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서해 구조물 철거 거절한 中…"양식 시설 직접 보라" 현장 방문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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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한·중 잠정 조치 수역(PMZ)에 들어선 중국 구조물을 한국이 철거하라고 요구하자 중국은 "영유권과 무관한 양식용"이라고 거부했다. 대신 현장에 와서 직접 확인해보라고 제안했다. 한·중 간 경계가 불분명한 수역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겠다는 취지인데, 정부는 현장 방문에 응할지 여부와 시기, 방식 등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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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 PMZ )에 2018년 설치한 선란 1호.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韓 현장 방문 주선하겠다"

24일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열린 제3차 한·중 해양협력대화에서 훙량(洪亮) 중국 외교부 변계해양사무국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중국 측은 "해당 구조물은 순수 양식 목적의 시설로 영유권이나 해양 경계 획정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측 관계자들의 현장 방문을 주선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앞서 지난 2월 한국 해양조사선의 현장 조사를 가로막고 한국 해경과도 대치했던 중국이 입장을 바꾼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국 측 조사단 파견과 관련해 "우려 사항을 어떻게 해소할지 내부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타임테이블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 조사단이 현장을 방문해 ‘양식용’이라는 점을 직접 확인하면 된다는 중국의 입장에 그대로 따라갈 경우 자칫 PMZ 안에 중국이 어업 시설을 명목으로 무단 설치하는 건 문제가 없다는 명분을 줄 우려가 있다.

현재 PMZ에는 중국이 연어 양식 시설이라며 2018년과 지난해에 설치한 선란 1·2호와 이를 위한 관리 보조 시설이라며 2022년에 설치한 구조물까지 총 3개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구조물이 들어서 있다. 한·중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치고 경계가 최종 획정되지 않은 PMZ에선 일방적인 현상 변경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또 분쟁 지역마다 '알박기 전략'을 펼쳤던 중국의 전력을 고려할 때 군사적으로 전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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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제3차 한·중 해양협력대화가 개최된 모습. 외교부

"민간 시설물"이라며 철거 거부 

이날 대화에서 "문제의 구조물 3개를 모두 PMZ 밖으로 이동하라"는 한국 측 철거 요구는 중국이 거부했다. 중국 측은 민간 기업이 자금을 투입했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또한 석유 시추선을 개조해 '고정식'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던 이른바 '관리 보조 시설'에 대해 중국 측은 "땅에 고착돼있지만 영구적으로 박혀 있지는 않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연어 양식장을 운영할 때 부산물을 보관하고 바지선이 오가기 위한 용도"라는 게 중국 측의 설명이었다. 다만 경계 미획정 수역에서 해저에 말뚝을 박는 식으로 ‘해양 환경에 영구적인 물리적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할 경우 유엔 해양법 협약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구조물 추가 설치 가능성 작아 

외교부는 이번 대화로 "사태 악화를 막고 해결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이날 대화를 위해 서해 구조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지방정부 관계자까지 이례적으로 파견한 것도 한국을 설득하는 데에 성의를 보인 것으로 외교부는 평가했다.

이날 대화에서 한국 측 수석대표인 강영신 외교부 동북·중앙아국장은 서해 구조물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우리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해양권익이 침해돼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어떤 경우에도 추가적 구조물의 일방적 설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전달했다"며 "중국 측 행동과 언급을 종합할 때 우리 측이 우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중국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곤란하다는 여론이 국내에서는 지배적이다. 외교가에선 중국이 비슷한 구조물을 10여개까지 늘려 PMZ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거란 우려가 여전히 있다. 한국도 PMZ 내에 시설물을 설치하는 등 비례적 필요성을 정부가 고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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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 PMZ )에 지난해 설치한 선란 2호.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분과위 설립…"걸림돌 안 되게 소통"

2019년 12월 한·중 외교장관 합의로 신설된 한·중 해양협력대화가 대면으로 이뤄진 건 이번 3차 대화가 처음이다. 한·중 양측 각 20여명씩 총 40명 정도가 참석한 이날 대화는 오전 9시에 시작해 오·만찬을 겸해 약 12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음 4차 회의는 중국에서 개최될 전망이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이날 대화에 대해 "남황해(南黃海) 어업 및 양식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밝히며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중은 서해 구조물 문제 등을 보다 기동성 있고 세부적으로 협의하기 위한 '분과위원회', 즉 일종의 워킹그룹도 설립했다. 서해 구조물 문제 등 갈등 사안을 다루는 '해양질서 분과위'와 협력 사안을 다루는 '실질협력 분과위'가 해양협력대화 산하에 설치됐다. 외교부는 "서해 구조물 문제가 한·중 관계 발전 흐름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공동 인식 하에 각급 채널로 소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조성하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중국의 전방위적인 ‘내해화(內海化)’ 전략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해 역시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미 국무부는 이날 서해 구조물 관련 처음으로 입장을 내고 "중국은 항해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준수를 수십년간 거부해 자국의 경제 이익을 저해하고 역내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도 24일 "해상에 구조물을 만들어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은 중국이 늘 써온 수단"이라며 "이번 구조물도 현상변경 시도의 하나로 장래에 관할권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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