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군/정보] 정선군 정선읍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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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 정선읍내에 산재해 있는 주요 문화재와 역사유적으론 무엇이 있습니까?

불교관련 문화재는 어떤 것이고

순수한 역사유적은 무엇이 있으며.....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보호하는 것은 무엇인지.....

 

여러분들의 진지하신 답변 많이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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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삐님의 댓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의 문화재)

 

1.정선 상유재 고택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89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봉양3길 22-8 (봉양리 217-1)  시 대 조선시대

여말선초 제주고씨 중시조가 낙향 건립한 목조 건축물로 정선읍내 현존하는 가옥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우물 정(井)자 형의 평면을 지녔으며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 건립되어 있다.

 

가옥구조는 전반적으로 양반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양식이며 사랑채의 마루는 정자형으로 건축되어 있고 1921년경 가옥 일부를 중·보수한 적이 있다고 하며 대문 우측에는 수령 약600여년 된 뽕나무 2주가 도기념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근대에는 1934년 을해년 수해시 사랑채 보수가 있었으며. 1999∼2000년 8월까지 안채와 사랑채 전면 해체 보수와 토석담장 복원공사가 이루어졌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창고 등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이 에 행랑채 및 기타 부속 건물을 합하여 200여 평이 넘는 큰 집이었다고 한다. ㄷ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고학규 고택에는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인 넓은 후원이 없고, 집 서쪽에 정원의 위치로 보이는 터가 있는 점이 특이하다.  

 

2.정선 강릉부 산삼봉표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지 정 일 1994.09.23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가내길 100 (회동리 산1)  시 대 조선시대

봉표란 나라에서 일정한 곳의 출입을 금지하는 경계표로, 이 비는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에서 평창군 진부면 장전리로 넘어가는 고개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옛부터 이 지역은 인삼과 산삼이 많이 나는 곳으로 삼을 캐려는 사람들의 손길이 빈번했다. 이에 나라에서 삼의 주산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를 세워 출입을 금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성격의 봉표로서는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유일한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

 

비는 길쭉한 자연석을 옆면과 뒷면만 다듬어 사용하였다. 앞면에는 가로로 ‘강릉부삼산봉표’라는 글씨를 크게 새기고 오른쪽 옆면에는 ‘지명마항’, 왼쪽 옆면에는 ‘정선계’라는 작은 글씨를 새겼다.

 

비석을 세운 시기는『신보수교집록』형전 금제조의 기록으로 보아, 조선 영조 3년(1723) 경으로 추측된다.  

안채는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집으로, 중앙에는 대청마루·웃방·안방·부엌이 있고, 대청마루에서 건넌방이 부엌에서는 정지방이 ㄷ자로 연결되어 있다.

 

 

3.봉양리 뽕나무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7호   수량/면적 2주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봉양3길 22-8 (봉양리 217-9) 시 대 조선시대

뽕나무는 추위에 견디는 힘이 강해 전국 어디에서나 자란다. 나무껍질은 회갈색 또는 회백색이고, 잎은 긴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6월에 피고 열매도 6월에 맺어 검은색으로 익는다. 뽕나무 잎은 누에치기에 있어서 필수적이라 국가에서는 일찍부터 뽕나무 재배를 권장하였다.

봉양리의 뽕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5m, 둘레 2.5m로 전국에서도 크고 오래된 뽕나무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나무의 유래에 대하여는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제주 고씨가 관직을 버리고 정선으로 내려 오면서 옮겨다 심은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옛부터 봉양리 일대를 가리켜 상마십리라 불렀던 점으로 미루어 길쌈이 성행하였던 것으로 추정되어지나, 현재는 뽕나무밭에 마을이 들어서고 한 그루의 뽕나무만 남아있다. 

 

 

4.정선 비룡굴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34호   수량/면적 1개소 지 정 일 1980.02.26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비룡동길 208 (용탄리 산1)

시 대  미상

정선 비룡굴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동굴로서, 총 길이는 1.2㎞에 달한다.

동굴은 가로 한 줄의 형태로 되어있으며 곳곳에 넓은 공간이 있는데, 동굴 속에 용이 살고 있어 홍수와 가뭄 등의 피해를 준다고 하여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동굴은 동굴 안에 흐르는 물이 없어 동굴 퇴적물의 생성을 볼 수 없는 퇴화과정의 동굴로, 꽃모양의 석화는 많이 발달하고 있으나 지하수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석순이나 종유석 등은 빈약하다.

정선 비룡굴에는 들어가는 부분의 넓은 공간과 동굴 끝 부분의 물웅덩이에 화석으로만 볼 수 있다는 갈로와 벌레가 살고 있어 이름나 있다. 

 

 

5.정선향교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1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비봉로 67-5 (봉양리 385)   시     대 조선시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정선향교는 원래 삼봉산 기슭에 있었는데, 조선 선조 38년(1605)에 대홍수로 향교가 없어져 몇 차례 옮겨 지었다가 영조 8년(1732) 지금 있는 자리에 세웠다. 대성전과 동·서무를 먼저 완성하였고, 그 다음해 학생들의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부속 건물을 완성하였다. 1960년 대성전을 새롭게 단장하고 명륜당과 다른 건물은 그 이후에 보수하였다. 배치는 대성전 앞 양쪽에 각각 동무와 서무가 있다. 대성전 앞면에는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명륜당 앞 양쪽에는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다.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이며, 동재·서재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6.밀양박씨 정려각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광하2리 5반  시 대  조선시대

부인의 본관은 밀양박씨에 후예 동식씨의 이녀로 방년 십팔세에 실직군왕휘 위옹의 이십구세손 김공휘 상영씨에 출가하여 부모를 효성으로 모시고 봉양함에 절도가 있고 동기간에 우애하는 마음이 연일하여 끊어지지 않고 가사치산을 잘하더니 나이 삼십일세에 당도하여,남편이 우연히 병을 얻어 두어번 신음하다가 별세하니 부인이 정세 위급함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입에 대이니 세시간 회생하여 유언 왈 눈 어두운 노모를 극진히 공양하고 어진 남매를 잘 양육하라 하고 별세하니 이 불길하여 슬픈상을 당한중에 며느리 또한 자살하면 내일신과 어린 아이는 누구에게 의탁할꼬하며 극진말유하니 부인이 노모의 명령을 어기지 못하여 묘소를 겨울에는 눈을 치고 여름에는 잡초를 제거하며 삼년상을 종료하고 어두우면 문안인사를 드리고 새벽에 문안 드리는 예절을 끊지않더니 시모가 우연히 득병하여 별세하니 삼년상을 애통으로 마치니 도내선비 여러분이 효부로 추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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