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군] 영월 청령포

39   2019.09.11 08:05

영월 청령포


가족의 달 5월, 누구나 떠나고 싶은 5월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생생한 현장학습에 어울리는 곳을 소개합니다. 바로 역사의 고장, 충절의 고장 영월입니다. 조선 왕조의 단종임금의 이야기와 흔적이 구석구석 남아있는 영월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드라마나 영화, 교과서에서 보았던 우리 역사이야기,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배우는 현장 영월 청령포로 떠나봅니다.

 

단종임금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 중 가장 슬프고 한이 많은 임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5대 임금인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는 단종임금을 낳고 하루 만에 산후병으로 돌아가시고, 할머니 소헌왕후 심씨도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아버지 문종임금이 12살이 되던 해에 승하하신 후 12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의 6대 왕에 오르게 됩니다. 나이 어린 왕의 정치적 기반도 약한 시기가 되자 신하들의 권력이 강해지고 정치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삼촌인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선위를 하고 왕위에서 물러납니다. 그 후 단종복위를 꽤하던 사육신의 병자옥사가 일어나고 단종임금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 됩니다. 

 

 


육지 속의 작은 섬으로 보이는 청령포는 배를 타고 들어가기 때문에 섬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섬이 아닙니다.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 면은 육육봉이라는 험한 산으로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선착장에서 섬까지는 그리 멀지 않지만 아직도 다리가 놓이지 않고 배가 왕래하고 있습니다. 유적지의 모습과 그 현장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합니다.

 

섬은 아니지만 섬과 같은 지형을 갖춘 천연 감옥과 같은 이곳에서 단종임금은 군졸 50여명의 호위를 받으며 2달 정도를 생활하게 됩니다. 그해 홍수로 청령포의 집이 유실되고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기게 됩니다. 그 후 단종임금의 작은아버지인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선생님과 함께 순흥에서 제2차 단종복위 운동인 정축지변을 계기로 세조임금은 사약을 내리고 17살의 어린나이에 객사인 관풍헌에서 승하를 하게 됩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청령포로 가는 배가 있는 선착장으로 이동을 합니다. 푸른 서강이 돌아 흐르는 청령포는 지금은 멋진 풍경을 간직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그 옛날 17살의 단종임금에게는 무섭고 슬픈 곳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배에서 내리면 돌길이 나옵니다. 멀리 보이는 소나무 숲 안으로 단종임금의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청령포 안은 실제로 20여분이면 충분히 다 돌아볼 정도로 넓은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무 한그루, 돌탑 하나하나에도 유심히 보면 단종임금의 손길이 남아 있는 곳이니 천천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 좋습니다.


돌길을 따라 가다보면 담장으로 둘러싸인 기와집과 그 옆에 초가집이 한 채 서 있습니다.

행랑채인 초가집은 2000년에 영월군에서 승정원일기를 바탕으로 새로 지은 집입니다. 궁녀와 관노들이 기거하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 기와집이 단종어소입니다. 파란색의 두루마기를 입은 분이 단종임금이고 앞에 선비가 무릎을 꿇고 부복을 하고 있는데, 단종임금을 알현하러온 선비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앞에서 마주 볼 수 없기 때문에 예전에는 옆에서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선비는 엄흥도 선생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단종임금이 유배생활 시절에 매일 밤 강을 건너 문안인사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어소 앞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라는 글이 영조임금의 친필로 새겨져 있습니다. 집 주변의 소나무는 집터를 중심을 향해 있는데 이 소나무들을 충절의 소나무라고 부릅니다. 단종임금 시대의 많은 충신들이 훗날 이 소나무로 태어나 못 다한 충절을 표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옵니다.  

단종어소를 지나 망향대로 가는 길 중간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습니다. 관음송이라 불리는 이 나무는 나이를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단종임금이 승하한지 558년 되는 해이니 단종임금이 유배 오신 해 나이를 6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은 단종임금이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이 되어있습니다. 하나의 뿌리에 커다란 두 갈래의 가지가 있습니다. 작은 나무였을 때 단종임금이 걸터앉아 마음을 달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관음송 뒤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습니다. 이 계단 위에는 단종임금이 부인인 정순왕후가 생각 날 때마다 주위에 있는 돌을 주워 쌓은 작은 돌탑이 망향탑이 있습니다. 멀리 한양 쪽을 바라보며 작은 돌탑을 쌓아 올린 흔적이 남아있는 이 망향탑은 단종임금의 진짜 손길이 남아있는 유일한 유적이기도 합니다. 



 

망향탑에서 능선을 따라 나무로 만든 데크길이 있습니다. 노산대로 가는 길입니다. 노산대는 70~80m 정도의 절벽 위에 만들어진 곳으로 단종임금이 해질녘이면 한양 땅을 바라보며 앉아 있던 자리입니다. 높은 지대에 있는 노산대에서는 근처의 지형이 다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 데크를 깔아 놓았습니다.  



청령포 입구에는 금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유배지 초입에 세운 이 금표비에는 영조임금이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그때의 지형뿐 아니라 후에 바뀌어 넓어지는 지형까지 포함하였으니 영조임금의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금표비 이후 청령포 안에는 약 700여 그루의 금강송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된 소나무들로 이루어진 울창한 송림은 2004년 천년의 숲으로 지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붉은 색을 띄고 있어 적송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적송은 일본식 표기니 우리말인 금강송으로 부르는 게 맞는다고 합니다. 

배를 타고 나와 건너편을 보면 왕방연 시조비가 있습니다. 당시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임금께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지은 시조입니다. 왕방연은 한양으로 돌아간 후 관직을 내놓습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낮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가족과 함께 생생하게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청령포 어떠셨나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고 역사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청령포로 떠나보세요^^

함께보면 좋은 

 

한반도 지형(청령포에서 약13.3km, 자동차로 약 18분 소요)

영원에 가면 한반도 전체를 옮겨놓은 듯 우리나라 지형을 쏙 빼닮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입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한반도의 지형과 너무도 흡사해 놀라움을 넘어 신비로움 마저 느껴지는 이곳으로 가족과 함께 떠나보세요!!


작성자 정보

물소리 아이디로 검색 회원등급 : Level 1 아이디 : yepp3405포인트 : 8,915

댓글목록

강원도남자님의 댓글

가볼만한 곳이네요...추천 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