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군/정보] 강원도 화천군 사창리유래에 대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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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 사창리유래에 대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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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딸기맘님의 댓글
본래 춘천군 사내면 지역으로 옛 사탄향(史呑鄕)의 창고가 있었으므로 사창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창말, 솔대, 횃골을 병합하여 사창리라 하였고, 1954년 화천군에 편입되었다.
1971년에 사창 1,2,3,4리로 분할되었고, 1974년에 5,6리로 분할되었다.
예로부터 실은창말 혹은 창말이라고 불리웠다.
또한 세군데 집터와 여덟고개로 둘러 싸였다하여 3대(垈) 8관이라 하였다. 3대는 솔대(현 사창6리 지역), 면대(현 삼일리 지역, 27사단 사령부지역), 맹대(현 광덕리지역)를 칭한다.
창말의 유래는 조선시대 임금이 피신을 할 경우에 이곳으로 피신할려고 국창(國倉)을 지어놓고 토지에서 나오는 도지를 받아서 창고에 저장했다가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도록 나눠주고 햇곡식이 나오면 매년 도지를 받는 일을 되풀이해 왔으며 이러한 관계로 국창이 지어져 있었다하여 창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며 외창(外倉)과 내창(內倉)이 있었고 서적도 보관했다고 한다.
출처 : 화천문화원
http://www.hcmunhwa.or.kr/bbs/board.php?bo_table=sub3_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