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협상 시작부터 어려운 숙제...'알래스카 프로젝트' 둘러싼 고차…
-
5회 연결
본문

LNG를 운송하는 선박. 로이터=연합뉴스
한·미 관세 협상이 ‘본궤도’에 오른다.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구매·투자 프로젝트’ 논의가 먼저 시작된다. 미국의 요구를 무턱대고 수용하기도,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어려운 카드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협상이 진행될수록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전망이다. ‘알래스카 프로젝트’를 지렛대로 관세를 낮추면서도 투자 리스크는 줄일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14일(현지시간) “한국과 다음 주 무역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센트 장관은 90일의 상호관세 유예 기간 한국·영국·호주·인도·일본 5개국을 최우선 협상 목표(top targets)로 삼겠다고 주변에 밝혔다. 정부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협상단을 꾸려 이른 시일 내에 방미를 추진해 본격적인 협상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지난 13일 “하루 이틀 사이에 알래스카 LNG와 관련해서 한·미 간에 화상 회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관세 협상 가운데 ‘알래스카 프로젝트’가 첫 의제가 된다는 의미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도 알래스카 현지 출장을 검토 중이다. 미국은 약 1300㎞에 달하는 가스관과 액화플랜트 등 설비 구축에 한국이 투자하고, 이후 여기서 생산하는 LNG를 한국이 장기 구매하길 원한다.

트럼프 추진 알래스카 LNG 개발 그래픽 이미지.
한국은 일단 가스관 건설 등 총사업비만 390억~440억 달러(약 57조~64조원) 규모인 초대형 프로젝트인 데다 불확실성이 커 미국의 요구를 당장 받아들이기 어렵다. 관세가 걸려 있어 단호하게 거절하기는 더 어려운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일본 등이 각각 수조 달러씩 투자하면서 우리의 파트너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고 언급했지만, 정부가 아직 입장 정리를 못 한 이유다. 15일 국회에 출석한 안덕근 장관도 “LNG 문제에 대해 정부 입장이 정해진 게 전혀 없다”고 했다.
한국이 투자와 구매를 동시에 결정할 경우 관세 협상에 미칠 긍정적인 효과는 확실하다. 투자 규모 면에서 한국이 꺼낼 수 있는 다른 어떤 카드보다 크다. 방위비 문제나 자동차 등 품목 관세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알래스카산 LNG를 구매하는 카드는 한국에 쉬운 선택지다. 우선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와 수급 안정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수입을 확대할 수 있어 대미 무역수지 불균형 개선 효과까지 있다. 예상대로라면 2030년께 LNG 생산이 가능한데, 지금 계약하면 가격 변동성 리스크가 있다. 하지만 통상당국 고위관계자는 “현재 LNG 가격 수준과 전망치 등을 볼 때 한국에 큰 손해는 아닐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투자를 포기하고 구매만 한다면 관세를 크게 내리기 힘들 수 있다.
개발사업 투자는 기본적으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알래스카는 1년 내내 땅이 얼어있는 영구 동토층이다. 여름철 배수가 잘되지 않아 호수인 곳도 많다. 기초 공사부터 어렵다는 얘기다. 혹한의 환경에서 공사 기간이 늘어날 수 있고, 환경보호 이슈까지 얽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사업비는 예상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2010년대 초반부터 엑손모빌·BP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참여했지만, 수익성 등을 이유로 철수한 전례도 있다.
정치적 지형은 한국에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대만은 지난달 이미 미국 측과 알래스카 LNG 구매·투자의향서(LOI)를 체결하며 한발 앞서갔다. 미국은 한국이 대만처럼 빠른 결정을 해주길 원한다. 그동안 한국은 탄핵 정국에서 의사 결정이 쉽지 않았다. 이어진 조기 대선 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알래스카 투자를 관세·방위비 등과 ‘패키지딜’로 협상하길 원하는 것도 부담이다. 알래스카 투자를 피하려면 방위비 등 더 큰 카드를 미국에 양보해야 할 수 있어서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부처 간 이해관계가 달라) 통상 협상은 가급적 방위비 협상과는 별개로 진행하는 편이 낫다”고 설명했다.
정부 안팎에선 서두르지 말고, 일본 등의 움직임을 먼저 살피자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대만이나 일본 등의 협상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이들 국가와 함께 투자해 리스크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을 16일 미국으로 파견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며 “차근차근 타협하면서 교섭이 이뤄지면 된다는 방침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밝혔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대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만큼 큰 틀에서 합의를 노력하는 한편, 차기 대통령 부임 이후 최종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통상협상을 둘러싼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오성익 OECD 지역개발정책위원회분과 부의장은 “사업 투자가 불가피하면 비용에 대한 리스크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초기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