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정보] 강릉시 저동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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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의 문화재와 축제 조사, 화보 수집해보기가 있어요~
제 고장은 강릉시 저동 입니다! 많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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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순영신영맘님의 댓글
(강원도 강릉시 저동의 문화재)
1.강릉 경포대와 경포호
종 목 명승 제108호
지 정 일 2013.12.30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365 (저동 94) 시 대 조선시대
강릉 경포대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고려말 충숙왕 13년인 1326년 지중추부사 박숙에 의해 창건된 누정건물로 안축의 「경포대신정기」기문에 “옛날 영랑선인이 놀던 곳이며 정자가 없어 비비람이 치는 날 놀러왔던 사람들이 곤욕스럽게 여겨 작은 정자를 지었다”라고 하여 창건목적을 밝히고 있어 역사성이 높다. 또한 창건 당시 이전시대의 주춧돌과 장대석이 발견되어 훨씬 이전시대부터 이곳에 정자형태의 건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강릉지역 누정 기록으로 신라 성덕왕대 순정공과 관련이 있는 임해정과 술랑선도와 관련이 있는 한송정을 통하여 현존하는 경포대와 더불어 강릉 지역의 누정문화의 시원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경포대는 지형∙지질적 가치가 뛰어난 자연석호인 경포호와 함께 동해안의 빼어난 절승지로 예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간 명승지로서 명사들의 수많은 시∙서∙화가 있어 역사문화경관적 가치가 높다. 경포대와 경포호의 자연풍광을 관동팔경에 비유한 경포팔경과 호해정을 중심으로 한 팔경, 김극기의 강릉팔영 등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천혜의 자연경관을 조망하며, 심성을 수양하는 곳일 뿐 아니라 풍부한 문학적 소재성 등 문화적, 경관적 요소가 결합된 누정으로 장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영조 22년(1746년) 김상성(1703~1755)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화원들에게 강원도 절경을 그리게 한 후 친한 사람들에게 시를 지어 완성한 작품이 관동십경인데 그 중의 경포대 그림은 경포대와 경호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부감법으로 그린 것으로, 경호는 경포대를 경계로 하여 내호와 외호로 구분하고 있으며, 호수에는 낚시질을 하는 늙은 어부와 갈매기의 한가로운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호수와 바다가 경계되는 곳에는 백사장과 함께 현재의 죽도봉이 그려져 있고, 초당과 경포대 뒤쪽에는 소나무 사이로 꽃들이 만발하여 봄날의 정취를 감상할 수 있으며, 멀리 강문 너머로 보이는 동해 바다에는 아침해가 떠오르는 일출 모습과 함께 햇살을 받으며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돛단배를 그리고 있어 경포호의 옛 자연환경 및 인문환경을 알 수 있어 가치가 높다.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서 경포대를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 했으며, 경포대에 저녁이 되어 달빛이 쏟아지면 하늘, 바다, 호수, 그리고 술잔과 임의 눈동자 등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는 동해안 제일의 달맞이 명소이다. 경포대 정자 내에는 율곡 이이가 10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하여 숙종어제시, 조하망의 상량문 등 여러 명사의 시문현판은 인문학적 가치가 높다. 강릉 경포대는 고려말 1326년 지추부학사 박숙이 방해정 뒷산의 인월사터에 세웠던 것을 1508년에 강릉부사 한급이 현재 자리로 옮겼고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춘 약 680여년의 역사성을 지닌 누정건축물이며, 경포호와 더불어 탁월한 역사문화적 경관성을 지닌 곳이다. 강릉 경포대는 16세기 이후 지방 재지사족이 주체가 되는 별당식 정자 형태로 전환되는 누정건축 양상의 변화를 고찰할 수 있는 중간적 의미를 갖는 정자로서 건축역사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서거정(1420-1488)의《동인시화》설화 홍장 고사는 경포대에서의 홍장과 강원 감찰사 박신과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구전문학의 가치가 높음 곳이다.
2.강릉 경포대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365 (저동 94) 시 대 조선시대
관동팔경의 하나로 경포호수 북쪽 언덕에 있는 누각이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방해정 뒷산 인월사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조선 중종 3년(1508)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를 하였다고 한다. 태조(재위 1392∼1398)와 세조(재위 1455∼1468)는 친히 이 경포대에 올라 사방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앞면 5칸·옆면 5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모두 4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며 마루의 높이를 달리하는 입체적 평면을 하고 있다. 이름인 ‘경포대’ 전자체 현판은 유한지의 글씨이고, 해서체 현판은 이익회의 글씨이다.
내부에는 숙종이 직접 지은 시와 율곡 이이가 10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글이 걸려있다. ‘제일강산’은 주지번의 글씨로 알려져 있는데 ‘제일’과 ‘강산’의 글씨체가 다른 것으로 볼 때 ‘강산’은 뒷날 다른 사람이 써 넣은 것으로 보인다.
누각 주위에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들이 알맞게 우거져 운치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
3.강릉 방해정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0호 지 정 일 1976.06.17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449 (저동 8) 시 대 조선시대
산석거사 이봉구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 말년을 보내던 집이다. 원래 이곳은 삼국시대의 사찰인 인월사가 있던 자리이다.
이봉구는 벼슬에서 물러난 후 관청건물에 속한 객사의 일부를 헐어다가 이곳에 정자를 짓고 방해정이라 이름지었다. 조선 철종 10년(1859)에 처음 지었고, 1940년 그의 후손인 이근우가 다시 지었으며 1975년에 보수공사가 있었다.
산과 소나무숲을 배경으로 경포호를 바라보고 있으며,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의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별장이면서 온돌방, 마루방, 부엌 등을 갖추어 살림집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오른쪽에 누마루를 내고 왼쪽에 온돌방을 내었는데, 마루방은 8칸 크기로 앞과 옆에 각각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누마루의 왼쪽 2칸은 서쪽을 향해있기 때문인지 4짝의 골판장문을 달아 각각 빛을 차단하게 하고 1칸에만 이들 문보다 조금 낮게 2짝의 띠살문을 달아 빛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4.경양사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9호 지 정 일 1977.11.28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저동길 113 (저동 293) 시 대 조선시대
신라 때의 충신 박제상을 제사지내는 사당으로, 강릉 박씨 종친에서 1900년대 초에 지었다.
박제상은 417년에 즉위한 눌지왕의 부탁으로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있던 왕의 동생 복호를 데려오고, 일본에 잡혀있던 왕자 미사흔을 신라로 탈출케 한 뒤 자신은 체포되어 유배되었다가 살해되었다. 또한 그의 부인은 그를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안에는 조선 숙종(재위 1674∼1720)과 정조(재위 1776∼1800)가 직접 지은 시가 전해오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5일에 차례를 지낸다.
5.강릉 호해정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2호 지 정 일 1979.05.30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463번안길 83 (저동 443) 시 대 조선시대
경포호의 북쪽 언덕 위에 위치한 정자로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김습독이 처음 지었다. 그 뒤로 그의 사위 장호를 거쳐 장호의 동생 민의 사위 김몽호에게 넘겨진 후, 지금까지 그의 자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이 부근 대부분의 정자들이 호수가 바라보이는 곳에 있는데 반해, 호수의 동북쪽 깊숙한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소박한 모습을 띤 이 정자는 온돌방과 마루방을 두고 방 사이에 분리할 수 있는 분합문을 달아, 필요할 때 하나의 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지금도 김몽호의 후손들이 해마다 9월에 이곳에서 차례를 지낸다.
6.금란정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371번길 57 (저동 15-1) 시 대 조선시대
금란정은 조선 후기 선비인 김형진이 지은 집으로, 경포호가 바라보이는 경포대 북쪽 시루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는 매화를 심어 학과 더불어 노닐던 곳이라 하여 매학정이라 이름하였다. 그 뒤 주인이 바뀌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으면서 이름을 금란정이라 고쳐 불렀다.
건물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에는 ‘금란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옆면에는 ‘경중별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7.강릉 저동 모선재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저동길 113 (저동 293) 시 대 일제강점기
박자검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일명 경포재청이라고도 한다. 박자검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지여연군사, 권농병마단련사, 지단천군사 등을 역임하였다.
사우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로 2단의 석축 위에 지었다. 지붕은 맞배기와지붕이다. 정면의 4칸 중 중앙의 2칸에는 툇마루가 있으며, 양쪽 측면에는 방을 놓았다. 내부에는 박원동이 지은 경포재청중건기, 단천공묘역정화기 등이 걸려 있다. 1938년에 건립하였으며 매년 음력 3월 5일에 제향하고 있다.
8.전충사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저동 시 대 현대
강릉시 저동 경포대 서쪽 산지에 있는 사우로 고려 말기의 충신 포은 정몽주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사우는 1934년에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에 건립하였으며, 정기용이 개성 숭양서원에 있는 정몽주 영정의 진영을 모사하여 봉안하였다.
이후 교통이 불편하여 1969년에 강릉시 저동으로 이건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솟을대문에는 ‘상도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현재 전충사에 남아 있는 영정은 1969년에 충렬서원의 진영을 서세옥이 모사한 것이다. 매년 음력 4월 상정일에 제향하고 있다.
9.경호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저동 시 대 일제강점기
1927년에 강릉 지역의 주민들이 창회계를 조직하고 강신 활동을 위하여 건립하였다. 정각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로, 지붕은 팔작기와지붕에 겹처마이다. 정면의 2칸은 세살문을 달았으며, 측면의 2칸은 판합문을 달았다.
정각의 전면에는 해서와 전서로 쓴 ‘경호정’ 현판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경호정기’, ‘경호정상량문’ 등이 걸려 있다.
10.상영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저동 경포대 동쪽 호수 근처 시 대 조선시대
1886년(고종 23)에 강릉 지역 향토유림 16인이 상영계를 조직하고 강신 활동을 위하여 건립하였다. 정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이다.
겹처마에 팔작기와지붕으로 지어졌다. 정면의 3칸 중 2칸에는 마루를 놓았고, 나머지 1칸에는 4쪽 세살문을 달았다. 정면에는 ‘상영정’ 현판과 농 최대순, 경운 김영래의 시판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상영계원록, '상영정인' 등의 기문과 시문이 걸려 있다.
11.월파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저동 시 대 현대
경포호수 안에 있는 팔각 누정으로 1958년 기해생(己亥生) 동갑계원 28명이 건립하였다. 월파정 위에 새 모양이 세워져 있다. 월파정이란 이름은 경포호수에 비친 달빛이 물결에 흔들리는 것에 비유하여 지어졌다.
기해생 동갑 계원들이 소요처로 건립하였다. 월파정은 팔각으로 지어졌으며, 건물은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12.창랑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저동 시 대 현대
강릉 지역의 일구동경계, 임자계, 영춘계 등 세 계의 계원들이 건립하였다. 정자는 1765년(영조 41)에 김한성이 건립한 창석정의 기와와 목재를 사용하였다. 정각의 앞쪽에는 경포호수가 펼쳐져 있고, 뒤쪽은 동해바다가 감싸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내부에는 ‘창랑정기’, ‘창랑정상량문’, ‘창랑정중수기’ 등이 걸려 있다.
13.강릉 저동 신라고분군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저동 시 대 신라
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분군이다.저동 고분군은 경포파출소 뒤 해발 16m의 구릉과 구릉의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모래사구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신라토기편과 석곽을 축조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발견되고 있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곳 사구지대에 많은 석곽들이 있다고 한다.
14.열부 장진문 처 강릉김씨지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저동 산29번지 시 대 조선시대
장진문의 부인 강릉김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강릉김씨는 스무 살 때 남편을 잃고, 그 후로 바깥출입을 삼가고 정절을 지켰다. 또한 홀어머니를 지극히 모셨으며, 아침저녁으로 조상의 신주 앞에 전을 올렸다.
정려각은 원래 조선 중기에 강릉시 옥천동에 세워졌으나 장씨 가문이 고흥으로 낙향하면서 정려각을 함께 가지고 가서 현재는 비석만 남아 있다. 정려비는 받침돌 없이 높이 비신과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고, 139㎝, 너비 54㎝, 두께 22㎝ 크기의 청석 재질로 만들었다. 전면에는 ‘장진문처절부김씨지려’라고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