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장 큰 위로와 힘 됐던 분"…세월호 유족도 성소수자도 교황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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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8월 16일 124위 시복미사에 앞서 펼쳐진 카 퍼레이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세월호 참사로 단식하면서 힘들었을 때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신 분인데….”

세월호 참사 유족인 ‘유민 아빠’ 김영오(58)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진 2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교황의 방한 기간이었던 2014년 8월 16일을 그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4일째 단식을 이어가던 김씨 앞에 교황의 카퍼레이드 행렬이 다가왔다. 교황이 알아보기 쉽게 다른 유족들은 모두 앉고 김씨만 서 있는 상황이었다. 김씨는 ‘내 딸이 왜 죽었는지 알기 위해 33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고 영어로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팻말을 본 교황이 차에서 내렸다. 한국 경호원이 김씨와 교황 사이를 막아섰지만, 교황청 소속 경호원들이 길을 텄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김씨는 어쩔 줄 몰라 교황의 손등에 이마를 댄 뒤 편지를 전달하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교황의 왼쪽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거꾸로 달려 있었다. 김씨는 “리본을 바로잡아드리니 인자하게 웃어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교황은 미사와 시복식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을 떼지 않았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노란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는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교황은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김시는 “차기 교황도 누구 편이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서는 분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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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지난해 11월 20일 신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EPA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도 22일 입장문을 내고 “교황님의 기도와 사랑은 ‘우리는 잊히지 않았다’는 희망이었다. 부디 영원한 평화를 누리시길 기도드린다”고 밝혔다.

가톨릭 성소수자, 교황 선종 애도

평생 소외된 곳을 보듬은 교황의 선종 소식에 성소수자들도 비통해했다. 생전 교황은 성소수자도 “하느님의 자녀”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2023년 1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동성애 행위가 ‘죄’라는 기존 가톨릭 전통을 재확인하면서도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며, 교회가 반동성애법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하기도 했다.

가톨릭 성소수자 신도와 연대하는 ‘아르쿠스’는 21일 오후 월례 미사에서 교황을 추모했다. 이날 전례를 집전한 김영근 신부는 “이 세상에서 물러가신 주님의 종 프란치스코 교황, 산불로 희생된 분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생각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가톨릭 성소수자 소소(활동명·34)는 “미사에 참석하는 길에 소식을 듣고 울었다”며 “교황께선 기존의 가르침을 지키면서도 성소수자가 교회에서 함께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셨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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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서 조문객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뉴스1

성소수자 한모씨도 “교황은 정죄와 혐오가 아닌 사랑과 축복의 길을 걸어오신 분”이라며 “그의 삶과 가르침에서 드러난 그리스도의 향기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 것”이라고 추모했다. 이전수 아르쿠스 대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기 때문에 교황이 이뤄왔던 업적이 뒤집힐 것 같은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는 명동대성당 지하 성전에 분향소를 마련하고 22일 오후 3시부터 조문객을 받았다. 명동성당에는 조문 시작 시각 30분 전부터 신자 150여명이 몰려 긴 줄이 형성됐다. 미사보를 쓴 한 신자는 부슬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상 앞에서 기도했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윤성님(48)씨는 “여성, 장애인 등 소외된 이들 각별히 사랑하신 교황이셨기 때문에 더 슬프다”고 했다. 명동성당 봉사자 정모(70)씨는 “청빈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 분이 떠나셔서 한쪽 날개를 잃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분의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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