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의협이 7명 추천” vs “의협 아니어도 돼”…의·정 또 삐걱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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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대전의 한 의과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우산을 쓰고 이동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027학년도 이후 의대 정원을 논의할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의 구성을 두고 의·정 갈등이 재차 불거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복지부가 원칙과 기준 없이 공문을 보냈다”며 위원 추천을 거부하고 나섰으나, 복지부는 “법 해석상 아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25일 정부와 의료계 이야기를 종합하면, 추계위는 의료 공급자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위원의 과반수여야 하는데, 이 ‘공급자단체’의 범위를 두고 양측의 해석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추계위는 의대정원 등 의료인력의 적정 규모를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합의에 의해 추계하기 위한 기구다.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에 따르면, 추계위는 총 15명(위원장 1명 포함) 이내로 구성하되 의료 공급자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과반수(8명)가 되게 해야 한다. 복지부는 의협과 대한병원협회(병협) 외에도 대한의학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총 6곳을 공급자단체로 보고 위원을 추천해달라는 공문을 지난 18일 발송했다.
의협은 법에 명시된 공급자단체가 의협과 대한병원협회(병협) 등 2곳만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어떤 기준으로 의협과 병협을 제외한 나머지 단체들에 위원 추천 공문을 보냈는지 (복지부의) 설명이 없다”며 “지금과 같이 원칙과 기준 없이 보내온 공문에는 답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우리가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해한 바로는, 의료계에서 8명을 추천하게 돼있는데 병협이 1명, 나머지 7명은 의협에서 추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월 14일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에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참석해 방청하고 있다. 뉴스1
앞서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의협 부회장)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협·병협 추천 위원이 각각 몇명인지 등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복지부 마음대로 (위원을) 취사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다.
복지부는 의협이 아닌 의료계 단체에서도 공급자 측 위원을 추천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건의료기본법을 살펴보면 ‘의료법 제28조에 따른 의료인 단체’라고 규정된 부분이 의협을 의미한다”며 “(추계위 관련 사항이 명시된) 보건의료기본법 제23조의2에는 (과반수 추천을 받아야 하는 공급자단체를) ‘보건의료인력 직종별 단체 및 의료기관단체’로 규정하고 있어, 이 경우 의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의협 외 다른 단체들에 공문을 보낸 것은 법 해석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나머지 단체들이 그간 정부 정책에 우호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의료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추계위를 만들어보고자 (6개 단체에)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위원 구성 관련 내용이 명시된 보건의료기본법 제23조의2.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복지부는 각 단체에 복수 추천도 가능하도록 했다. 오는 28일까지 추천된 전문가 중 조건에 가장 부합한 이들을 위원으로 위촉해 이르면 다음달 중 추계위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추계위원은 ▶경제학·보건학·통계학·인구학 등 수급추계 관련 분야를 전공하거나 ▶인력정책·인력수급 추계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연구실적이 풍부하고 ▶대학의 조교수 이상이거나 연구기관의 연구위원 이상 또는 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복지부는 공급자단체 외에도 수요자단체(노동자·소비자·환자 관련 시민단체)와 보건의료 관련 학회 등에도 추천을 요청했다.
의협이 끝까지 위원 추천을 하지 않으면 의협 몫 위원이 빠진 채로 추계위가 출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정된 보건의료기본법은 각 단체에 위원 추천을 요청했음에도 답이 없을 땐 ‘공급자단체 추천 과반’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추계위를 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협은 지난해 10월 정부가 추계위 참여를 요청했을 때도 2025학년도 정원부터 재논의해야 한다며 위원 추천을 끝내 거부했었다.
이번 추계위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는 의협도 적극 관여한 만큼, 위원 추천을 끝내 거부할 경우 의료계 안팎의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한 의료계 단체 관계자는 “이번 추계위 법안 논의 과정에는 의협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며 “모든 게 자기들 입맛대로 안 된다고 해서 또 위원 추천을 거부하고, 추계위를 무력화하려 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수요자단체로서 전문가 추천 요청을 받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남은경 사회정책국장은 “의료계 과반으로 구성됐음에도 (참여를 거부하고) 계속 바깥에서 비판만 하는 건 어떤 합리성도 근거도 없다. 일단 테이블에 나와 서로 토론하고 설득하길 바란다”며 “추계위는 여야가 같이 처리한 기구인 만큼, 차기 정권에서도 뒤엎는 일 없이 정상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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