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창시절 격투기로 구원받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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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술도 먹은 김에 내 학창시절 이야기나 해보고 싶다.
난 학창시절 중학교 2학년때까지 친구가 있어본 기억이 없다.
키는 컸는데 몸은 바싹 말랐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이었거든.
어디를 가든지 항상 자연스럽게 왕따가 되고 찐따가 되더라.
초등학교 때까진 혼자 있는 게 차라리 편했다. 그런데 중학교 올라와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지더라.
양아치들한테 가장 만만한 게 나였으니까 돈도 매일 뜯겼고 맞기도 엄청 맞았었다.
그렇다고 기댈 친구도 없었다. 매일같이 죄없이 얼굴에 주먹을 맞았다.
또 난 제대로 된 부모도 없었다.
어머니는 내 기억에 없으시다. 낳고 얼마 안 있어 돌아가신 탓에 얼굴을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용역 일을 하셨는데, 알콜중독으로 집에 매일같이 없었고 간혹 있는 날엔 또 이유없이 맞아야 했으니
집에다 내 삶을 기댈 수는 없겠더라.
그러다 복수를 다짐했던 게 중학교 2학년 봄이었다.
매일 뒤질까 생각도 해봤는데 뒤지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날 때렸던 양아치 새끼들 얼굴에 주먹이라도 한번 써보고 싶었던 마음에,
너무 말라서 힘도 없는 내 몸에 근육이라도 좀 붙여보고 싶었던 마음에 격투기 체육관에 등록했다.
겨울방학이 끝나는 날을 내 복수의 날로 잡은 뒤 운동을 시작했다.
뒤지게 힘들었지만 내 인생 처음으로 따뜻한 분을 만나서 운동했다.
몸에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183cm에 50kg 중반대의 마른 몸이었는데도 금방 근육이 늘어갔다.
뭘 하든지 숨이 금방 찼고 숨을 쉬면 멍이 든 곳이 아팠는데도 점점 나아지더라.
항상 보는 양아치들이 너무 싫어서 더 미친듯이 아령을 잡았고 매일매일 샌드백을 때렸다.
자야 되는 시간에도 작은 타이어를 들고 레슬링을 했다.
강해질 때 복수하리라 다짐하고 운동을 하는 것도 숨기고 매일매일 뚜드려 맞았다.
겨울방학이 되서 열 달 가까이 배우고 나니 내 몸이 아닌 것 처럼 좋아지더라고.
거진 매일 체육관에서 얻어먹었던 밥과 고기는 내 몸을 꽤 두껍게 만들어 70kg까지 불었다.
3시간 씩 했던 운동들은 근육이 되서 내 몸에 붙어있었으니 여전히 말은 곧잘 못 꺼내도 자신감이 솟았다.
복수를 다짐한 겨울방학이 끝나는 날에 학교엘 가서 내 첫 싸움을 했다.
보통이면 내가 먼저 엎드려 있어야 하는데 그 날은 내가 먼저 일어나 있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하면서 나를 쳐다보는 애들 표정에 약간 망설이기도 했지만
곧장 달려오는 한 놈을 잡아 바닥에다 던지고 뚜드려 팼다.
아이들은 벙이 쪄서 날 말리지도 않았고 한이 맺혀 때리다보니 얼굴이 피떡이 되어 기절한 것도 안 보이더라.
온 힘을 쏟아내서 주먹질을 하고서 일어나니 그 놈들 표정이 아주 볼만하더라.
나머지도 뚜드려 패고 싶었으나 웬지 모르게 지치는 기분에 그러진 않았다.
그 날 이후 바로 친구가 생기진 않았지만 좀 낫더라.
그 양아치 놈들은 나를 이제 때리기는 커녕 피해다니는 처지가 되었고
중학교 생활을 마칠 때까지 다섯 명 정도의 친한 친구를 두고 졸업했다.
그 이후로 딱히 주먹을 써본 기억은 없다.
성인이 될 때까지 운동을 그만두지 않았고 지금은 작은 체육관을 열어서 그저 그렇게 살고 있다.
운동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살을 붙인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한테 새로운 기회를 줬던 건 주먹이었다.
몸의 힘 뿐만 아니라 뭔가를 할 수 있는 힘도 주는 것이 운동이다.
아무것도 아닌 내 이야기이지만 낮술 먹고서 이야기 할만한 곳이 여기밖에 없네.
어떤 말로 마무리 지어야 될지 모르겠다. 읽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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