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군/정보] 횡성군 횡성읍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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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읍에서 유명한 문화재 좀 자세히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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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군 횡성읍의 문화재)

1.읍하리 석불좌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2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횡성군  횡성읍 태기로 15 (읍하리 58-1)  시 대 고려시대

원래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의 절터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온 것으로 불신, 대좌,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는 거의 완전한 상태의 석불좌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는 작은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솟아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얇고 부드럽게 조각하였고, 옷주름은 아주 자연스럽게 온몸을 감싸면서 무릎까지 덮고 있다. 양 손은 가슴에 모아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잡고 있으나 손끝이 모두 파손되고 손가락이 없어졌다. 손모양으로 보아서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대좌는 상·중·하대석이 모두 4각형으로서 아주 드문 예이다. 상대석에는 8개의 연꽃잎을 조각하고 중대석의 각면에는 안상을 새겼다. 하대석에는 8개의 연꽃잎을 조각하였고, 그 아래 지대석에는 한면에 3개씩의 안상을 음각하여 놓았다.

 

광배는 배 모양이며 윗 부분이 약간 파손되었다. 가장자리에는 구름무늬와 불꽃무늬가 섬세하게 장식되었고, 머리광배에는 연꽃무늬와 상상의 꽃인 보상화무늬가 조각되었다. 머리광배의 오른쪽과 왼쪽 위에 작은 부처를 배치하였는데 맨 꼭대기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조각 솜씨가 뛰어나고 대좌가 4각형을 기본으로 한 작품으로서 각 부분의 수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읍하리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3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횡성군  횡성읍 태기로 15 (읍하리 58-1)  시 대 고려시대

일제시대 당시 횡성군내의 옛 절터에 있었던 것을 옮겨 온 것으로, 바닥돌과 기단을 잃어버려 3층의 탑신만 남아있다.

 

남아 있는 탑신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 올린 것이다. 몸돌의 높이는 1층보다 2층이 많이 줄어들었고, 3층은 2층보다 조금 작다. 위로 올라갈수록 적당하게 작아져 안정감을 주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고, 윗면의 경사가 급하며,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 있다. 3층 지붕돌 윗면에는 6㎝정도의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곳에 머리장식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가 없어 전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지만 탑신은 아담하고 안정감이 있다. 지붕돌의 양식이나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3.문정공 조충 지석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지 정 일 1989.05.01 소 재 지 강원 횡성군  횡성읍 덕고마을1길 12 (정암리 산207-1)  시 대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문신인 문정공 조충(1171∼1220)의 묘지석이다. 묘지석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묘소의 위치 등을 기록하여 무덤에 묻어놓는 것이다.

 

이 지석의 재료는 청석으로, 표면을 거칠게 다듬어 앞면에만 글을 새겼다. 앞면의 가장자리에는 덩굴무늬를 두른 후 그 안쪽에 테두리선을 그었다. 전체가 네 조각으로 갈라지고, 패인 곳이 많아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아보기 어려우나, 조상들에 대한 소개, 그의 생애, 인품과 일화, 가족관계 등을 적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충 선생이 세상을 뜬 고종 7년(1220)에 만든 것이다. 원래 그의 묘소는 개성에 있었으나 38선으로 남북이 갈리게 되자 그의 후손들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지석은 1988년 묘자리를 수리할 때 발견된 것이다.

4.운암정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7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한우로 191 (읍하리 산7-1)  시 대  일제강점기

운암정은 1937년 횡성에 사는 김한갑과 이원식이 세운 정자이다.

 

운암정이라는 이름은 김한갑의 호인 운수에서 ‘운’자를, 이원식의 호인 청암에서 ‘암’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김한갑과 이원식은 어려서부터 같은 마을에서 살아왔는데 둘다 무척 가난하였다. 둘은 잘 살아 보자는 굳은 결심을 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마침내 부자가 되었다. 회갑이 되어 이를 기념하고자 공사비를 반 씩 부담하여 정자를 완공하였다고 한다.

 

운암정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 안쪽에는 ‘운암정’이라고 쓴 현판 외에도, 1944년에 쓴 운암정기가 걸려 있다.

 

5.횡성향교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0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 횡성군 횡성읍 향교로 12 (읍상리 산12-2)  시 대 조선시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횡성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세웠다고 전하는데, 이후 몇 차례 옮겨 지었다고 한다.

 

대성전을 제외한 건물과 기타 소장품 및 자료가 한국전쟁으로 모두 없어졌다. 1954년에는 기숙사인 동재·서재를, 1960년에는 강당인 명륜당을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 서재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6.횡성성당

종 목  등록문화재 제371호

등 록 일  2008.02.28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태기로19번길 25 (읍상리 388)

시 대  현대

이곳에는 원래 풍수원 성당의 공소가 있었다. 1930년 본당으로 승격된 후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을 신축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없어져 1956년에 현재의 건물을 건립하였다.

라틴십자형 평면의 석조 성당으로 미사 공간은 내부에 분절이 없는 강당형이며, 본채의 천장 상부 목조 트러스 구조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정면 중앙에 8각 종실을 마련하고 그 위에 돔을 얹은 종탑을 두었는데, 종탑에는 건축 당시 프랑스에서 들여온 종을 설치하였다.

부속 건물에는 변화가 많았으나 본당은 외형이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7.횡성 태풍루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읍하리 3·1공원 옆

시 대  현대

1798년(정조 22) 현감 정래승이 나라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고 민생고를 없애기 위해 세운 누각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6·25전쟁으로 훼손된 후 1992년에 복원한 것이다.

8.횡성 이미문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정암리 

시 대  일제강점기

도봉근에게 14세에 시집온 김복이 여사는 어려운 시집살림을 꾸려 오던 중 17세 때에 남편이 병석에 누워 10여 년을 병시중을 보냈으나 끝내 남편을 사별하고 남편 장례수일후 다시 시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사경을 헤매게 되자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하는등 정성을 다했다.

광산 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1938년 건립하고 1955년 개수한 이 정려각은, 절개를 송죽같이 지켰으며 효성이 지극했던 효부 열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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