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두루마리 휴지, 골판지…이런 걸로 동대문서 ‘우주 탐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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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골판지·합판을 테이프로 붙여 만든 우주 착륙선과 탐사장이 들어왔다. [사진 현대카드]
“일출 5시 43분, 일몰 19시 16분, 식량과 소비재 체크, 라면 체크.”
25일 오후 7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전시 1관. 주조정실처럼 꾸며둔 무대에서 톰 삭스(59)가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인과 교신한다.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와 같은 크기로 합판과 골판지에 테이프를 붙여 만든 우주선에 톰 삭스 스튜디오 직원 두 명이 탑승했다. 허술해 보이지만 캐비닛에 과학책, 성경, 위스키와 보드카를 가지런히 채워뒀고, 싱크대에선 물도 나온다.
전시 ‘스페이스 프로그램: 인피니티’의 개막을 알리는 라이브 데몬스트레이션은 예정보다 두 시간 늦게 시작됐다. 카운트다운하고 로켓을 발사하고, 궤도에 진입하자 주조정실에서 ‘박수(Applause)’ 지시등이 깜빡였다. ‘7개월 후’라고 손으로 종이에 쓴 자막을 화면에 한 번 띄운 뒤 DDP에 착륙, 여기서 암석을 채취하고 다도(茶道)를 시연했다. 손으로 만든(DIY) 우주 탐사쇼다. 이렇게 새벽 1시까지 7시간 동안 이어간 라이브 데모를 현장과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100여명이 지켜봤다.
전시는 이 7시간짜리 데모를 전시장에 넓게 펼쳐놓은 듯한 모습이다. 손바닥만 한 발사대와 로켓 모형, DDP 위에 붙인 달 착륙선 모형 앞에 카메라를 설치해 우주선의 이착륙 영상을 만드는 식이다. 두루마리 휴지를 쌓아 고정한 로켓 모형도 있다. 테이프 자국이 그대로 드러난 골판지이지만 이 한계 안에서 극강의 디테일을 구현했고, 실제 작동도 한다는 데 묘미가 있다.

톰 삭스(가운데)가 우주인으로 분한 스튜디오 직원들과 포즈를 취했다. [사진 현대카드]
24일 전시장에서 만난 톰 삭스는 조악함을 감추지 않는 이유를 묻자 “삼성이나 애플은 아름답고 완벽해 흠잡을 수 없고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우리가 여기 있고 직접 만들었다는 흔적을 남긴다”고 말했다. “나는 ‘톰 삭스의 예술’을 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며 “여러분 또한 여러분 나름의 예술을 하는 역사상 최고의 예술가다. 그게 중요하다. 남을 흉내 낼 필요 없다”라고도 덧붙였다.
1966년 뉴욕에서 태어난 톰 삭스는 영국 런던 건축협회 건축학교에서 공부했다. 일상의 재료를 닥치는 대로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 브리콜라주(Bricolage)가 그의 장기. 사무가구 브랜드 ‘놀(Knoll)’의 가구도,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집합주택 ‘유니테 다비타시옹’(1952)도 그의 손으로 새로 만들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 또한 그가 꽂힌 ‘브랜드’다. 그는 “우주 탐사는 경제적 이익도 창출되지 않는데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대한 예술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그는 나이키와 협업해 ‘마스 야드’ 운동화를 디자인한 작가로도 친숙하다. 삭스와 그의 스튜디오 직원들은 모두 9월 발매 예정인 ‘마스 야드’의 새 버전을 신고 나왔다. 삭스는 2023년 스튜디오 직원들에게 이른바 ‘갑질’을 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대해 묻자 그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상처받았던 시간이다. 우리는 최고의 우수성, 탁월함의 기준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고만 답했다. 전시는 9월 7일까지. 성인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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