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정보] 원주시 호저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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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호저면의 문화재를 알아 가는 건데요.
아무리 찾아도 안 나와서 이렇게 질문을 함..
제발 가르쳐주세요 내공 300걸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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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소나맨님의 댓글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의 문화재)
1.용운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2호
지 정 일 1973.07.31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402-1 시 대 고려시대
이곳은 불상 주위에 용운사라고 적힌 기와조각들이 주변에서 발견되어 예전에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은 광배만 없어졌을 뿐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통통한 얼굴은 자연스럽게 미소짓고 있는 현실적인 모습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주름은 계단식으로 도식화되고 구불구불한 선은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상(보물 제995호)등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특징을 계승하여 만들어진 고려 초기 불상의 특징이 보인다. 손모양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3단으로 된 사각형인데, 큼직한 연꽃무늬와 안상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비로자나불의 특징을 계승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만든 고려 초기의 불상이다.
2.용운사지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지 정 일 1973.07.31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402-1 시 대 고려시대
용운사터에 석불과 나란히 서있는 고려시대 3층 석탑이다. 탑 주변에서 ‘용운사’라 새긴 기와가 발견되어 절 이름을 알게 되었다.
탑은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 맨 윗돌 위에는 연꽃을 두른 두툼한 괴임돌을 두어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독특한 장식 수법이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낙수면의 경사는 느리고,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받침) 위로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륜(바퀴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기단부 맨윗돌이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기단 윗부분에 아름다운 연꽃을 장식한 굄돌을 두고, 지붕돌 밑면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3.산현리 태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산현리 산42,42-3
시 대 조선시대
산현리 태실은 장현교를 건너 우측의 산현초등학교 방향으로 도로를 타고 약 0.7km 정도 가면 왼편으로 있는 작은 산봉우리에 있다. 이 소봉은 소군산의 한 지맥이 흘러 내려와 평지 부근에서 가라앉았다가 다시 약간 솟은 봉우리로 전면에는 일리천이 가로 질러 흐르고 있다. 비석전면의 각자는 육안으로 거의 확인이 안 될 정도로 마멸이 심하며, 전문판독은 되지 않으나 후면의 상태는 전면보다 양호하여 각자를 확인 할 수 있는 상태이다.
비문에 의하면 이 태실의 주인은 '만력 28년' 즉 1600년에 출생하였고 태실비는 그로부터 약 4개월 후인 이듬해 4월 25일 세워진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영창대군의 태실이라고 하나 영창대군이 병오년생(1606년)이므로 이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만력 29년은 선조 34년(1601년)으로 이 태실의 주인은 1600년경에 출생한 선조의 왕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선조의 자녀 24명(왕자 13명, 공주 1명, 옹주10명)중 1600년(경자년)에 출생한 온빈한씨 소생인 경평군의 태실로 추정된다. 이 마을 주민에 의하면 이 태실은 1980년대에 도굴꾼들에 의해 석함과 덮개돌이 열린 채 파헤쳐져 있었으나 1996년에 원주환경운동연합에서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다.
4.대덕리 태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대덕리
시 대 조선시대
원주역사박물관 박종수 관장이 답사 하는 과정에서 알려 지기 시작 했다.
이 태실비의 주인공은 연산군과 계비인 중전신씨(폐비신씨) 사이에 태어난 큰아들 황(폐세자) 으로 추정 되고 있다. 이 태실은 도굴 된 상태로 복원 되지 못하고 절각 된 태실비 한조각은 밑에 있고 또 한조각은 위에 쳐박혀 있는 상태다.
태실은 좁은 뜻으로 왕, 왕후, 대군, 공주, 옹주 등 왕실의 태를 묻은 석실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