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 종묘 증축은 전에 없던 광경이라네”… 299년전 영조 때 상량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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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에 걸친 대규모 수리를 마친 종묘 정전이 20일 공개됐다. 이날 오후 종묘 정전에서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관으로 수리 기간 동안 창덕궁 선원전으로 이전했던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를 다시 모시고 ‘고유제’를 지내고 있다. 전민규 기자
(임금께서) 유사(有司·사무 담당)에게 공사를 시작하라 명하시고/ 대향(大享·종묘 등에서 지내던 큰 제사)에 맞춰 완공하라 하셨네/ 억년(億年)을 생각하는 영원한 대책을 세웠는데/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두었고/ 네 칸으로 한정하여 증수했으니/ 힘든 백성들 번거롭게 하지 않았네
지난 5년 간 보수 공사를 거친 국보 ‘종묘 정전’에서 수리 과정 중에 발견된 299년 전 상량문(上樑文)의 일부다. 국가유산청은 그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존처리를 마친 상량문의 전문을 우리말로 옮기고 그 결과를 25일 언론에 공개했다.
상량문이란 목조 건물을 짓거나 고친 역사를 기록한 자료로서 일반적으로 건물의 최상부 부재인 종도리(마룻도리)를 올릴 때 함께 넣어둔다. 국가유산청 측은 2023년 4월 19일 목부재를 해체하던 중 정전 11번째 방의 종도리 하부에서 상량문을 찾았다. 가로 88.6㎝, 세로 61.3㎝ 한지에 총 593자의 한자가 먹으로 쓰여 있었다.

종묘 정전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 사진 국가유산청
『종묘개수도감의궤(宗廟改修都監儀軌)』에 따르면 1725년(영조1) 8월부터 1726년(영조2) 4월까지 종묘 정전을 오른쪽으로 4칸 증수하는 공사가 이뤄졌다. 1741년 편찬된 『종묘의궤속록(宗廟儀軌續錄)』에는 1726년 2월 19일의 상량식이 자세히 기록됐을 뿐 아니라 대제학 이의현이 지은 상량문도 수록됐다. 이번에 원본 발견을 계기로 한국문헌문화연구소 박철상 소장이 상량문 국역을 맡았다.
내용을 보면 “변란을 겪어 다시 새롭게 하는데/ (중략)/ 갑자기 임금께서 거듭 돌아가시니/ 순서대로 신주를 종묘에 올리려고/ 의식을 거행해야 하는데/ 봉안할 장소가 좁아/ 신위 간격이 너무 밭을까 걱정이었네”라는 대목이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돼 광해군 때 재건한 종묘 정전을 영조 때 4칸 증축한 계기가 숙종과 경종이 거듭 승하하면서 신주를 모실 자리가 부족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종묘 정전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 보존 처리 과정. 사진 국가유산청
“나무를 깎는 일이 끝나자/ 규모가 크고 아름답게 바뀌었네” “오늘 종묘를 크게 증축한 일은/참으로 전에 없던 드문 광경이라네/ 서까래 단청의 날아오르는 구름은/ 큰 기둥의 길한 조짐에 부합하고” 등 공사 과정과 상량식을 진행한 날 풍경도 시적으로 묘사됐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상량문은 언제, 어떻게, 누가, 왜 공사를 했다 정도의 행정 기록에 그치는데 이번에 나온 상량문은 장문에다 시적 문장이 두드러져 이채롭다”고 말했다.
상량문은 “천명(天命)은 더욱 창성하고/ 하늘이 내린 복이 불어나 이르기를/ 효손(孝孫)에겐 경사가 있어/ 끝없는 장수 누리고/ 선왕(先王)을 잊지 않고/ 영원히 제사 지내길/ 산하(山河)가 종묘에 의지하여 오래도록 지속되고/ 일월(日月)은 종사(宗祀)와 함께 빛나기를”이라는 축원으로 끝난다.
종묘 정전은 조선 왕실의 사당인 종묘에서도 중심 건물로 1395년 처음 건립됐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걸 광해군 대인 1608년 11칸 규모로 다시 지었고 영조(재위 1724∼1776)와 헌종(재위 1834∼1849) 대에 각각 4칸씩 증축됐다. 총 19칸의 방에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 등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모시고 있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됐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종묘)에 등재됐다. 정전 서쪽의 영녕전에도 16칸의 방에 왕실 신주 34위가 모셔져 있다.

21일 5년간의 수리를 마친 서울 종묘를 방문한 외국인 관람객들이 휴대전화로 정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연합뉴스
종묘증수상량문(宗廟增修上樑文)
伏以聖人制禮, 성인(聖人)께서는 예(禮)를 제정함에
尤謹於奉先王者, 선왕(先王)을 받드는 일에 더욱 신중을 기했고,
肇基必重乎建廟, 왕조의 터를 잡을 때는 사당을 세우는 일을 반드시 중요하게 생각했네.
故路寢曼碩, 그래서 노침(路寢,正殿)을 크고 길게 했으니
可見頌禱之辭, 여기서 송축하고 기원하는 말을 볼 수 있고,
而歲紀久長, 세월이 오래되면
亦有通變之道, 또한 변통할 방도를 두었으니,
玆當殿閣之修拓, 이에 전각(殿閣)을 수리하고 넓힘에 있어
益驗神理之妥寧. 혼령이 편안해짐을 더욱 징험하였네.
粤昔文祖開創之初, 옛날 문조(文祖)께서 나라를 처음 세우실 때
首先太室興作之役, 태실(太室) 짓는 일을 먼저 했는데,
重檐複屋, 중첨(重檐)과 복옥(複屋)은
徵戴記之遺規, 『대대기(大戴記)』 에 남긴 규범에서 징험할 수 있고,
淸廟閟宮, 청묘(淸廟)와 비궁(閟宮)은
倣周家之古制, 주(周)나라의 옛 제도를 모방했다네.
七世觀德, 7대(代)의 덕을 보아
儼昭穆之有倫, 소목(昭穆)에는 엄연히 차례가 있고,
四時薦禋, 사시(四時)에 공경히 제사 지냄에
備情文而罔缺, 정성 담긴 글을 갖춰 빠짐이 없었네.
所以取孔安之義, 이는 신령을 매우 편안히 해드린다는 뜻을 취한 것이고
亦庸盡如在之誠, 또한 마치 곁에 계신 듯이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라네.
經變亂而重新, 변란을 겪어 다시 새롭게 하는데
陰騭靡忒, 하늘이 어김없이 음덕(蔭德)을 베풀고
歷聖神之相繼, 신성(神聖)한 임금이 서로 이어서
寅奉彌勤, 삼가 받들기를 부지런히 했는데,
何天意之莫諶, 하늘의 뜻은 헤아리기 어려워
遽仙馭之荐陟, 갑자기 임금께서 거듭 돌아가시니
序合躋祔, 순서대로 신주를 종묘에 올리려고
臨縟禮之將行, 의식을 거행해야 하는데
地窄奉安, 봉안할 장소가 좁아
恐神座之太偪, 신위 간격이 너무 밭을까 걱정이었네.
裳衣宗器, 의상과 종묘 제기는
陳設有妨, 진설하기 어렵고
下管升歌, 당하의 관악기, 당상의 노래는
周旋無所, 공연할 곳이 없었네.
肆用酌量乎事勢, 이에 형세를 참작하여
乃敢達觀而稟承. 감히 자세히 살펴보고 보고하여 임금의 승인 받았네.
惟我主上殿下, 우리 주상전하(主上殿下)께서는
慕切羹墻, 그리움이 사무치는데
志在堂構, 선왕의 뜻 계승하는데 뜻을 두었고,
踐位紹統, 왕위에 올라서는
每軫鞏基之方, 늘 나라 기틀 공고히 할 방도에 진념했으며,
尊祖敬宗, 조종(祖宗)을 존경하여
愈隆追遠之節, 추모의 예절을 더욱 높였네.
爰命有司以經始, 이에 유사(有司)에게 공사를 시작하라 명하시고
俾趂大享而畢完, 대향(大享)에 맞춰 완공하라 하셨네.
思億年之永圖, 억년(億年)을 생각하는 영원한 대책을 세웠는데
略存餘地,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두었고
限四架而添造, 네 칸으로 한정하여 증수했으니
不煩窮民, 힘든 백성들 번거롭게 하지 않았네.
指揮一出於睿裁, 지휘는 한결같이 임금의 결단에서 나왔으니
克明萃聚之玄理, 백성의 마음 모으는 깊은 이치를 밝힌 것이고,
制作無侈於舊貫, 새로 지은 것은 옛것보다 사치스럽지 않으니
寔體節儉之素心, 이는 근검절약하는 평소의 마음을 실천한 것이라네.
纔斤斵之訖功, 나무를 깎는 일이 끝나자
奄輪奐之改觀. 규모가 크고 아름답게 바뀌었네.
蓋我朝歷祚之綿遠, 우리나라 임금은 대대로 멀리 이어질 것이고
最多功德之弗祧, 공덕이 많아 체천(遞遷)하지 않을 것이네.
而今日廟宇之增恢, 오늘 종묘를 크게 증축한 일은
允爲前古之罕覿, 참으로 전에 없던 드문 광경이라네.
榱橑雲翥, 서까래 단청의 날아오르는 구름은
符隆棟之吉占, 큰 기둥의 길한 조짐에 부합하고
衣冠月游, 매 달 의관(衣冠)을 꺼내어 바람 쐬는 것은
怳法駕之神衛, 법가(法駕,임금의 수레)를 호위하는 듯하네.
恭申善頌, 삼가 좋은 칭송을 펼쳐
助擧脩樑. 긴 들보 올리는 걸 돕는다네.
兒郞偉抛樑東, 어영차! 동쪽에 들보 올리니
晴光初迓日生東, 해가 동쪽에 뜨고 깨끗한 빛 처음 맞네.
駱山雨後烟嵐捲, 낙산(駱山)에 비갠 뒤 안개 걷히고
佳氣長看鎭大東. 좋은 기운이 늘 우리나라 지켜주네.
兒郞偉抛樑西, 어영차! 서쪽에 들보 올리니
仰膽廟廡列東西, 묘무(廟廡)가 동서로 늘어서있네.
晩林春色籠涵苑, 저문 숲 봄빛은 정원을 감싸고
簷影遙連禁掖西. 처마 그림자 저 멀리 궁궐 서쪽 이어졌네.
兒郞偉抛樑南, 어영차! 남쪽에 들보 올리니
梴棟奇材至自南, 큰 기둥 기이한 재목 남쪽에서 이르네.
已見經營功且訖, 시작한 공사 끝나 가는데
依然黼座正臨南. 보좌(寶座)는 의연히 남쪽 향하네.
兒郞偉抛樑北, 어영차! 북쪽에 들보 올리니
想像陳衣淸渭北, 위수(渭水) 북쪽에 옷을 늘어놓은 듯하네.
廟貌千秋長若新, 종묘 모습은 천년 지나도 늘 새롭고
衆星環衛拱辰北. 뭇 별들은 북극성 보좌하며 떠받드네.
兒郞偉抛樑上, 어영차! 위쪽에 들보 올리니
春雲靉靆覆城上, 봄 구름 뭉게뭉게 성 위를 덮네.
茂陵玊馬空中嘶, 무릉(茂陵)의 옥마(玉馬)가 공중에서 우는 듯
髣髴英靈神路上. 신령 다니는 길엔 영령(英靈)이 계신 듯.
兒郞偉抛樑下, 어영차! 아래쪽에 들보 올리니
風車雲斾逶迤下, 수레 깃발 비스듬히 아래로 내려오네.
龍胡已遠杳難攀, 임금은 멀리 가서 따라잡기 어려우니
悽愴焄蒿筵几下. 궤연(几筵) 아래 훈호(焄蒿)와 처창(悽愴)이네.
伏願上樑之後, 상량을 올린 뒤 기원하네.
寶籙愈昌, 천명(天命)은 더욱 창성하고
天休滋至, 하늘이 내린 복이 불어나 이르기를.
孝孫有慶, 효손(孝孫)에겐 경사가 있어
介眉壽於無疆, 끝없는 장수 누리고
前王不忘, 선왕(先王)을 잊지 않고
綿血食於永世, 영원히 제사 지내길.
山河扶戶牗而悠久, 산하(山河)가 종묘에 의지하여 오래도록 지속되고
日月幷宗祀而光輝. 일월(日月)은 종사(宗祀)와 함께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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