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정보] 강릉시 구정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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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강릉시 구정면의 문화재점알려주세여.

먼 곳은 말고 구정면 근처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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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코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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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의 문화재)

 

1.강릉 굴산사지 승탑

종 목  보물  제85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731  시 대 고려시대

이 부도는 굴산사를 세운 범일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굴산사터의 위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모든 부재가 8각을 기본으로 하여 조성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변형된 수법을 보인다.

 

사리를 모시는 몸돌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받침부분이 놓이고, 위로는 지붕돌과 꼭대기장식이 놓였다. 꼭대기장식으로는 상륜받침과 보개, 연꽃봉오리 모양의 구슬장식이 놓여 있다. 한 돌로 된 바닥돌은 8각의 평면이며, 위에는 접시 모양의 받침돌이 있다. 2단으로 된 8각의 괴임돌이 있는 아래받침돌은, 평면이 원형이며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 중간받침돌에는 8개의 기둥을 세워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천상(天上)의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새기고 있다. 조각되어 있는 상은 8구 모두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악기는 장구(또는 장고)·훈·동발·비파·소(피리)·생황·공후(하프)·적(대금) 순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맨 윗받침돌은 위를 향해 활짝 핀 연꽃모양을 새겼다. 몸체는 8각의 낮은 몸돌과 지붕의 경사가 급한 지붕돌로 이루어지는데, 지붕돌 처마끝의 치켜올림이 없어 밋밋하다.

 

전체적으로 위축된 느낌을 주는 이 부도는 몸돌이 낮고 작은 데 비하여 지붕돌이 다소 커져 균형을 잃은 듯하다.

  

 

2.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종 목  보물  제86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1181  시 대 통일신라

신라 문성왕 9년(847) 범일국사가 창건한 굴산사의 옛터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당간지주이다. 굴산사는 범일국사가 당나라 유학시 왼쪽 귀가 떨어진 승려가 고향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는 청으로 지은 사찰이라고 한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사찰 앞에 세워지며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당간지주는 현재 밑부분이 묻혀 있어 지주사이의 깃대받침이나 기단 등의 구조를 확인할 수가 없다. 두 지주의 4면은 아무런 조각이 없으며, 밑면에는 돌을 다룰 때 생긴 거친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깃대를 고정시켰던 구멍은 상·하 두 군데에 있고, 정상은 끝이 뾰족한 형상이며, 남쪽 지주의 끝부분은 약간 파손되었다. 전반적으로 소박하나 규모가 거대하여 웅장한 조형미를 보인다. 

 

 

3.강릉 굴산사지

종 목  사적  제448호  지 정 일 2003.06.02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597외  시 대 통일신라

굴산사지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2리 윗골마을의 마을회관 일대에 있는 절터이다.

 

굴산사는 신라 문성왕 13년(851)에 범일국사(810∼889)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9산선문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 사찰이었다. 굴산사는 고려시대에는 지방호족들의 지원하에 번성한 후 조선초 이후의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초 이후에는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굴산사지당간지주(보물 제86호), 범일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굴산사지부도(보물 제85호), 강릉굴산사지석불좌상(강원도문화재자료 제38호) 등이 남아 있어 굴산사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굴산사지 일대는 현재 주변이 농경지로 변하여 사역의 정확한 범위를 알 수 없었으나,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로 긴급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역의 크기는 동-서 140m, 남-북 250m의 크기로 확인되었다. 또한 토층은 3개층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1·2문화층은 유실되었으나 3문화층은 아직 남아있는 부분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법당지·승방지·회랑지·탑지 등도 확인되었다.

 

강릉 굴산사지는 우리나라 9산선문의 중심사찰로서,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로 긴급발굴조사를 통해 법당지·승방지·회랑지 등의 유구가 확인된 역사상·학술상 귀중한 유적이다.

 

 

4.강릉 만성 고택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3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범일로 283-7 (학산리 795) 시 대  조선시대

숲이 울창한 야산을 뒤로 하고있는 집으로 1894년에 안채를 짓고 1915년에 사랑채를 지었다. 영동지방의 전형적인 ㅁ자형 주택으로, 대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사랑채·왼쪽에는 부속채 그리고 맞은편에는 안채가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앞면 6칸·옆면 2칸의 一자형 집으로, 왼쪽부터 부엌 2칸·안방 2칸·대청·건넌방의 순서로 되어있다. 방과 대청 앞쪽에는 비교적 넓은 툇마루가 안뜰을 향하여 있다.

안채와 마주 보도록 되어있는 사랑채는 ㄱ자형 겹집으로, 대청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방에는 수납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책 등의 물품을 보관할 수 있게 하였다.

안채와 사랑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대문 왼쪽으로는 훈장이 함께 기거하면서 자녀들을 교육시켰던 서당방이 있다. 원래는 사랑채 앞쪽으로 행랑채가 있었다고 하나,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 소유주의 할아버지 때 이 집을 지었다고 하며, 목재를 다듬은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당시 집을 지은 목수 최매직·장덕소의 이름도 전해지고 있다. 

 

 

5.강릉 청학사 소장 석조관음보살상 및 복장유물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6호  지 정 일 2007.01.19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청파로 176-38 (구정리 29)  시 대 조선시대

청학사는 일제강점기에 처음 역사를 시작하였으며 원래는 매봉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197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청학사 안에는 석불좌상, 광배 등 여러 석조물이 있다.

청학사 소장의 석조관음보살상은 17세기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이며 반가좌상이다. 전체 높이 42㎝, 불상 높이 39.5㎝, 대좌 높이 19㎝에 이른다. 안정되어 있고 부드러운 느낌을 풍긴다. 보살의 얼굴은 거의 네모 모양이고 보관을 쓰고 있으며 그 안에 보계가 조각되어 있다. 천의가 어깨에 걸쳐져 있고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져 있다.

복장유물에는 개금발원문, 다라니, 묘법연화경, 경부, 사리기 및 사리, 오색 천과 실, 곡식 낱알 등이 포함된다. 개금발원문은 1791년에 작성한 인쇄본이며 크기가 가로 35.8㎝, 세로 62㎝이고 한지 바탕에 주홍색 글씨로 쓰여 있다. 다라니는 1657년의 인쇄본 2본이며 크기가 가로 29.2㎝, 세로 6㎝이고 한지로 되어 있다. 묘법연화경는 한지로 된 인쇄본이며 총 48면이고 제작연도는 알 수 없다. 경부는 한지로 된 인쇄본이며 1본이고 제작연도는 알 수 없다. 사리기 및 사리는 면쌈지 5묶음, 원통형 금속사리함 1개, 면보자기 1개로 이루어져 있다.

청학사 소장 관음보살상은 복장유물을 통하여 17세기 조선시대의 조각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18세기에 경북 지역에서 활동한 불화공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불교사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6.강릉 굴산사지 석불좌상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8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70-82  시 대 고려시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굴산사 절터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이 곳에 전해지는 3구의 석불 가운데 완전한 2구는 작은 암자에서 모시고 있고, 머리 부분이 없어진 1구는 우물에 있다. 석불 3구는 모두 한손이 다른 손의 검지를 감싸고 있는 손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비로자나불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모습으로 아마도 함께 모시기 위해 만든 비로자나삼존불로 생각된다.

얼굴은 둥글고 긴 타원형이며, 어깨는 움츠린 듯하다. 옷의 표현이 두꺼워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으며, 가슴 부근에 있는 손의 모습은 다소 경직되어 보인다.

이 불상은 둥글고 긴 얼굴과 평판적인 신체에 곡선적인 조각 등 고려 전기에 유행한 자연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또한 지방 조각의 성격도 드러내고 있다. 

 

 

7.강릉 조철현 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7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범일로 267-11 (학산리 354)  시 대 현대

현 소유자의 조부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처음 지었으나,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무너지고, 1953년 조규팔 씨가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옥은 대문간채가 없는 ㄷ자형 구조로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곳간 뒷면과 사랑채 툇마루는 외부로 노출되어 있다.

안채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부엌·건넌방·안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방은 원래 방 중간에 미닫이문이 있고, 옆면에 툇마루가 이어져 있었으나, 모두 헐고 안방 공간으로 넓혔다.

사랑채는 행랑채·작은사랑·큰사랑으로 구성되며, 사랑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어 사용하기 편리하게 하였다. 지붕 형식은 사랑채, 안채 모두 옆면의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8.강릉 청학사 소장 청동불입상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42호  지 정 일 2007.01.19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청파로 176-38 (구정리 29) 청학사  시 대 통일신라

  이 청학사 소장청동불입상은 강원도 강릉시 흑암사지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라고 알려진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전체 높이 8.5㎝, 좌대 높이 2.3㎝이다. 전체가 검은색이고 녹과 먼지 등이 끼어 있다. 전체적으로 몸통과 두상이 두껍고 다리는 얇아 수그러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굴은 둥근 편이며 눈, 코, 입이 거의 사라졌고 귀는 비교적 크다.

불상의 몸체는 가는 편이고 머리는 나발을 이루고 있으며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솟아있는 상투모양의 혹)가 솟아 있다.손은 시무외·여원인이다. 들려 있는 오른손의 손바닥과 손가락이 많이 파손되었고 내려가 있는 왼손은 손끝이 무디다.

법의는 거친 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옷에는 주름이 길게 잡혀 있다. 좌대는 입상 바로 아래에 위로 향한 연꽃무늬가 작게 새겨져 있으며, 밑이 뚫려 있다.

강원도 지역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후기의 청동불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9.강릉 청학사 소장 청동보살입상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43호  지 정 일 2007.01.19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청파로 176-38 (구정리 29) 청학사  시 대 고려시대

강릉시 흑암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고려시대의 보살상이다. 얼굴은 사실적으로 표현된 한편, 단순하고 조각된 면이 평평하고 불신의 키가 작다는 점에서 10세기경 고려 초기에 제작된 불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 5.17㎝, 좌대 높이 1.2㎝, 머리 두께 0.94㎝, 몸통 두께 0.93㎝, 무게 30.7g이다. 오른손은 내려가 있고 왼손은 들고 있으며 손의 손상이 많다. 옷에는 주름이 많으며 양다리 윤곽은 명확하다. 왼쪽 어깨 부분은 깨졌고, 두상은 관을 쓰고 있으며 옆에 장식이 있다. 눈, 코, 입이 길고 확실한 편이다.

크기가 작고 파손된 부분이 약간 있지만, 제작연도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0.강릉 청학사 소장 석불좌상ㆍ광배 및 중대석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2호  지 정 일 2011.08.12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청파로 176-38 (구정리 29) 청학사  시 대  고려시대

이 불상과 광배, 중대석편은 통일신라말 양식으로부터 명주유파의 불상양식이 성립되어 가는 과정을 고찰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고려초기 강원도의 불교조각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있다. 

 

11.화동서원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칠봉로 651-17 (제비리 154) 시 대  일제강점기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 154번지에 있는 서원으로 정몽주와 최수성을 배향하고 있다. 1930년에 정몽주의 영당으로 왕산에 건립하였다가 1970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이듬해 최수성을 함께 배향하였다. 문충공 정몽주와 문정공 최수성의 시호 중 한 글자씩 따서 일명 충정사라고도 한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기와 건물로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로 휘호하였다.

 

12.강릉 법왕사 승탑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평로 314-246 (어단리 926)  법왕사 입구 시 대  통일신라

법왕사가 통일신라 704년(성덕왕 3)에 자장율사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기록과 승탑의 조각기법 등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의 승탑으로 추정된다. 화강암 재질의 석종형 승탑으로 총 2기이다.

 

1기는 전체 높이 142cm, 탑신상경 66㎝, 중경 62㎝, 하경 45㎝의 크기로 ‘계월당’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다른 한기는 전체 높이 112cm, 탑신상경 40㎝, 중경 55㎝, 하경 38㎝의 크기로 ‘월봉당선사명모위’이라는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13.강릉 흑암사지 승탑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청파로 176-38 (구정리 29) 청학사 시 대  고려시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의 청학사에 있다.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청파동 절골에 있는 고려시대의 사찰인 흑암사에 속한 것으로 1970년대에 발굴되어 청학사에 안치되었다.

 

현재 승탑재로 보이는 팔각형의 화강암 석재가 반으로 쪼개져 있다. 한 면에는 보살상으로 보이는 좌상을 양각되어 있고, 다른 면에는 모란과 같은 꽃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14.칠봉산성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 시 대  조선시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의 칠봉산 정상부의 능선과 북동쪽 사면지대에 있다. 고려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다양한 크기의 편암으로 쌓은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당시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근래에 와서 쓰여진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문화유적총람》 등에 의하면 도적의 무리들을 막기 위하여 칠봉산 정상 능선 위에 4㎞에 걸쳐 축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둘레는 약 1km이고, 현재는 서쪽 성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허물어져 있다. 성벽의 석벽 사이에서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들이 발견되었으며, 능선부와 동사면에서 건물지로 추정되는 평탄지들이 발견되었다.

 

15.왕현성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시 대   고려시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왕고개의 북동쪽 구릉지에 있다.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공양왕 때 축조된 토석혼축성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나,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임영지》, 《문화유적총람》 등에서 고려 말의 정치 상황과 관련지어 공양왕이 잠시 피난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재 둘레는 546m 정도의 포곡식 석축 흔적이 남아 있다. 성곽에 사용된 돌은 구정천에서 가져온 25~40㎝의 변성암으로 추정된다. 성의 남쪽 평탄부에서 건물지가 발견되었으며, 성 밖에서 우물지가 발견되었다. 성의 토축부와 외부 경사면에서 청동기시대와 신라시대의 토기조각들이 발견되었다.

 

16.강릉 학산리 고분군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시 대  신라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의 장현저수지 남쪽 구릉 지대에 분포하고 있다. 출토된 유물로 보아 5세기경의 신라시대의 고분으로 추정된다. 고분의 형태는 신라시대의 수혈식석곽묘이며, 주변에서 고분의 석곽을 축조할 때 사용된 냇돌과 신라시대의 토기조각들이 발굴되었다. 또한 1963년에 신라시대의 대부호 1점, 장경호 1점, 대부배 1점, 파수부완 2점, 무개고배 1점, 병 1점, 고배 1점, 개 3점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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