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단독] "트럼프 2기, 거래하거나 잡아먹거나…韓은 그 중간" [트럼프 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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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그룹 회장 이안 브레머 인터뷰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자(dealer)가 아닌 포식자(predatory)가 됐다.”

세계적 정치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p)의 회장이자 저명한 지정학자 이안 브레머(Ian Bremmer)가 내놓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100일에 대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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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레머 회장은 26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혼란은 100일에 끝날 스프린트가 아니라 최소 4년간 지속될 마라톤인 동시에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포식자’가 된 트럼프에 대항할 무기로 조심스럽게 한국의 자체 핵보유을 언급했다.

트럼프 2기가 1기 때와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트럼프 1기는 ‘거래’로 규정됐다. 그러나 지난 100일은 완전히 다르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인물이나 기관, 국가 등과는 여전히 거래(deal)하고 있지만, 이를 제외한 국제 사회의 대부분의 구성원을 포식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스스로 했던 ‘금을 가진 자가 규칙을 정한다’는 원칙을 국제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상대국을 ‘포식의 대상’으로 본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캐나다와 멕시코, 덴마크(그린란드), 파나마와의 대화는 결코 거래가 아니다. 더구나 미국 내에서는 이를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특히 이러한 생각에 대해 공화당의 90%가 지지를 보내고 있고, 트럼프가 완전히 장악한 권력기관과 트럼프 행정부를 지원하는 강력한 돈줄의 지지를 받는다. 이러한 구조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00일 만에 과거 10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 한꺼번에 발생했다면, 300일·600일·1000일 뒤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지금의 불확실성이 미래의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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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회의에서 유라시아 그룹 회장 이안 브레머가 '47대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구상'을 주제로 한 토론회 패널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레머 회장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수십년간 미국에서 구축돼 온 ‘도둑정치(kleptocracy) 체제’의 결과라고 했다. 권력층이 부를 독점하는 정치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구조는 외교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2기 들어 동맹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대상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걸 눈치채야 한다. 독재체제나 왕국, 견제와 균형이 불필요한 국가들은 타격이 없다. (트럼프의 첫 순방 예정지였던)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캐나다와 유럽은 갑자기 적대국으로 변모한 동맹 미국을 마주하게 됐다. 트럼프는 (포식을 위해) 이들의 안보를 무력화하고 정치를 흔들며, 기존의 조약을 파기하고 경제적 유대를 끊어 영구적으로 적용될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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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은 두개의 범주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나.
“한국은 두 극단 가운데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 미·중 관계가 더 악화될 거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유럽과 중동의 병력과 자원을 철수해 아시아에 더 많은 장비와 인력을 배치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비롯해 일본·호주·인도와는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브레머 회장 역시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국이라고 했다. 그러나 관세를 내세운 트럼프의 무역 정책은 ‘G-zero(강력한 글로벌 리더의 부재로 국제 협력이 어려워지는 현상)’ 상황 속에서 장기적으로 중국에 오히려 기회가 될 거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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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중국 상하이에서 한 여성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상화 앞을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결국 중국과의 패권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의미인가.
“중국은 미국에 반격할 의향이 가장 강한 나라다. 아직까지 시진핑 주석의 강력한 정치 체제를 통해서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고통을 잘 감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 역시 현재 수준의 고관세를 계속 버티기는 어렵다. 중국의 고위 관료들이 나에게도 ‘미국이 관세를 전격적으로 먼저 낮출 경우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뜻을 전달해오고 있다. 미국이 먼저 관세율을 낮춰 협상을 요청할 경우 테이블에 나서게 될 거란 의미다.”
중국이 노리는 구상도 있을 것 같다.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은 트럼프의 정책이 중국을 유리하게 만들거란 점을 잘 알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을 버리고 있는 미국이 파리협정와 세계보건기구에서 철수하면, 중국이 빈자리를 채우면서 미래 에너지와 보건 분야의 주도권이 중국에 넘어갈 수 있게 된다. 또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폐쇄는 남반구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장악력 확대와 직결된 사안이다. 특히 미국이 한국과 일본 등 핵심 동맹을 적대할수록 중국은 한·일에 더 공을 들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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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전용 헬기 마린원에서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실제 전쟁을 우려하는 기류도 있다.
“단기적으로 전쟁 가능성은 작아졌다고 본다. 중국은 미국의 리더십 공백 상황을 활용해 국제사회에서 보다 안정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주요 포섭 대상인)한·일에게 ‘중국은 위험 요소’라는 확신을 줄 이유가 전혀 없다. 반면 트럼프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항해 한·일에게 미국에 완전히 동조한 반중 무역 블록을 강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 대한 신뢰 조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트럼프의 구상이 실패할 수도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브레머 회장이 이러한 미·중 경쟁 구도에서 지정학적 중요성이 확대된 한국 정부에 대해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선 매우 강하게 양쪽을 압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협상의 카드로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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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한국 오산 공군기지를 방문해 주한미국을 격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6월에 들어설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모순적 대응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는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는 방어적 자세나 낫다. 그러나 핵심 원칙에선 결코 물러나선 안 된다. ‘나중에 협상하면 된다’며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동시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국가와 같이 행동하길 권한다. 역사적 맥락을 알고 있지만, 현재 한국의 입장에선 일본이 가장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만약 양국이 기술과 무역뿐 아니라 안보에서도 미국보다 강한 연대나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면 대미 협상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이밖에 미국을 제외한 G7의 모든 국가도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들은 현재의 한국과 같이 집단 안보가 필요한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북핵 위협에 직면한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이 필요하다.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의 적대국 처지가 된 독일과 폴란드가 프랑스나 영국으로부터 핵우산을 제공받는 방안을 왜 고민하고 있겠는가. 간단하다. 지금까지 미국이 제공해온 집단 안보에 대한 약속을 더 이상 믿을 수 있게 됐다고 판단한다는 의미다. 전 세계가 오랫동안 핵확산 방지에 성공했던 것은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해 줄 거란 신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매우 조심스러운 사안이 되겠지만, 나는 한국이 자체 핵무장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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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정치 리스크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p)의 회장이자 저명한 지정학자 이안 브레머(Ian Bremmer)가 26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 줌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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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브레머는 누구?

이안 브레머(56·Ian Bremmer)는 국제 정치 리스크에 초점을 맞춘 지정학자이자 세계적 정책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p)의 회장이다. 매년 1월 발표하는 유라시아 그룹의 10대 지정학적 리스크는 1년 간의 국제 정세를 예측하는 권위 있는 척도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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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브레머(56ㆍIan Bremmer). 유라시아 그룹 홈페이지

그는 1994년 최연소 후버연구소 교수로 임명됐고, 2007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영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었다. 포럼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관한 글로벌 의제 협의회’ 창립 위원장이기도 하다.

브레머는 월스트리트 최초의 정치 리스크 인덱스(GPRI)를 만들었고, 국제 정치 질서에서 리더가 사라지는 ‘G-Zero’ 개념, 특정 국가의 개방성과 안정성과의 상호관계를 보여주는 ‘J-Curve’ 등의 개념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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