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러 “필요하면 북한에 군사지원”…김정은·푸틴 ‘나쁜 혈맹’ 공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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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8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며, 유사시 군사 원조 의무를 규정한 양국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북·러 신조약) 4조 발동에 해당한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정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북한 발표 직후 감사 성명을 내고 파병이 신조약 4조에 따른 것이라며 합법성을 주장했다.

이들이 조약에 따른 파병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며 ‘나쁜 혈맹’을 공식화한 건 향후 상호 간에 유사시 개입이 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한반도에서 한·미 동맹과 북·러 동맹 간 대립 구도가 펼쳐질 우려가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날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의 군사 분야를 총괄하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지난 27일 관영 매체에 입장문을 보내 “공화국 국가수반의 명령에 따라 쿠르스크 지역 해방 작전에 참전한 우리 무력 구분대들이 러시아 연방의 영토를 해방하는 데 중대한 공헌을 했다”며 해방 작전의 “승리적 종결”을 선언했다. 또 “두 나라가 군대가 어깨 겯고(나란히 하고) 한 전호에서 피 흘려 싸우면서 전취한 이 고귀한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앞서 푸틴이 26일(현지시간)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에게 화상 보고를 받는 형식으로 북한군 파병을 처음 인정했다.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어깨를 나란히 해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면서다.

러시아, 파병사실 밝힌 북한에 “실질적 동맹” 첫 표현

북한이 파병 인정과 동시에 작전 종결을 알린 건 추후 전사자들에 대한 영웅화 작업을 통해 민심 이반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북한은 “(파병은) 금후 조로(북·러) 친선 협조 관계의 모든 방면에서 확대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러시아에 보상도 독촉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입장에선 파병이 정당했다는 내부 선전을 위해 반대 급부를 받아와야 하고, 종전이 매듭지어지기 전에 일종의 북·러 간 결산이 이뤄지는 게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북·러 모두 파병 근거를 지난해 6월 푸틴의 방북을 계기로 체결한 신조약 4조로 특정했다는 점이다. 4조는 ‘어느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을 경우 다른 쪽은 지체 없이 모든 수단으로 군사·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한다.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 “조약에 따라 필요할 경우 북한에 군사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다시 확인했다. “특별군사작전의 경험을 통해 조약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었다”면서다.

당중앙군사위는 파병은 “(조약) 이행의 가장 출실한 행동적 표현의 본보기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성명에서 “조선인민군 부대의 (전투) 참여는 조약의 문구와 정신에 따른 것”이라며 4조를 언급했다.

동시에 북한은 “동맹관계, 형제관계의 과시” 등을 거론했다. 이는 북한이 혈맹으로 인식하는 중국, 형제국으로 부르는 쿠바 이상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러시아 당국자가 북한을 처음 ‘동맹’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교부 대변인은 공식 성명과 현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 친구들이 보여준 연대감은 우리 관계가 실질적으로 동맹 수준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6월 북·러 정상회담 뒤 김정은이 “동맹관계라는 새로운 높은 수준”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을 때도 함께 단상에 선 푸틴은 동맹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는데, 기류가 변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들이 조약과 동맹을 내세우며 ‘어둠의 거래’를 양지로 드러낸 건 향후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개입할 여지를 키운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북·러 신조약이 충돌하며 전략적 경쟁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2조는 어느 한쪽에 대한 무력 공격 위협이 있을 경우 이를 저지하기 위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하도록 규정한다. 애초에 북·러 신조약 4조가 이를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또 당중앙군사위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조성된 전황이 조약의 제4조 발동에 해당된다는 분석과 판단에 근거해 참전을 결정하고 러시아 측에 통보”했다고도 밝혔다. 이는 향후에도 조약 4조를 김정은과 푸틴 개인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발동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김정은의 러시아 답방 등을 통한 북·러 정상회담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김정은이 다자행사 참여를 꺼려 러시아 전승절(5월 9일) 외에 별도의 일정이 될 수 있다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 김정은으로서는 북·미 대화 재개까지 염두에 두고 러시아를 뒷배로 확보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푸틴이 미국과의 종전협상 상황에 따라 북한을 협상카드로 쓸 가능성도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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