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얘기
본문
고등학교때
친구가 소개시켜줘서 사귀게 된
여자친구가 있었어
좋아해서 라기보단 남고 친구들한테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던거 같아
그러다가 고3때 독서실 다니던 와중이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첫눈에 '와 이쁘다' 생각이 드는애가 보이는거야
교복차림 이였는데
약간 색기가 흐른다고 해야하나
희롱하려는 의도는 아닌데
그냥 그런 분위기의 애였어
그날 이후로 계속 눈에 밟히더라
고3때라 거의 매일매일 독서실에 나갔는데
걔가 매일 몇시쯤 오는지는 몰라도
독서실 문닫는 1~2시쯤 집에 가는걸 아니까
자연스레 나도 그때쯤 집에 갔고
그 낙으로 독서실 다녔어
솔직히 당시에는 좋든 아니든
잘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가 있었으니까
번호 따볼 용기도 안났었지
그전까지 관계가 소원했던것도 아니고
날 너무 좋아해주니까
갑작스럽게 정리하기는 힘든 상황이였어
독서실에 거의 매일 나가다보니
그 여자애랑 안면도 텄고
내가 하도 빤히 쳐다보니까
본인도 의식했는지
눈 마주치면 생글생글 웃어주더라
동네 독서실이다 보니까
학교는 다들 달라도 어느정도
서로간에 아는 동네 주민들이잖아
그래서 어쩌다보니
근처 상고 다닌다는걸 알게됬어
하나둘씩 아는건 점점 느는데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눈인사하는게
전부니까 답답해 미칠것 같더라
이걸 읽으면서 학생이
독서실에 공부는 안하고
여자보러 갔었냐고 한심하단 생각이 들겠지
근데 그게 맞아
당시엔 그랬어
머릿속엔 걔 생각밖에 안들더라
그전까지 사귀던 여자친구는 이미 뒷전이였고
여자친구 본인도 내가 관심이 줄었단걸 아니까
서운해하는데
줄은게 사실이니 별로 개의치 않았어
수능 일주일전인가
독서실 주인 아주머니가
알바생들이랑 같이 선물을
준비하셔서 수험생들한테 선물을 나눠주셨어
독서실이 생긴지 얼마 안되서
우리가 생긴 첫해의 수험생들이니
은근 이목이 집중됬고
시험이 얼마 안남으니까
독서실 분위기가 뒤숭숭했어
당연히 그 여자애도 내가 곧 시험 본단걸
독서실 분위기상 알게 됬었겠지
시험도 시험이라 긴장되는데
수능치면 독서실 올 일이 없어질 것 같으니
그 여자애를 더 이상 볼 건덕지도 덩달아
없어질 것 같아 아쉽더라
공부를 그래도 좀 하는 편이였는데
수능에서 점수가 좀 떨어져서
애초에 가고싶었던 대학을 정시로 가기에는
힘들것 같았어
그래서 수능끝난 직후에 안쉬고
바로 논술 공부를 시작했었지
어쩌다보니
다니던 독서실을 연장해서 다녔어
한 일주일 가량을 시험보러 다니면서
동시에 다음번에 치뤄질 논술시험을 대비했어
오고 갈때 그 여자애가
있나 눈으로 살펴보긴 했는데
없더라
어찌 해볼 의지도 없었으면서
얼굴도 못본다는게 엄청 아쉬우면서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논술 공부에 매진했지
마지막 시험을 하루 앞두고
답답한 심정에
탁 트인 회의실 같은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어
원래 거기가 남여 공용실이라
공부가 안될 것 같아 잘 안갔었거든
그래도 연 말이라 학생들도 별로 없고
덜 답답할 것 같아
밖으로 나와 글을 쓰고 있었어
원래 나는 집중해서 뭘 하면 뭘 하든
옆에 누가 있고 말을 걸든
거의 신경쓰지 못하는 성격이야
한참을 글을 쓰다가
한숨돌릴겸 고개를 들었는데
옆에 누가 앉아있더라
그래서 옆을 슬쩍 돌아보니
그 여자애가 있는거야
그렇게 가까이서 본건 처음이였어
정말 이쁘더라
숨이 멎는줄 알았고
손이 덜덜 떨리더라
그렇게 넓은 공간에
단 둘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내옆에 앉아선
교과서를 풀고 있었는데
그때 이름을 처음 알게됬어
김xx
이름마저 이뻐보이더라
만약에 이름이
옥동자였어도
난 그게 이쁜 이름이라 생각했을거야
문제를 풀면서 날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시선이 느껴지잖아
그래서 공부고 뭐고
더이상 집중이 하나도 안되더라
그냥 내 심장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어
'쿵....쿵....'
그러다가 걔가 갑자기
크게 한숨을 쉬더니
폴더폰을 주섬주섬 꺼내더라
나한테 뭘 말하려던 것 같은데
머뭇거리더니 짐은 그대로 두곤
밖으로 나갔어
이쯤되면 누구라도
어떤 분위긴지 어느정도
눈치 챘을거야
아마 걔도 내가 올해가 지나면
더이상 독서실에 나오지 않을 거란걸
알았던 모양이야
어쩌면 나의 일방적인 호감이 아니라
걔도 나에 대해 호감이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근데 그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사귀던 여자친구 생각이 들더라
같은 수험생이라 걔도 힘들고 지쳤을텐데
나한테 늘 지극정성이였던 모습이
떠오르는 거야
죄책감이 밀려오더라
내가 여자친구랑 정리도 안하고
지금 얘랑 연락처를 주고받고
연락을 하게 되면?
아직 벌어지지 않은 무수한 상황이
그려지면서
이러면 안되는데 싶더라
다른 여자애랑 연락을 주고받는다는것도
어찌보면 바람이니까
진짜 아쉬웠지만
진짜 진짜로
당장에 번호를 물어보고
내일 시험이 끝나면
데이트라도 하고 싶었지만
책을 정리하고 짐을 싸서
밖으로 나왔어
문앞에 걔가 한손엔 폰을 들고
서있었는데
나한테 말을 거는거야
"저기요..." 하고
난 중간에 말을 딱 끊고
"잘 지내요 공부 열심히하고"
이 한마디하곤
뒤돌아서 그길로 독서실을 나왔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울컥하더라
왠지 서럽고
수험생 생활중에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
다음날 마지막 시험은 그대로
망쳤어
아마 내가 친 논술 시험중에
제일 못봤을거야
고치다 고치다 반 백지 상태로
제출했으니까
결국에 내가 목표했던 대학은
못갔고
한 두 계단 낮은 대학에 합격했어
반면에
여자친구는 본인 예상보다
더 좋은 대학에 운 좋게 합격했지
솔직히 질투는 별로 안났어
걔는 마지막 일년을 나보다 열심히
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별로 승부욕이 강한 편이
아니라 그냥 붙은 대학에 그냥저냥
만족했었거든
그런데 얘가
나한테
지난 일년간 너랑 자주보진 못했지만
내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됬다고
정말 사랑한다고 얘기하는데
그때 느껴지더라
나는 얘를 사랑했던게 아니라고
나는 지난 일년간 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다른 애에 대한 애뜻함과
얘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웠는데
나는 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었구나
이일이 있고
몇일 후에 나는 반수를 핑계로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어
울고불고 매달리는 여자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랑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사귈수 없다는 결론에
그냥 매몰차게 밀어냈어
mt며 첫학기며
정신없는 시간이 흘렀지만
난 별로 즐겁지 않았어
분명 동기며 선배들이
좋은 사람인건 분명했어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머릿속에선
독서실에 그 여자애 생각만
가득했지
연락처로 없고
더 이상 독서실을 다니지 않으니
들어가 볼 수도 없어
어떻게 연락을 취할 방도가 없었어
어느날에 동기들끼리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끊겼는데
다음날 동기가
김xx가 누구냐고
누구길래 하염없이 불러대냐고
혹시 전 여자친구냐고 묻는거야
이러단 죽겠구나 싶더라
첫학기 끝나고 바로 휴학신청하고
집에다 반수하겠단 통보를 했어
그리고 전년도에 다니던 독서실 자리를
하나 끊었지
이때는 책한번 피지 않고
매일매일을 그 여자애만 찾아 다녔어
이전까지는 늦더라도 꼬박꼬박
독서실에 나오던 애가 안나오니까
답답하고 애가 타더라
그렇게 한 열흘가량을 찾아해매다가
지칠 무렵에
전년도에 내가 다녔단걸 아는듯한
어떤 여자애가 말을 걸더라
내가
그 앞 편의점에서 커피 하나 사주고
독서실 앞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눴는데
내용인 즉슨
내가 첫눈에 반한 여자애가
이 친구에게 말하길
"요즘 계속 나랑 눈 마주치는
어떤 오빠가 있는데
자꾸 나를 쳐다보는게
나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다
생긴 것도 본인 스타일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나도 호감이 간다
올해 수능이 끝나면 더 이상 못볼텐데
늦기전에 번호라도 알아놔야겠다"
여기까지 듣고 어느정도 내 짐작이
맞았다는 걸 알게됬지
그런데 그 다음에 앞서 말했듯이
난 그 여자애의 말을 끊고
인사말 남기고 집에 갔다고 했잖아
그게 걔한테 거절의 의사표현으로
받아들여졌나봐
여자애의 친구는
마시던 커피를 마져 홀짝 마시더니
말을 이어나갔어
그날 이후로 걔가 한 일주일 정말
펑펑 울었다고
그리고선 아마 내가 본인을 거절한게
본인이 상고 학생이라
그런 것 같다고
이제라도 공부 시작해서 대학가야겠다고
고3때 지켜본 바로 얘가 공부를
잘 안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
상고 출신이고 잘 놀고
어느정도 날티난다는 것도
눈치챘었지
그래도 맹세코 무시하는 생각은
일체 해본적이 없어
친구는 커피캔을 찌그러트리더니
날 한번 흘겨보곤
나 때문에 걔가 힘들어 해서
많이 원망스러웠대
당시 사정을 설명하고
연락처라도 알려주면
내가 연락해보겠다고
거의 애원을 했는데
친구 왈
인문계로 전학가고
번호도 바꿔서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집도 최근에
전학간 학교 근처로
이사간 것 같다고
그 말 듣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신경쓸 겨를없이 주저앉아
울었어
초등학생때부터 통틀어서
그렇게 울어본건 오랫만이였을거야
여자애의 친구는 당황해서
나한테
나중에라도 연락되면
내 번호를 꼭 알려주겠다고
이럴거였음 왜 진작에
붙잡지 않았느냐고 안타까워 하더라
이 일이 있고
거의 반년 가까이
무기력하게 살았었어
학교는 휴학한 상태였고
공부는 눈에 하나도 안들어오고
매일매일 술 마시고
담배에도 손을 대서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졌었지
그리고나서 어느정도
정신 차리게 된건
해가 바뀌고 나서 부터야
이렇게 살겠다간 정말 죽겠다 싶고
여전히 여자애가 너무 보고싶지만
감정이 어느정도는 수그러 들었거든
아직도 길을 가다 비슷한 사람이
보이면 눈이 가고
비슷한 이름이 들리면 흠칫놀라
아마 올해는 정신도 차리고
재작년에 제대로 못했던 입시공부를
마져 하게 될 것 같아
아마 학원에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이 긴 사연을
여기다 올리는 이유는
마음을 정리하기 전에
어딘가에 기억해 놓을 공간이 필요 한 것
같아서 그래
되게 찌질한 사연이라
남한테 털어놓기도 애매하고
대부분의 친한 친구들이 고딩때 친구들이라
전 여자친구랑도 관계되있어서
함부로 얘기하기가 껄끄러워
xx여상에 다니던
김xx야
난 여전히 니가 보고싶고
그리워
너랑 그때 같은 맘이 이였단걸
일찍 알게됬음 좋았을텐데...
어디서든 잘 지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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