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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사천면 소재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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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사천면의 문화재)

 

1.강릉 방동리 무궁화

종 목  천연기념물  제520호  지 정 일 2011.01.13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346 (가마골길 22-8)  시 대 조선시대

무궁화의 일반적인 수명이 40~50년임에도 수령이 100년이 넘고 나무의 둘레가 146cm로 현재 알려진 무궁화 중 가장 굵으며 꽃이 홍단심계로 순수 재래종의 원형을 보유하고 있다.

높이 4.0m, 가슴높이 둘레(서쪽가지 0.43m 중앙가지 0.58m 동쪽가지 0.48m)

수관폭(동서 5.70m, 남북 5.90m), 근원둘레 1.46m, 지하고 1.6m, 수령 110년(추정) 

 

 

2.강릉 박치규 가옥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2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본동길 190-8 (미노리 111)  시 대  일제강점기

1910년경 현 소유주의 아버지가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지만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이 집은 해변의 숲과 넓은 들판을 앞에 두고 낮은 산을 등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ㅁ자 평면을 갖춘 집이다.

안채는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부엌 왼쪽에 안방과 상방·사랑방을 두고 앞쪽으로 곳간과 마구간을 두었다.

사랑채에는 대청과 광, 방을 배치하였는데 앞쪽으로 대청과 연결되는 툇마루가 있어 방을 연결시키고 있다.

헛간채는 ㄱ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으며 곳간과 닭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3.강릉 용연사 석탑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9호   지 정 일 2006.07.28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중앙서로 961 (사기막리 821) 용연사   시 대  조선시대

용연사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 잡은 3층 석탑이다. 1967년 본래 있던 기단부에 주위에 흩어져 있던 부재를 모아 조립한 석탑이다. 기단부의 판석을 중첩해서 쌓은 양식으로 보아 제작시기가 조선시대인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석탑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으므로 석탑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석탑 높이는 약 3.6m이다. 기단부는 2중 기단으로 되어 있으며 판석이 중첩되어 있다. 1층 기단 면석은 부재 2개로 이루어져 있고, 1층 기단 갑석은 넓은 판석을 올려놓고 있다. 2층 기단 면석은 판석 1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위에 갑석이 올려져 있다. 2층의 기단부 위에 탑신을 3층으로 쌓았으며 각 층은 옥개석과 탑신석 각각 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2층 기단의 갑석 모서리 부분에 새겨진 연꽃무늬가 있으며 지댓돌의 윗면에도 연꽃무늬가 있으나 많이 희미하다. 또 석탑 대부분이 1층 옥개석의 가장 아래에 있는 옥개받침부가 1층 탑신석의 폭과 같지만, 용연사 석탑은 탑신석의 폭이 더 넓은 것이 특징이다.

 

4.강릉 용연사 석조관음보살좌상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41호  지 정 일 2007.01.19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중앙서로 961 (사기막리 821) 용연사  시 대 조선시대

아름다운 보관을 쓰고 결가부좌를 한 조선 후기의 관음보살좌상이다.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머리에 쓴 보관은 별도로 만들어진 것이며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머리는 상투 모양이며 머리카락은 어깨 위에서 뭉쳐지면서 흘러내리고 있다. 양쪽 볼은 통통하고 목에는 삼도가 나타나 있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등으로 금박의 틈이 나 있으나 크게 손상되지는 않아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다. 법의는 통견이고 무릎을 덮고 있다.

왼쪽 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쪽 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며 둘째손가락, 가운뎃손가락, 넷째 손가락이 구부러져 있다. 왼쪽 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오른쪽 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앉아 있는 길상좌를 하고 있다. 주재료는 수성암이라고 알려졌다. 복장은 있었던 흔적이 있지만 남아 있지 않다.  

 

5.쌍한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시 대  조선시대

1520년(중종 15)에 용궁현감을 역임한 박수량)과 병조좌랑을 역임한 박공달이 관직에서 물러나 서로 학문을 교류하고 소요하기 위해 세운 정각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정면에는 8쪽 세살문을 달았고, 측면에는 2쪽 세살문을 달았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기와지붕이다. 내부에는 운곡 송한필의 기문 등 12개의 기문 및 시문이 걸려 있다.

 

6.강릉 미노리 고인돌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미노리 시 대  청동시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미노리 보매기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다. 총 4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으며, 사천면사무소의 동북쪽으로 도로변에 있는 것을 1호 지석묘, 사천면 미노리의 보매기 능선 위에 있는 것을 2·3·4호 지석묘라고 한다.

1호 지석묘는 덮개돌이 서북-동남 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현재 3조각으로 갈라져 있다. 덮개돌은 길이 1.9m, 폭 1.6m, 두께 40㎝의 크기이고, 덮개돌 밑에 받침돌이 놓여 있다.

2호 지석묘는 덮개돌이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절반가량이 땅에 묻혀 있다. 덮개돌은 길이 2.4m, 폭 1.35m, 두께 40㎝의 크기이다.

3호 지석묘는 덮개돌이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덮개돌의 상면에 3개의 성혈이 나 있다. 덮개돌은 길이 1.7m, 폭 1.2m, 두께 40㎝의 크기이다.

4호 지석묘는 덮개돌이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다. 덮개돌의 상면에는 대송치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고, 동·북쪽에서 각각 받침돌들이 발견되었다. 덮개돌은 길이 1.7m, 폭 1.3m, 두께 60㎝의 크기이다.  

 

7. 강릉 방동리 고인돌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시 대  청동시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의 사천천(沙川川) 중하류의 산지성 구릉지에 분포하고 있다. 1기는 방동상리의 홍형표씨 가옥 뒤쪽 구릉에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형 부정형으로 길이 250㎝, 폭 165㎝, 두께 30㎝의 크기이다.

방동하리의 김기준씨 가옥 뒤편의 능선 정상부에도 고인돌 1기가 있다. 고인돌은 덮개돌의 크기가 길이 230㎝, 폭 165㎝, 두께 65㎝이다.

강릉 방동리 서낭당 인근의 해발 99.6m 구릉 정상부와 능선부에도 2기의 고인돌이 있다. 1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크기가 길이 166㎝, 폭 92㎝, 두께 27㎝이다. 2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184㎝, 폭 145㎝, 두께 30㎝의 크기이다.

 

8.일희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산대월리 시 대  조선시대

  1640년(인조 18)에 사헌부 감찰을 역임한 이상필이 건립하였다. 정각의 이름은 이상필의 호가 일희인 것에서 유래하였다.

 

정면 2칸, 측면 1칸의 단층 팔작 기와지붕으로 지어졌으며, 벽을 만들지 않아 사방이 트여있다. 1919년에 중수하였으며, 내부에는 각종 중수기와 건립기문이 걸려 있다.

 

9.경덕사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시 대  현대

곽거완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우이다. 곽거완은 강릉곽씨의 입향시조로 제천현감,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하였으며, 불에 타 없어진 강릉향교의 재건을 주장하였다.

사우는 곽양섭 등이 건의하여 1972년 지어졌으며, 매년 음력 2월 23일에 다례를 시행하고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건물 옆에는 ‘입덕문’이란 현액과 봉안문이 걸린 솟을대문이 있다. 내부에는 곽거완의 위패를 기준으로 좌측에는 경덕사 건립 사실을 적은 통고문이 있고, 우측에는 명주 김택경이 쓴 경덕사상량문이 있으며, 문 위에는 담양 전원식이 쓴 경덕사기 등이 있다.

 

10.권은상 · 강릉김씨 효열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한과마을길 442-58 (노동리 1012)  대원암 경내 시 대  조선시대

  조선 후기의 효자 권은상과 그의 부인 강릉김씨의 효자비로 1944년에 건립하였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중리 1012번지의 대원암 옆에 있다. 비좌와 비두는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비신은 흑요암을 사용하였다. 전체 높이는 194cm이고, 비신은 높이 118㎝, 두께 18㎝, 너비 41.5㎝의 크기이다. 비문은 김윤경이 지었고, 최돈국이 글씨를 썼다. 전면에는 ‘학생안동권공휘은상유인강릉김씨효열지비’라는 비제가 새겨져 있다.

권은상(1794~1874)은 어머니가 병으로 위독하시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여 6일을 더 살게 하였다. 권은상의 부인 강릉김씨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임영지》, 《오륜행실록》 등에 부효부열로 칭송받았다.

 

11.이진삼 처 평택임씨 지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2리 시 대  미상

이진삼의 처 평택임씨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평택임씨의 남편 이진삼은 마을 사람들과 배를 타고 장삿길을 떠났다가 영해 축산포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평택임씨는 배를 타고 축산포로 떠나 남편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른 뒤 자결하였다.

 

정려각은 맞배지붕 형식의 단층 기와 건물로 네 귀퉁이에 돌기둥을 세웠다. 내부에는 화강암과 흑요암 재질의 열녀비가 있다.

 

12.강릉 용연사 승탑군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중앙서로 961 (사기막리 821)  용연사 시 대  조선시대

승탑군은 용연사에서 왼쪽 뒤로 1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조선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종형승탑 8기가 발견되었으며, 두 줄로 앞줄에 5기, 뒷줄에 3기가 나란히 서 있다.

 

8기의 승탑은 각각 ‘계해칠월일립’승탑, ‘부암당’승탑, ‘계월당대사’승탑, ‘무인중춘립 완파당 대선사위’승탑, ‘숭정기후오십삼년계춘일립 원파당대사법사부암당청허육세손’승탑, ‘주파당’승탑 등이며 높이는 1m~1.6m이다.  

 

13.강릉 사화산 봉수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판교리 사화산 시 대  조선시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판교리 사화산(沙火山)의 해발 36.5m 지점에 있다. 소요산은 백두대간의 곤신봉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려 대궁산(1,000m)을 거쳐 해안가로 낮아지면서 생긴 봉우리이다. 봉수는 남쪽으로 소동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주문산과 응하는 간봉(직봉에 들지 않은 작은 봉수조직)이다.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의 문서에 동일하게 ‘사화산봉수’라고 기록되어 있다. 19세기에 강원도의 양주 아차산 봉수에서 포천, 양평, 철원, 평강, 회양을 거쳐 함경도 안변부로 연결되는 제1거 봉수로상의 봉수대 11개소만 남기고 모든 해안의 간봉이 폐지되면서 역할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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