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정보] 강릉시 강동면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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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강동면의 문화재조사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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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향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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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강동면의 문화재)

 

1.강릉 정동진 해안단구

종 목  천연기념물  제437호  면 적 45,426㎡(지정구역) 지 정 일 2004.04.09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산50-60 외 

정동진 해안단구는 제3기말에 일어난 지반융기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 해석되며 단구층은 200∼250만년 전에 형성되었다.

해안단구가 해수면과 접하는 곳에 경사가 급한 암벽인 해식애가 존재하는 것은 이 지역의 기반암이 주로 사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오랫동안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하여 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해안단구에는 동해쪽으로 수개의 깊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골짜기도 해수의 침식과 관련이 있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우리나라 지괴가 약 200∼250만년 전에는 해수면이 현재보다 약 80m 높은곳에 있었는데 그 후에 일어난 지반융기작용에 의하여 현 해수면까지 후퇴했다는것을 알려준다.

해안단구는 해안을 따라 발달해 있는 해식애와 단구 위의 평탄한 지면에 쌓여 있는 퇴적층이 중요한 구성요소로 정동진 해안단구는 학술적으로 우리나라의 지질구조 발달 과정과 퇴적환경, 지각운동, 해수의 침식작용, 해수면 변동 연구에 대단히 중요하고 자연과학 학습장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2.등명사지 오층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7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괘방산길 16 (정동진리 산7-3) 낙가사  시 대  고려시대

낙가사 경내에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푸른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이 절은 원래 등명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맨 윗돌에는 연꽃무늬와 함께 석재의 일부 모서리를 곡선으로 처리하여 부드러움을 주고 있다. 기단 위에는 오밀조밀한 5층의 탑신이 쌓여 있는데, 지붕돌의 밑면의 받침과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장식적인 효과와 함께 정적인 탑신에 운동감을 불어 넣어준다. 1층 몸돌에 도드라지게 새긴 감실(불상을 모셔두는 방)조각은 목탑에서 이곳에 직접 불상을 안치하던 수법이 퇴화된 것으로 보인다. 꼭대기에는 연꽃이 새겨진 머리장식이 남아있다.

 

기단부의 구성 및 조각수법, 지붕받침 수, 퇴화된 감실의 표현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폭이 좁고 아담하여 동시대의 다른 조형물과는 구별되는, 색다른 아름다움을 주고 있다.

 

 

3.송담서원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4호

지 정 일 1973.07.31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송담서원길 27-7 (언별리 1115)

시 대 조선시대

 

율곡 이이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곳으로 조선 인조 8년(1630)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학산리에 석천서원을 처음 짓고 위패를 모셨다. 효종 3년(1652)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는데, 현종 1년(1660)에는 ‘송담’이라고 쓴 현판을 임금으로부터 하사받고 옛 선현들에 대한 제사와 지방의 교육을 담당하여 왔다. 영조 32년(1756)에는 묘정비를 세워 서원의 사적과 이이의 업적을 기록하였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하여 서원이 없어졌다가 1904년 지방 유지들의 모금으로 다시 지어졌다.

 

서원의 안에는 위패를 모신 사당인 송담사, 송담사의 양 옆에 있는 각 3칸의 세심재, 가운데문·묘정비각·대문 등이 있다. 세심재는 2동 모두 1개의 방과 앞쪽의 툇마루로 되어있는데, 서원의 여러 가지 행사와 화합 및 학문의 강론장소로 사용되었다.

 

매년 음력 2월 중정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4.하시동고분군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18호 

지 정 일 1973.07.31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풍호길 300-83 (하시동리 129-3)외 8필지

시 대 삼국시대

 

풍호라는 호수를 끼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얕은 언덕에 위치한 무덤이다.

 

무덤의 내부구조를 보면 돌덧널(석곽)을 만들고 시신을 위에서 아래로 넣은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이다. 돌덧널 안에는 시신을 안치하는 으뜸덧널(주곽)과 껴묻거리(부장품)만 넣는 딸린덧널(부곽)로 구분된다. 출토 유물로는 목긴항아리(장경호)·굽다리접시(고배) 등이 있다.

 

하시동 무덤들은 그 구조와 유물을 종합해 볼 때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5.강릉 고려성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79호  지 정 일 2003.01.18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508-1외 14필지  시 대  고려시대

고려성은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괘방산(해발 384m)의 구릉 정상부 주변을 한겹 둘러싼 돌로 쌓은 산성이다. 지리적인 위치로는 바닷가에 위치한 해안성으로, 강릉지역의 주민들이 바다로부터 침략하는 적이나 약탈자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쌓은 성이다.

성의 총 길이는 451m로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2∼3.5m정도이며, 가장 잘 남은 내벽의 높이는 2m정도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서벽 25m, 남벽 55m정도이다. 성벽은 일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산돌을 이용하여 장방형의 불규칙한 석재를 사용하였다. 일부 성벽 사이사이의 공간에는 잔돌 끼움쌓기를 하여 성벽의 무너짐을 방지하였다. 외벽은 면맞춤한 막돌 흩은층쌓기를 하였으며, 성 안쪽으로는 잡석이나 흙을 채워넣는 내탁법(內托法)을 이용하였다.

서벽과 동벽의 북쪽에는 각각의 문터를 2개 만들었고, 서문터 북쪽에는 관측과 방어에 유리하도록 치를 만들었으며, 동북 모서리에는 성벽을 돌출시켜 쌓음으로써 치성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토기조각, 청자·분청사기·백자 등의 자기조각, 어골무늬·격자무늬·사격자무늬·직선무늬·사선무늬·복합무늬 등의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

이 성은 옛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고려성’이란 이름과 축조수법과 수습유물 등을 통해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일부 성벽에서 보이는 보수 흔적으로 볼 때 조선시대까지 계속해서 유지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은 주변의 삼한산성과 함께 강원 영동지방의 삼국시대 및 고려 초기의 성곽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6.강릉 시호 고택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91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시동길 91-9 (하시동리 497)  시 대  조선시대

강릉의 이름난 선비 박계동이 살았던 곳으로, 사랑채는 지은지 약 300년 정도, 안채와 곳간채는 지은지 약 150년 정도 되었다.

건물은 ㅁ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된다.

대문 맞은편에 있는 안채는 앞면에 툇마루를 놓아 왼쪽에 있는 대청마루까지 이어진다.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방과 방 사이에는 원래 미닫이문이 있었으나, 1990년대에 수리하면서 벽으로 처리하고, 벽장 부분은 철거하였다. 

 

7.송담서원 묘정비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송담서원길 27-7 (언별리 1115) 시 대  조선시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송담서원의 묘정비각 안에 있다. 비석은 비좌, 비신, 옥개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좌와 옥개석은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비신은 흑요암을 사용하였다. 전체 높이는 272cm이고, 비신은 높이 213㎝, 두께 25㎝, 너비 91.5㎝의 크기이다. 비문은 영의정을 역임한 정호가 지었고, 영중추부사를 역임한 민진원이 글씨를 썼다. 앞면에는 ‘송담서원묘정비’라는 비제가 새겨져 있다.

송담서원은 1630년(인조 8년)에 건립된 사액서원으로 율곡 이이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묘정비는 1726년(영조 2)에 건립하였으며, 비문에는 율곡 이이의 행적과 서원의 창건 및 이건 내용이 새겨져 있다.

 

 

8.효자 남한복 지려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상시동리 시 대  조선시대

남한복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고 차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를 잃은 통한의 서러움에 복받치곤 하였다. 남한복은 다른 사람들에게 “남들은 모두 아버지를 알지만 나는 모른다. 남들은 모두 아버지를 부를 줄 알지만 나는 모른다.”라고 하면서 자신을 천지간의 죄인이라 생각하였다. 이때부터 남한복은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쳐도 매월 삭망에 성묘를 하였다. 남한복의 이러한 효행에 향리는 물론이고 행인들마저 감동하였다.

남한복이 환갑을 맞던 해, 아버지의 기일에 아침 일찍 성묘하고 묘소에서 머리를 풀고 신발을 벗고 새삼 상주가 되었다. 가족과 이웃 사람들이 귀가하기를 청했으나 평생의 한을 푸는 길이라 하여 끝내 듣지 않았다. 이에 남한복의 효성에 감동한 가족과 이웃들이 상복을 만들고 여막을 지어 주었다. 남한복은 그후 3년 동안 시묘를 하여 추상을 마쳤다.

남한복의 효성이 나라에 알려져 1891년(고종 28)에 동몽교관에 증직되고 효자정려를 받았다.

정려각의 기문은 남한복의 손자인 남학훈과 삼종인 남시훈의 요청으로 통정대부전사간원정언 정운이 찬하였다.

 

9.장안성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시 대  고대초기국가(동예)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의 군선강 하류에 있는 토성이다.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고, 고대 동예시대 혹은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둘레는 약 600m이고, 높이는 3m, 상·하부의 폭은 각각 2m, 5m이다. 석축부 위에 얇은 토층이 덮여 있으며, 남벽 중앙부에서 성문의 초석으로 보이는 반석(80×80㎝, 두께 30㎝)이 발견되었다. 성문과 우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성벽 주위에서 고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들이 발견되었다.

 

10.오근산 봉수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오근산 시 대  조선시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오근산(五斤山)의 해발 75m 지점에 있다. 오근산은 백두대간의 삽당령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려 화비령을 거쳐 해안가로 낮아지면서 생긴 봉우리이다.

 

봉수는 남쪽으로 어달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해령산과 응하는 간봉(직봉에 들지 않은 작은 봉수조직)이다.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의 문서에 동일하게 ‘오근산봉수’라고 기록되어 있다. 19세기에 강원도의 양주 아차산 봉수에서 포천, 양평, 철원, 평강, 회양을 거쳐 함경도 안변부로 연결되는 제1거 봉수로상의 봉수대 11개소만 남기고 모든 해안의 간봉이 폐지되면서 역할을 상실했다.

 

 

11.해령산 봉수

강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시 대  조선시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령산의 해발 40m 지점에 있다. 봉수지는 군선강이 강동면 안인진리에서 바다와 만나는 어귀에 설치하였다.

 

봉수는 남쪽으로 오근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소동산과 응하는 간봉(직봉에 들지 않은 작은 봉수조직)이다.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해령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에는 해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19세기에 강원도의 양주 아차산 봉수에서 포천, 양평, 철원, 평강, 회양을 거쳐 함경도 안변부로 연결되는 제1거 봉수로상의 봉수대 11개소만 남기고 모든 해안의 간봉이 폐지되면서 역할을 상실했다.

 

12.사선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 시 대  현대

신석규, 신석구, 신석로, 신석리 등 4인의 학덕을 추앙하기 위해 1947년에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신석규와 신석구, 신석로와 신석리는 친형제이고, 이 두 형제는 서로 종형제간이다. 4명은 강릉의 양대 서원인 오봉서원과 송담서원의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이들을 가리켜 도봉사선이라 하였다. 정각이 건립된 자리는 4명이 시와 술로 매일 함께 소요동락한 자리이다.

 

정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팔작기와지붕으로 지어졌다. 정면에는 ‘사선정(四仙亭)’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있고, 벽을 만들지 않아 사방이 트여 있다.

 

13.한송정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3리 시 대  신라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3리 공군 제18전투비행단 안에 있는 정각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차 유적지 중 하나로, 일명 녹두정이라고도 한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진흥왕 때 화랑들이 한송정을 찾았다는 기록과 이후 여러 인물들이 한송정을 방문했음을 알 수 있는 기록과 시문들이 전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한송정은 ‘동쪽은 큰 바다와 접해있고, 소나무가 울창하다. 정자 곁에 차샘, 돌아궁이, 돌절구가 있는데 곧 술랑선인들이 놀던 곳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정각과 남아있으나, 정각 안에는 특별한 기록물이 남아있지 않다. 1997년에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에서 석조(돌 아궁이)를 복원하였다.

 

14.강릉 모전리 고분군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시 대  신라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의 앙장산 동쪽 줄기의 사면에 분포하고 있다. 강릉-동해간 고속도로의 군선강교에서 동해시 방향으로 가면서 신라시대의 수혈식 석곽분 20~30기가 앙장산 사면을 따라 발견되었다.

 

유적지에서 5세기~6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장경호(긴목항아리), 고배(굽다리접시), 등 각종 토기 조각들이 발굴되었으며, 고분의 덮개돌로 보이는 석재들이 일부 발견되었다.   

 

15.강릉 모전리 서낭당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둔지길 86-3 (모전리 511-2) 외 시 대  미상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서낭당으로 둔지마을, 돌평마을, 관마을, 산두골에 각각 한 곳씩 4개가 있다.

둔지마을 서낭당은 모전1리 3반 511-2번지 있다. 둔지마을 밭 한가운데에 서낭목 소나무 7그루가 서 있으며, 이곳에서 매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둔지마을의 서낭당에서는 성황지신ㆍ토지지신ㆍ여역지신을 모시고 있으며, 각위(各位)마다 따로 진설한다. 제의는 유교식이고, 제의가 끝나면 소지한다.

돌평마을 서낭당은 모전1리 3반 산 396-1번지에 있고, 관마을 서낭당은 모전1리 8반 임 837에 있다. 두 곳에서는 성황지신ㆍ토지지신ㆍ여역지신을 모시고 있으며, 매년 가을 택일하여 제사를 지낸다. 제의는 유교식이고 ,제의가 끝나면 소지한다.

산두골 서낭당은 모전리 산 28에 있다. 산두골 서낭당에서는 산신지신ㆍ토지지신ㆍ여역지신을 모시고 있다. 각위마다 따로 진설하며, 매년 봄에 택일하여 유교식 제의를 지내고 있다.

 

16.강릉 안인리 송촌 고분군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 송촌마을 시 대  신라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 송촌의 군선강 다리 건너편 우측 구릉 하단부에 분포하고 있다. 강릉 승마장 건설 때 유구의 상면이 노출된 상태로 처음 발견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유구의 형태로 보아 신라의 수혈식 석곽분으로 추정되며, 주변에 고분의 축조 때 사용된 냇돌과 봉분의 덮개돌이 발굴되었다.  

 

17. 강릉 하시동 고인돌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 시 대  청동시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1리의 대재골 안골에 있는 고인돌이다. 현재 덮개돌로 사용된 석재 1기와 석관의 한 면이 남아 있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165㎝, 폭 85㎝, 두께 28㎝이고, 석관의 한 면은 길이 104㎝, 높이 42㎝, 두께 12㎝의 크기이다.

 

18.괘방산성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시 대  고려시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의 괘방산에 있는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약 500m 정도이다. 1998년에 강릉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강릉 고려성과 함께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은 괘방산 능선에 남북 방향으로 축조되었다. 등산로를 따라 고려시대의 기와 조각이 산재해 있으며, 괘방산을 지나 삼우봉 정상부에서 폭 20m, 길이 40m 정도의 채석흔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부터 안인진리 방향으로 약 500m 가량 성곽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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