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군/정보] 화천군 간동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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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관내에 존재하고 있는 역사유적 및 문화유적 중에서

매우 이름높고 학술적으로도 가치높은 문화재는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잘 알고 계시면은 답변을 부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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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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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의 문화재)

1.화천 성불사지 석불입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지 정 일 1996.02.27 소 재 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유촌리 산20-2  시 대  고려시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성불사 절터에 있는 불상으로, 현재 머리와 목 부분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상체와 하체는 딴 돌로 만들어져 분리될 수 있다.

상체는 떡 벌어진 어깨와 발달된 가슴으로 당당한 모습이다. 얇은 옷을 몸에 밀착시켜서 잘록한 허리가 더욱 강조되었다. 양 어깨에 두른 옷에는 U자형의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도식적인 옷주름 처리로 사실성이 결여되고 조각수법의 미숙으로 생동감이 떨어지고 있다.

오른쪽 어깨와 손목 부분이 깨졌는데, 다소 부자연스럽게 표현된 두 손은 정확한 모양을 알 수 없다. 왼손은 팔을 약간 벌린 듯 구부려 왼쪽 가슴에 얹고 있으며,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뜨려 손등을 밖으로 하고 손가락을 가지런히 편 채 배에 대고 있는 듯 하다. 하체는 다리의 두께가 가슴과 복부보다 얇아 상체에 비해 양감이 훨씬 떨어지는 모습이다.

대좌는 4각형의 평평한 돌 위에 원형의 연꽃무늬를 새긴 형태이다. 연꽃무늬 위에는 몸체를 꽂을 수 있는 홈이 파여 있고 홈 앞에는 두 발을 도드라지게 새겨 발목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짧은 상체에 비해 하체는 불상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길어져 인체의 비례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적이지 못하고 양감이 떨어지며 돌기둥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러한 양식적 특징은 고려시대 석불입상에서 보이는 특징 중의 하나로, 다른 불상들과 비교해 볼 때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2.화천 성불사지 석장승

종 목  강원도 민속문화재  제5호

지 정 일 1996.02.27 소 재 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유촌리 산20-2  시 대  조선시대

성불사터에서 600m 떨어진 암자터 옆에 서 있는 돌장승으로, 절을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장승의 허리부분이 부러져 아랫부분은 오랫동안 땅에 묻혔다가 최근에 발견되었고, 1993년 5월 마을 주민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크기는 높이 196㎝에 어깨너비가 60㎝이고 얼굴 두께 58㎝, 몸통이 47㎝로,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다. 조선시대 무관이 쓰던 전립 모양의 벙거지를 쓰고 있으며 눈과 코가 크고, 얼굴은 턱을 앞으로 내민 듯하다. 구슬띠 무늬를 두고, 조선시대 문신이 임금을 뵐 때 손에 쥐던 홀을 새겨 놓아 전체적으로 신장의 얼굴에 문인석의 몸체가 결합되어 있는 형상이다. 대개의 호법장승이 송곳니를 날카롭게 드러내 도깨비의 얼굴모습을 하는데 비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신장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몸체가 온전하게 조각되어 있는 보기드문 장승이다.

장승을 세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장승의 모습이 일반적인 돌장승의 성격과는 다른 독특한 예로, 강원도에 호법장승이 없다고 알려진 지금까지의 인식을 바꿔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3.화천 꺼먹다리

종 목  등록문화재 제110호

등 록 일  2004.0.04

소 재 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산9-1 외, 화천읍 대이리 468-3 외

시 대  일제강점기

화천댐이 준공되면서 1945년에 건설한 다리이다. 길이 4.92m, 폭 4.8m이며 전체적인 외관이 단순하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철근콘크리트 주각 위에 형강을 깐 다음 각재를 덧댄 가구식 구조이다. 나무로 만든 상판에 검은색 타르를 칠해‘꺼먹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화천수력발전소와 함께 당시의 산업을 엿볼 수 있는 시설물이며 건립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근대 가구식 구조 교량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4.송란 충효문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도송리 산41

시 대  조선시대

화천군 간동면 도송리에 있는 송란충효문은 송란의 공덕을 기린 문이다. 선조 때 처음 세워졌는데 한국전쟁 당시 전화를 입어 소실되었다.

송란은 조선 중종 8년(1513년) 때 태어난 사람으로 본관은 여산이며 호는 덕방이다. 어릴 적부터 천성이 모질지 못하고 어질었으며 덕이 후해 효성이 지극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가난했지만 절개를 버리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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