식(全公植) 시조 전공식(全公植)은 도시조 전섭의 27세손이다. 그는 고려 고종 때 안염사(按廉使)로 있으면서 몽고군이 침입하자 공을 세워 계림(현 경주)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 전씨에서 분관해서 경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4)계림전씨(鷄林全氏, 경주-계림은 경주의 옛이름으로 계림전씨는 경주전씨이다.)

5)기장전씨(機張全氏) - 시조 : 전영(全泳) 시조 전영(全泳)은 도시조 전섭의 30세손이다. 그는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형부전서 판전농사사를 역임하고 공민왕 때 기장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해서 기장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6)나주전씨(羅州全氏) - 시조 : 전경(全卿) 시조 전경(全卿)은 도시조 전섭의 30세손으로 고려 충렬왕 때 국자제주(國子祭酒)를 역임하고 1341년(충혜왕 복위 2년) 조적의 난에 공을 세워 나성(羅城, 나주의 별호)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 전씨에서 분관하여 나주를 본관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7)성산전씨(星山全氏)  - 시조 : 전흥(全興) 시조 전흥(全興)은 도시조 전섭의 26세손이며 도순사(都巡使) 전수용(全守龍)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고, 1231년 몽고의 철례탑(撒禮塔, 살리타이)이 침입할 때 공을 세워 대광(大匡)에 오르고 성산(성주의 고호)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 전씨에서 분관하여 성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8)성주전씨(星州全氏) - 시조 : 전순(全順) 성주 전씨의 시조인 전순(全順)은 도시조 전섭의 28세손으로 고려 공민왕 때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 공조판서를 지내고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해서 성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다.(9)옥산전씨玉山全氏 - 옥산은 경산의 옛이름으로 경산전씨이다.)

10)옥천전씨(沃川全氏)  - 시조 : 전학준(全學俊) 시조 전학준(全學俊)은 도시조 전섭의 23세손으로 영동정(領同正)을 역임했으며, 그의 5세손 전유(全侑)가 고려에서 밀직부사(密直副使), 판도판서(版圖判書), 상호군(上護軍) 등을 지내고 관성군(管城君, 현재의 옥천)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정선에서 분관하여 옥천을 본관으로 해서 대를 계승하고 있다.

11)완산전씨(完山全氏)  - 시조 : 전집(全潗) 시조 전집(全潗, 시호는 충정)은 도시조 전섭의 30세손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 때 중랑장으로 두차례에 걸쳐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추충정난공신(推忠靖扈亂聖功臣)이 되어 완산백에 봉해지고 그후 삼중대광첨의 문하시중 평장사(三重大匡僉議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하여 완산을 본관으로 해서 대를 계승하고 있다.

12)용궁전씨(龍宮全氏)  - 시조 : 전방숙(全邦淑) 시조 전방숙(全邦淑, 시호는 문정)은 도시조 전섭의 28세손으로 전공렬(全公烈)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고려 충렬왕 때 한림학사, 문하시중평장사를 역임하고, 용성(현재의 용궁)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 전씨에서 분관하여 용궁을 본관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13)죽산전씨(竹山全氏)  - 시조 : 전한(全閒) 시조 전한은 도시조 전섭의 28세손으로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밀직부사로서 1231년 몽고군이 침입할 때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죽산군에 봉해졌다. 그후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하여 죽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14)천안전씨(天安全氏)  -  시조 : 전섭(全聶) 시조 전섭(全聶)은 온조왕이 백제를 개국할 때 오간(烏干), 마경(馬?), 을음(乙音), 해루(解婁), 흘간(屹干), 곽충(郭忠), 한세기(韓世奇) 등 9사람과 함께 개국에 공을 세우고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歡城, 천안의 별호)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천안으로 하고 16세손 전낙을 중시조로 한다.

15)팔거전씨(八莒全氏)  -  시조 : 전원태(全元台) 시조 전원태(全元台)는 도시조 전섭의 25세손으로 고려 충렬왕 때 합단군(哈丹軍)이 침입하자 이를 물리친 공으로 팔거군(현재의 칠곡)에 봉해졌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팔거로 하고 있다.

16)평강전씨(平康全氏)  -  시조 : 전승 시조 전승은 도시조 전섭의 28세손이다. 그는 고려 때 시중을 지 냈으며, 아들 전빈(全賓)은 고려 공민왕 때 정언(正言), 숙천부사(肅川府使) 등을 역임하고 조선이 개국 되자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으로 평강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하여 평강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17)함창전씨(咸昌全氏)  -  시조 : 전살리(全撒里) 시조 전살리는 전씨의 도시조 전섭의 29세손이다. 그는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형부상서를 역임하고 좌리공신으로 함창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하여 평강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18)황간전씨(黃澗全氏)  -  시조 : 전익((全翼) 시조 전익은 도시조 전섭의 26세손이다. 그는 고려시대에 형부상서로 있으면서 몽고군이 침입할때 형 전흥(성산전씨의 시조)과 함께 적을 토평한 공으로 황간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하여 황간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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