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군/기타] 정선 전씨 양반인가요?? 지식머니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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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선 전씨 이고

채미헌파인데 양반인가요???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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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마니주세요님의 댓글

지금 시대에 양반 천민 따로 없습니다.

김세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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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전씨 6파 중에서 제3파인 채미헌공파(採薇軒公派) 입니다.

♤ 집현전 대제학 전오륜(全五倫)

  정선전씨 채미헌공파 파조이며, 고려 말기의 문신이며, 호는 채미헌(採薇軒)입니다.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외직으로는 합천군수, 진주목사, 경상도안렴사, 내직으로는 국자감제주, 한림학사 집현전 대제학 보문각 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1391년(공양왕 3)

우상시(右常侍)·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형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光德面) 광덕산 서쪽 기슭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으며, 태조 이성계가 조선에 협조할 것을 회유 하였으나, 듣지 아니함으로 정선으로 본향안치(本鄕安置)의 처벌을 받았다.

  후에 풀려나서 서운산(瑞雲山)에 은거하였다. 두문동 72인 중의 한 사람이며, 뒷날 경상남도 안의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제향되었다.

  두문동 72현중 7현이 정선 서운산(瑞雲山)으로 내려와 산나물 등을 뜯어먹고 살면서 절개를 지킨 곳이 거칠현동이다.

당시 칠현은 한맺힌 마음을 한시로 지어 율창(律唱)으로 불렀는데, 지방의 선비들이 이를 듣고 사람들에게 풀이하여 알려주면서 구전되던 토착요(土着謠)가 강원도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이 되었다고 한다.

東來朝服在臣身/

동쪽으로 올 때 가지고 온 조복으로 갈아입고

  遙望松京哭滿巾/

송도를 바라보니 애달파 눈물만 흐르네.

  唐虞世遠吾安適/

요순성대 가버렸으니 어디서 머물리요

  矯首西山繼絶塵/

서산을 향하고 세상 인연을 끊네

채미헌(採薇軒) 전오륜의 시다. 이 시는 개성의 남동쪽에 있던 광덕산 부조현에서 조복(朝服)을 벗어던지고 두문동으로 들어가 머물던 상황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 동쪽을 정선땅으로 해석해도 잘 어울린다.

  전오륜이 정선에 은거하며 여주에 은거하던 이색과의 접촉 등으로 암울한 시국상이 정선인들에게 반영된 것이다. 이때의 상황이 아라리에 반영되여 형성된 사설이 정선아라리의 제1절격인 다음의 사설이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 장마 질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참고문헌]

 高麗史

 太祖實錄

 採薇軒實記

◎ 거연정

고려시대 말기 전오륜의 7대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전시서(全時敍)가 1640년경 서산서원을 짓고 그 곁에 정자를 처음으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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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문화인물  전오륜선생과  

채미헌전선생실기

▷採薇軒全先生實記

(奎12021,奎6310), 

全秉佑(朝鮮)等編.

 3卷 1冊(45張) 木版本 30.1×19.4cm.

 上下雙邊 半郭:19.8×14.7cm.

 8行 18字 注雙行.

 版心:上下花紋魚尾.

 序:金陽淳, 徐有畬.

 跋:吳達善.

 高麗 72賢 중의 한 사람인 全五倫(生歿年未詳)의 행적을 모은 것으로 후손인 全一壽가 1833년(純祖 33) 遺稿 및 관련된 문서들을 모아 편찬하려고 했으나 그 후 보충자료를 더 수집, 1866년(吳達善跋)에 西山書院에서 다시 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全五倫은 字를 仲至, 號를 採薇軒이라했고 生歿年은 未詳이다.

1368년 文科에 급제, 陜川郡守, 晋州牧을 거쳐

1372년 持平, 掌令, 慶尙道按廉使를 역임했으며

1389년 大司憲에 올랐다.

1391년 右常侍, 左常侍, 左散騎常侍, 刑曹判書를 역임했으나 그 이듬해 高麗가 멸망하자 71賢과 함께 杜門洞으로 숨었다.

그 뒤 李太祖에 의해 本鄕安置의 처벌을 받았으며 석방된 뒤 旌善의 瑞雲山에 은거했다. 安義의 西山書院에 祭享되었다.

卷首에 金陽淳과 徐有香의 序文이 있고

卷末에 吳達善의 跋文(1866)과 刊記가 있다.

卷{1}:

述懷, 本傳, 字說, 濫瀛野史, 附諸賢寄贈, 麗季九貞忠, 圃隱善友, 不朝峴言志錄, 識 등.

卷{2};

御製不朝峴聯句, 不朝峴碑, 陰記 등.

卷{3};

祠宇錄, 西山書院奉安告文 등.

「述懷」

는 全五倫이 瑞雲山에서 松京을 바라보며 통곡한 詩이며,

「字說」

은 五倫의 字(仲至)를 李穡이 풀이한 것이다.

「附諸賢寄贈」

은 李穡, 韓脩, 鄭夢周, 申晏, 李遂生등이 全五倫을 위해 쓴 글들이며,

「麗季九貞忠」

에는 金自粹, 全五倫, 申晏, 李行, 李思敬, 李遂生, 高天祐, 裵尙志, 鄭凞良 등 9명의 간단한 略歷이 수록되어 있다.

「圃隱善友」

에는 邊安烈, 全五倫 등 鄭夢周와 가까이 지내던 9명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下朝峴志錄」

은 麗末의 忠臣 및 杜門洞에 들어간 사람들의 행적들이 기술되어 있으며,

「御製不朝峴聯句」

는 英祖가 松都에 갔을 때 不朝峴에 관한 故事에 감동되어 지은 글이다.

한편 同題名의 本은 吳達善의 跋과 刊記가 없는 後寫本이다.

本書는 高麗末의 杜門洞 72賢을 중심으로 한 舊官僚들의 동태와 鄭夢周, 李穡, 全五倫 등의 관계를 살피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이다.

▶이달의 문화인물 전오륜 선생

본사·문화원聯 도지회 선정

강원도민일보사와 문화원연합회 도지회가 공동으로 기리는 12월의 강원문화인물로 불사이군의 고려 충신 채미헌(採微軒) 전오륜(全五倫) 선생이 선정됐다. ▶관련특집 9면

 고려 말기의 문신인 전오륜은 정선이 본관으로 우상시(右常侍)·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형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는 등 뛰어난 공직자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스스로 호를 채미헌이라 짓고 망국 고려에 대한 충절과 불사이군의 곧은 절의를 몸으로 실천했다. 이후 태조 이성계의 노여움을 사 본향안치(本鄕安置)의 처벌을 받아 고향 정선으로 유배됐다. 선생은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도 동지 여섯 명과 함께 정선 서운산에 은거하며 충절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2005년 12월 05일 (월)

강원도민일보

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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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민일보사와 문화원연합회 도지회가 공동으로 선정해 얼을 기리고 있는 '2005년도 이달의 자랑스런 강원문화인물'이 선정됐다.

새해 자랑스런 인물은

1월 유인석(춘천),   2월 박용철(철원),

3월 함홍기(양양),   4월 김현도(양구),

5월 용득의(홍천),   6월 이승훈(평창),

7월 원천석(원주),   8월 한백록(춘천),

9월 최문한(강릉),  10월 윤기영(원주),

11월 안삽교(횡성), 12월 전오륜(정선)

선생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과 함께 왜구를 격퇴한 한백록 장군을 비롯해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인 이승훈, 고려시대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지사 전오륜, 한말 의병운동의 선구적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유인석 의병장 등이 망라됐다.

 강원도민일보사와 문화원연합회 도지회는 지난 2000년부터 '이달의 자랑스런 강원문화인물'사업을 실시해 오면서 매월 강원이 낳은 인물에 대한 역사적 위상을 재조명, 강원문화 및 정신사를 정립하고 있다.

2005 강원 문화인물

1월 유인석(춘천)

2월 박용철(철원)

3월 함홍기(양양)

4월 김현도(양구)

5월 용득의(홍천)

6월 이승훈(평창)

7월 원천석(원주)

8월 한백록(춘천)

9월  최문한(강릉)

10월 윤기영(원주)

11월 안삽교(횡성)

12월 전오륜(정선)

유주현 joohyu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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