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뉴스] [글로컬 주(酒) 스토리] 십자군 전쟁이 만들어낸 위스키, 코냑의 탄생기

본문

전쟁으로 유럽에 전파된 증류 기술, 생명의 물로 거듭나
위스키, 흑사병 치료제이자 의학용 등으로 활용
긴 항해로 와인 변질 발생 최소화를 위해 탄생한 코냑

4화. 십자군 전쟁이 만들어낸 위스키, 코냑의 탄생기

오늘은 유럽의 중세 시대로 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우리는 지난 칼럼에서 술은 크게 발효주와 증류주로 구분됨을 배웠다. 인류는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맥주나 와인 같은 발효주를 즐겨왔는데, 증류주는 근대에 이르러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증류주의 개념을 쉽게 설명하자면 우선 발효주를 끓여 순도 높은 알코올을 만든다. 그 후 인체에 유해한 알코올 성분은 분리한 뒤 숙성을 진행한다. 숙성 여부는 술의 종류마다 상이한데 이렇게 만들어진 원액에 물을 희석하여 적합한 도수로 완성하게 된다. 그런데, 증류의 개념조차 없던 유럽 중세 사회에서 어떻게 위스키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증류 기술은 십자군 전쟁을 통해 아랍에서 유럽으로 전파되는데, 당시 아랍의 연금술사들은 알코올을 증류하여 향료나 화장품 제조에 사용했다고 한다. 이 기술이 전쟁을 통해 유럽 사회로 전파되며 위스키로 발전하게 되고, 이후 발전을 거듭해 우리가 즐기는 고급 증류주가 탄생하게 된다.

3차 십자군 전쟁 : 전쟁은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술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이쯤에서 잠시 역사 여행을 떠나보자. 십자군 전쟁은 1095년부터 1291년까지 10차례에 걸쳐 진행한 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이슬람 원정을 가리킨다. 대외적으로는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이를 단순히 종교적인 목적으로만 치부하기엔 당시 사회가 꽤나 혼란스러웠다. 중세는 봉건제에 기반한 사회로, 봉건제는 ‘영주가 가신에게 봉토를 주고, 그 대신에 군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일종의 주종 관계’이다. 쉽게 말하자면 왕에게 영토를 부여받아 자치권을 가지지만 유사시 군대를 동원해 주는 계약관계로, 당시 일부 제후는 왕보다도 막대한 힘과 재산이 있었다. 전쟁에 참여한 계층은 그 신분마다 목적이 달랐는데 교황은 십자군 지원을 통해 떨어진 교회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으며, 왕과 영주는 그들의 힘을 강화하며 재산, 영토를 확장하고자 했다. 상인들은 전쟁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각기 다른 목적으로 시작된 전쟁은 200여 년에 걸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이로 인해 중세 사회엔 큰 변화가 생겼는데 교황의 권위는 약해지고 왕권이 강화됐으며 상업과 도시가 발달하며 봉건사회 붕괴의 시발점이 됐다.

■ 위스키 ‘생명의 물’에서 최고의 고급 증류주가 되기까지

유럽으로 전파된 증류 기술은 곧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초기 위스키의 형태는 에일(Ale) 맥주를 증류한 술에 가까웠다. 당시 위스키는 일반 대중들이 마시는 술이라기보다는 성직자들이 만드는 신비한 존재였다. 높은 알코올 도수로 인해 14세기 흑사병 창궐 땐 치료제로 쓰였는데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미국 금주법 시대까지도 의학용으로 처방되곤 했다. 현대의 술꾼들이 과거에 태어났다면 아마 매일같이 병원을 드나들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연금술사들

‘생명의 물’이라고 불리며 주로 의학용으로 사용되던 위스키는 스코틀랜드로 넘어가 그 꽃을 피우게 된다. 위스키 맛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오크통인데 이 오크통은 18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위스키 숙성에 사용된다. 증류 기술의 발견이 십자군 전쟁을 통한 우연이었던 것처럼 오크통 숙성도 우연치 않은 계기로 시작하는데, 당시 영국은 대영제국을 건설하던 시기로 부족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높은 알코올 도수의 위스키에 많은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위스키 제조업체와 국가 간의 세금 전쟁이 펼쳐지게 되고, 이들 중 일부는 주세 회피를 목적으로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단속을 피하고자 오크통에 위스키를 담아 동굴 속에 몰래 숨겨 놓기도 했는데, 오크통에 담긴 위스키를 몇 년 후 마셔 보니 풍미와 맛이 놀라보게 달라진 걸 알게 된다. 이후 오크통 숙성법이 널리 퍼지게 되고 이제는 오크통이 위스키 풍미의 50~80%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위스키의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됐다.

◾ 코냑(Cognac) '와인과 위스키의 연결고리'

브랜디의 대명사인 코냑도 탄생 일화가 재밌는데 브랜디에 오크통 숙성을 시작한 건 위스키보다 조금 빠른 16세기로 알려져 있다. 브랜디는 과실주를 증류한 것으로 코냑은 그중에서도 프랑스 코냑 지역에서 만든 브랜디를 뜻한다. 샴페인이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만든 스파클링 와인만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코냑 지역에서 생산한 브랜디만 코냑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코냑 지역은 와인의 명산지인 프랑스 보르도에서 조금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주로 와인을 생산하던 곳이다. 원래는 화이트 와인이 이 지역의 대표 상품이었지만 품질이 좋지 않아 인기가 높지는 않았다. 당시 무역을 위해 이 지역을 많이 방문하던 네덜란드 상인들에겐 와인 운송 시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바로 장기간의 항해 중에 발생하는 와인의 변질이었다. 이런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와인을 증류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코냑의 기원이 된다. 이후 양조 기술의 발달과 오크통 숙성을 통해 품질이 향상되며 코냑은 세계 최고의 브랜디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코냑의 대표 브랜드 헤네시(Hennessy)

이처럼,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된 증류 기술은 전통의 와인 산업과 대항해 시대를 만나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냈다. 물론, 현대의 과학기술 발전에 비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당시로서는 굉장한 발견이 아니었을까 싶다. 와인의 한 종류 중 하나로 주정 강화 와인이 있다. 말 그대로 알코올이 강화된 와인이다. 포트(Port), 셰리(Sherry) 같은 제품이 대표적인데 요즘은 와인보다 오크통이 더 유명한 편이다. 포트와 셰리는 양조 방식에 따라 그 시점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브랜디를 첨가하여 알코올 도수를 높인다. 결국, 종류는 달라도 증류 기술의 도입이 이처럼 다양한 술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증류 기술의 기원이 술을 마시지 않는 이슬람 국가들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약 700~800년이 지난 지금 유럽 국가들의 후손들이 그 영화를 누리는 걸 보니 인류와 술의 역사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의 주제를 단순히 지구 반대편의 역사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스키와 코냑의 탄생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하나 있다. 바로 품질 좋은 고급 제품의 개발은 그 지역의 브랜딩과 산업 발전을 이끈다는 사실이다. 요즘같이 힘든 시기엔 싸고 맛 좋은 술이 단비와도 같다. 하지만, 이제는 더 큰 미래를 바라보며 우리 술의 고급화에도 많은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글=정한호 콜라블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2,058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