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트럼프발 쇼크 미리 알았나…아이폰 하청업체의 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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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하청업체’의 미래 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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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혼하이(鴻海) 테크데이. 가죽 재킷을 입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무대에 올라 스케치 그림 한 장을 보여줬다. 한쪽엔 자동차, 다른 한쪽엔 공장이 그려진 이 그림은 누군가가 노트에 볼펜으로 끼적인 듯 엉성했다. 하지만 여기엔 ‘아이폰 하청 업체’로 유명한 혼하이정밀의 자회사 ‘폭스콘’이 구상하는 미래가 있었다. 황 CEO는 “엔비디아와 폭스콘이 함께 건설할 인공지능(AI) 공장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옆에 서 있던 류양웨이 폭스콘 CEO는 “폭스콘은 이제 제조 기업에서 플랫폼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플의 손발 노릇에 만족 못한 혼하이그룹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의 변신 시도에 전 세계 전자 산업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궈타이밍(사진 가운데).
◆애플의 마지막 퍼즐, 폭스콘=고무공장에서 일하던 대만의 젊은 청년 궈타이밍은 1974년 혼하이정밀공업(당시 혼하이플라스틱)을 창업했다. 직원 10명짜리 이 회사는 TV용 플라스틱을 납품하던 회사였다. 싱가포르국립대 헨리 와이충 융 교수의 저서 『전략적 결합』에 따르면 궈 창업자는 1995년 미국 델 테크놀로지 창업자 마이클 델을 폭스콘의 선전 공장에 데려가 자사의 생산 시스템을 소개한다. 당시 델을 비롯한 PC 회사들은 공급업체로부터 부품을 구매해 자체 공장에서 조립했다. 이런 조립 생산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델은 폭스콘의 공장을 둘러본 이후 전자기기 위탁생산(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EMS) 계약을 맺게 된다. 델을 시작으로 폭스콘은 자사의 상표 없이 제품을 위탁받아 생산하는 ‘음지의 조력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폭스콘은 자체 공장이 없는 애플의 생태계를 완성시켜 준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됐다. 대규모 인력이 24시간 3교대로 돌아가는 폭스콘은 아이폰이 출시된 2007년부터 생산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NYT는 “애플 경영진에게 폭스콘은 중국이 미국보다 빠르고 성실한 인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 그 어떤 미국 공장도 하룻밤에 3000명 고용해서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고 보도했다.
◆주문하세요, 뭐든 만들어 드립니다=폭스콘은 고객사를 공개하진 않지만 소비자 가전부터 기업 간 거래(B2B) 제품까지 전 제품을 아우르며 생산하고 있다. 현재 폭스콘은 전 세계 24개국에 약 233개의 제조 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오늘날 EMS 업체들도 단순 하청을 넘어 공정 경험과 기술 노하우가 필요하다. 폭스콘은 다양한 고객사와의 장기 협업을 통해 축적된 공정 기술력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보통 기업의 몸집이 커질수록 대응 속도는 느려지기 마련이지만 폭스콘은 예외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기존 공장을 마스크 생산 시설로 신속히 전환한 사례에서 폭스콘의 유연한 제조 역량이 드러난다. 폭스콘은 2020년 3월 일본 미에현에 위치한 샤프의 LCD 패널 공장을 마스크 생산 시설로 빠르게 바꿨다. 클린룸의 여유 공간을 활용해 마스크 생산 장비를 도입하고, 별도의 생산 라인을 신속히 구축한 것이다. 같은 해 4월에는 미국 위스콘신주 남동부 마운트플레전트에 건설 중이던 LCD 공장도 마스크 생산 공장으로 전환됐다.
◆조립 회사 그 이상을 꿈꾼다=지난해 폭스콘의 연 매출은 6조8600억 대만달러(약 301조원)로 전년 대비 11.3%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2.92%, 순이익률은 2.23%에 불과하다. 반면 TSMC는 지난해 매출 2조8943억 대만달러로 폭스콘의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영업이익률이 45.7%에 달한다. 첨단 공정 중심의 반도체 사업에 비해 전자기기 제조·조립은 ‘박리다매’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김주원 기자
애플의 변심에 언제든 사업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폭스콘은 변화와 도전에 힘을 쏟고 있다. 궈 창업자는 이미 2018년에 ‘향후 5년간 최소 100억 대만달러를 투자하겠다’며 AI 기업으로 도약 계획을 발표했다. 이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선택한 파트너가 AI 칩 선두주자 엔비디아다. 엔비디아가 설계한 그래픽처리장치(GPU)는 TSMC에서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함께 패키징돼 ‘블랙웰’ 같은 AI 가속기로 완성된다. 이걸 폭스콘이 넘겨 받아 저장장치(SSD), 냉각 시스템 등과 결합해 AI 서버로 조립한 뒤 데이터센터에 최종 납품한다. 지난해 폭스콘 전체 매출의 약 30%는 클라우드 및 네트워킹 제품에서 나왔다. 아이폰 등 소비자 전자제품 부문(46%)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폭스콘 류양웨이 CEO는 “빠르면 올해 안에도 AI 서버 매출이 아이폰 매출을 넘어설 수 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와의 밀착 행보는 자체 AI 기술 개발로도 결실을 보아 중국어 번체에 특화된 최초의 거대언어모델(LLM) ‘폭스 브레인’도 지난달 공개했다. 2017년 일본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 뛰어드는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야심도 드러내고 있다.
◆폭스콘의 변신 키워드: 중국, 전기차=폭스콘의 주 고객인 애플은 관세 폭탄을 우려해 생산 시설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대안은 인구 대국 인도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인도에서 만들어지는 아이폰은 60%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인도를 비롯해 전 세계 24개국 폭스콘 생산시설 그 어느 곳도 중국 같은 경쟁력을 갖추긴 어렵다. 중국 폭스콘 공장의 저력은 값싼 노동력뿐 아니라 탄탄한 공급망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 1기 시절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위스콘신주에 디스플레이 공장을 짓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실패를 겪은 폭스콘이 미국 내 생산시설을 갖출지도 관전 포인트다. 당시 폭스콘 북미법인에서 이 프로젝트를 맡았던 앨런 영 위스콘신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위스콘신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첨단 제조와 기술 개발에 매우 적합한 곳”이며 “이 프로젝트를 다시 매력적으로 만들기에 좋은 여건이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 고객사인 애플의 지지가 예상돼 향후 폭스콘의 위스콘신 프로젝트는 낙관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폭스콘은 세계 1위의 자동차 파운드리를 꿈꾸고 있다. 2020년 전기차 제조 플랫폼 MIH를 공개하면서 전기차 시장 진출을 알린 폭스콘은 위탁 생산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자율주행 부품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목표다. 2023년 2월에는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수석부사장을 지낸 세키 준을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영입했으며 지난해에는 혼다와 합병을 논의하는 닛산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대만 정부는 2040년부터 대만에서 전기차만 판매하겠단 정책을 발표했는데, 폭스콘의 제조기술을 활용해 전기차를 미래 먹거리로 육성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영 교수는 “전기차·AI·로보틱스·반도체 등 폭스콘이 설정한 미래 전략은 과감하면서도 방향이 분명하다. 이 가운데 일부만 실현되더라도 폭스콘은 한층 더 강력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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