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군/정보] 양양군 서면의 문화재

본문

강원도 양양군 서면의 문화재 자료

그림이나 사진 부탁드립니다.

63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1

은하수평선님의 댓글

회원사진

(강원도 양양군 서면의 문화재)

1.양양 선림원지 삼층석탑

종 목  보물 제444호

지 정 일  1966.09.21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424

시 대  통일신라

1948년에 명문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되어 주목되었던 선림원터에는 석탑을 비롯하여 석등·홍각선사탑비·석조부도 등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들 석조유물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으나 모두 복원되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으로, 법당터 남쪽의 원래 위치에 복원되었다. 여러 장의 돌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8부중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높은 편이며, 2층 몸돌은 반으로 체감되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 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다.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머리장식받침)이 있고, 철제찰주를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형이 아닌 듯하다. 외형상 정제된 비례를 보여주지만 8부중상의 조각은 섬약하고 석재의 구성도 규율성을 잃고 있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나 기단부의 짜임이나 각 부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9세기경 신라 후기에 가까운 것으로 짐작된다. 복원공사가 진행되기 전 기단부에서 소탑 60여 기와 동탁 1개가 발견된 일이 있다. 탑 앞에는 안상을 새긴 배례석이 남아 있다.

2.양양 선림원지 석등

종 목  보물 제445호

지 정 일  1966.09.21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424

시 대  통일신라

선림원터 안의 서쪽 언덕 위에 놓여있는 돌로 만든 등이다. 선림원은 신라의 옛 절로, 이 곳에서 출토된 신라범종을 통해, 당시 해인사를 창건했던 순응법사에 의해 창건되었음이 밝혀졌다. 지금은 이 터가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여러 유물들이 남아있고 각종 기와와 토기조각들이 아직까지도 발견되고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석등은 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이 석등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형식을 따르면서도 받침돌의 구성만은 매우 독특하여 눈길을 끈다. 아래받침돌의 귀꽃조각은 앙증맞게 돌출되어 아름답고, 그 위로 가운데받침돌을 기둥처럼 세웠는데, 마치 서 있는 장고와 같은 모양이며 그 장식이 화려하다. 즉 기둥의 양끝에는 구름무늬띠를 두르고 홀쭉한 가운데에는 꽃송이를 조각한 마디를 둔 후, 이 마디 위아래로 대칭되는 연꽃조각의 띠를 둘러 모두 3개의 마디를 이루게 하였다. 화사석은 8각으로 빛이 새어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었고, 각 면의 아래에는 작은 공간에 무늬를 새긴 매우 드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지붕돌은 8각의 모서리선이 뚜렷하며, 추녀에는 아래받침돌에서 보았던 같은 모양의 귀꽃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경사진 면은 가파르지 않고 부드러운데, 귀꽃조각과의 어우러짐이 자연스럽다. 꼭대기에는 연꽃이 새겨진 머리장식의 작은 받침돌만 남아 있다. 지붕돌이 일부 탈락되긴 하였으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전체적인 양식과 장식적으로 흐른 조각 등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담양 개선사지 석등(보물 제111호)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같은 절터내의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보물 제446호)와 함께 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3.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종 목  보물 제446호

지 정 일  1966.09.21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424

시 대  통일신라

홍각선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탑비이다. 선림원터에 있으며, 통일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비는 일반적으로 비받침인 거북머리의 귀부와 비몸, 비머리돌로 구성되는데 이 비는 비받침 위에 바로 비머리가 올려져있다. 비문이 새겨지는 비몸은 파편만 남아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던 것을 2008년에 비신을 새로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비받침의 거북은 목을 곧추세운 용의 머리모양으로 바뀌어있고, 등에는 6각형의 무늬가 있다. 등에 붙어 있는 네모난 돌은 비몸을 세우는 자리로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새겨 있다. 비머리에는 전체적으로 구름과 용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었고, 중앙에 비의 주인공이 홍각선사임을 밝히는 글씨가 있다. 홍각선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비의 파편과 『대동금석서』에 의하면, 경서에 해박하고 수양이 깊어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비문은 운철이 왕희지의 글씨를 다른 곳에서 모아 새긴 것인데 신라 후기에 왕희지의 글씨가 보급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4.양양 선림원지 승탑

종 목  보물 제447호

지 정 일  1966.09.21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산 89

시 대  통알산라

선림원은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가 연 절로, 1948년 절터에서 연대가 804년으로 적힌 신라시대 범종이 나오면서 창건연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승탑은 일제강점기에 완전히 파손되었던 것을 1965년 11월에 각 부분을 수습하여 현재의 자리에 복원한 것으로 기단부 만이 남아있다. 기단의 구조로 보아 8각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승탑임을 알 수 있는데, 신라 때에 돌로 만든 승탑은 대부분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정사각형의 바닥돌 위로 기단의 아래받침돌·중간받침돌·윗받침돌을 올렸다. 아래받침돌은 2단인데, 아래단이 바닥돌과 한 돌로 짜여진 점이 특이하다. 윗단에는 두 겹으로 8장의 연꽃잎을 큼직하게 새기고, 그 위에 괴임을 2단으로 두툼하게 두었다. 중간받침돌은 거의 둥그스름한데 여기에 높게 돋을새김해 놓은 용과 구름무늬의 조각수법이 매우 웅장한 느낌을 준다. 윗받침돌에 2겹으로 새긴 8장의 연꽃잎은 밑돌에서의 수법과 거의 같다. 기단의 위아래를 마무리하는 수법에서 뛰어난 안정감을 보이고 있는 승탑으로, 기단 아래받침돌 밑을 크게 강조한 것은 8각형의 일반적인 승탑양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승탑의 건립시기는 절터에 남아있는 홍각선사비와 이 승탑이 홍각선사의 승탑인 점으로 미루어 신라 정강왕 1년(886)인 것으로 볼 수 있다.

5.양양 오색리 삼층석탑

종 목  보물 제497호

지 정 일  1968.12.19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약수길 132 (오색리 산1-21)

시 대  통일신라

강원도 양양의 오색약수터에서 약 2㎞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이곳은 성국사터라 전해지는데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3층석탑 외에 또다른 부재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 넓지 않은 사찰이었다고 추정된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두고 있는 형태이다. 기단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위층 기단의 맨윗돌에는 네 모서리에 빗물이 흐르는 홈을 표시하였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는데, 1층 몸돌에는 사리를 두던 네모진 공간이 있다. 지붕돌은 윗부분에서 경사를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약간씩 들려 있어 탑 전체에 경쾌한 느낌을 더해준다. 완전히 쓰러져 있던 것을 1971년에 복원한 탑으로, 정연하게 구성된 2단의 기단과 지붕돌의 얇은 낙수면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6.구룡령 옛길

종 목  명승 제29호

지 정 일  2007.12.17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구룡령로 1103-10 (갈천리 산1-1) 외

시 대  조선시대

『구룡령 옛길』은 양양과 홍천을 연결하는 옛길로 산세가 험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 산세가 평탄하여 양양, 고성 지방 사람들이 한양을 갈 때 주로 이 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상품 교역로였고, 양양, 고성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갈 때 명칭에서 유래하듯 용의 영험함을 빗대어 과거 급제를 기원하며 넘나들던 길이라 하며, 구룡령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서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하고 있다. 옛길 입구에는 굽이져 흐르는 계곡이 있고, 길의 중간중간에 길의 위치를 표시하는 횟돌반쟁이, 묘반쟁이, 솔반쟁이 등이 자리하여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옛길 걷기의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구룡령 옛길에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되어 일대 주민들이 강제 징집되었던 애환의 역사가 서린 철광소와 케이블카가 남아 있고, 옛길 길가에는 1989년 경복궁 복원 당시 사용되어 밑둥만 남아 있는 소나무 거목 흔적이 남아 있는 등 조선시대와 근현대사의 역사가 함께 잔존하여 역사적 가치가 큰 소중한 명승지이다.

7.양양 오색리 오색약수

종 목  천연가념물 제529호

면 적  400㎡

지 정 일  2011.01.13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설악산국립공원 내

토양에 흡수된 물이 나트륨과 철분을 용해한 후 기반암 절리를 통해 솟아나고 있으며, 약수가 대개 암설층에서 솟는데 반해 기반암에서 솟아나는 희소성이 있다. 나트륨 함량이 높아 특이한 맛과 색을 지니며, 1500년경 오색석사 사찰의 스님이 발견한 이후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문화적인 가치가 있다.

8.양양 이두형 가옥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1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대문터길 6-5 (서선리 46-1)

시 대  조선시대

소나무 숲이 울창한 야산을 뒤로 하고 있는 이 집은 경주 이씨의 종가로 약 20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의 전형적인 온돌 중심의 겹집에 마루가 도입된 민가이다. 앞면 4칸·옆면 2칸의 본채를 기본으로, 왼쪽 앞으로 외양간을 1칸·뒷쪽으로 방과 창고를 1칸씩 덧붙여 T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본채는 지붕 옆 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으로, 오른쪽 3칸은 방을 겹쳐서 배치하였고 왼쪽 1칸은 부엌을 두었다. 부엌과 연결된 외양간의 윗부분을 수납공간으로 활용하며, 부엌과 연결된 방으로의 출입은 밖에서만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본채에 덧붙여 지은 집은 지붕 옆 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옆 마당에는 2칸의 부속건물이 있으며, 여자들이 주로 출입하는 작은 문이 옆쪽에 있다. 남쪽의 앞마당에 심으면 좋다는 대추나무가 2그루 있어 풍수지리에 대한 고려가 엿보인다.

9.양양 선림원지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53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 424

시 대  통일신라

선림원은 9세기 초 순응법사에 의해 창건된 후 홍각선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전한다. 1985년 동국대학교의 발굴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대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절터가 완전히 매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8년에는 신라 동종이 출토되기도 하였는데 이 종은 상원사 범종, 에밀레종과 함께 통일신라 범종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유물이다. 월정사에 옮겨 보관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현재는 일부 파편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춘천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사지에 남아있는 문화재로는 삼층석탑(보물 제444호)과 승탑(보물 제447호), 석등(보물 제445호), 승탑비(보물 제446호)들이 있다.

10.양양 서림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9호

지 정 일  1996.09.30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구룡령로 2115 (서림리 74-1)

시 대  통일신라

현재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 교정에 3층석탑과 함께 보존되어 있는 불상으로, 1965년 가까운 논에서 발견되어 옮겨 놓은 것이다. 불상의 머리는 없어졌고 몸도 손상이 많은 상태이다.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싼 형태로 보아 비로자나불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8각형의 대좌는 결실된 부분이 있지만 조각솜씨가 매우 우수하다. 밑받침돌 위에 4매의 석재로 구성된 하대석을 올려 놓았는데, 각 면마다 1구씩의 사자를 돋을새김하였다. 8각 중대석은 각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기고 그 사이에 1구의 향로와 7구의 보살상을 배치하였다. 중대석 위에는 별도로 8각의 딴 돌을 놓았는데 이것은 원래 중대석 받침돌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별도로 중대석 받침을 만든 예는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과 청룡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24호)처럼 9세기 중엽의 대좌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불상의 주변에는 기둥주춧돌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으며, 약사여래입상 1구가 발견되어 국립춘천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1.양양 서림사지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0호

지 정 일  1996.09.30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구룡령로 2115 (서림리 74-1)

시 대  고려시대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 운동장 반대편 건물 뒷쪽에 서 있는 탑으로, 원래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논에 있던 것을 1965년 옆에 있는 서림사지석조비로자나불좌상(강원도문화재자료 제119호)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탑은 1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의 1·2층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둔하고 무거워 보이는데, 네 귀퉁이가 경쾌하게 들려있어 무거운 맛을 덜어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1·2층은 4단, 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대역할을 하는 네모난 노반이 3층 지붕돌과 한돌로 조각되어 있다. 몸돌의 너비가 좁고 두툼한 지붕돌이 급경사로 이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가늘고 길어 보이고 안정감이 적다. 기단과 지붕돌의 모습으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159 건 - 6 페이지
댓글 제목
댓글+2
댓글+1
댓글+1
댓글+1
댓글+3
댓글+1
댓글+1
댓글0
댓글+2
댓글+1
댓글+1
댓글+1
댓글+2
댓글0
댓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