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수·관료 ‘거수기’가 절반…사외이사 15% 불과한 '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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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 임원 출신 김모(60)씨는 3년 전부터 한 국내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그러다 지난해 걸림돌에 부딪혔다. 창업을 하려 했더니, 공정거래법상 사외이사가 창업하려면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사외이사의 창업 기업은 원칙적으로 대기업 계열사로 편입되는데, 이 규제에서 예외를 승인받기가 까다로워 결국 사외이사를 그만뒀다. 가뜩이나 드문 경영인 출신 사외이사의 이사회 진입을 가로막는 규제의 맹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7일 펴낸 ‘사외이사 활동 현황 및 제도 개선과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사 482곳(금융사 제외)의 사외이사 1476명의 직군을 분석한 결과 학계(교수)가 36%로 가장 많았다. 금융·회계 전문가가 18%, 공공부문(관료) 출신이 14%로 뒤를 이었다. 학계·관료 출신이 사외이사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경영인 출신은 15%에 그쳤다.

반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상장사 500곳과 일본 닛케이 상장사 225곳의 경우 경영인 출신 사외이사가 각각 72%, 52%에 달했다. 학계 출신은 각각 8%, 12%에 불과했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미국 빅 테크 사외이사의 상당수가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것과 대비된다.

대기업은 큰 반대 없이 찬성하는 ‘거수기’ 역할을 기대하며 교수 출신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규제의 방패막이를 염두에 두고 국세청·금융감독원·기획재정부·공정거래위원회 등 경제관료 출신도 선호한다.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려면 전문성 있는 경영인 출신 사외이사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상의는 한국에만 있는 공정거래법상 ‘사외이사 선임 후 지배회사 계열편입 규제’를 경영인 출신 사외이사가 드문 원인의 하나로 꼽았다. 상의가 사외이사 160명을 설문한 결과 33.1%가 “(사외이사 재직 중) 개인 회사를 창업할 계획이 있다”고, 이 중 37.7%는 “(공정거래법상 규제로) 사외이사 사임을 검토 중이다”라고 답했다.

사외이사는 사내이사가 아닌 외부 전문가를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하는 제도다. 기업 이사회는 크게 의사결정 기능과 업무감독 기능을 수행한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보다 한국은 사외이사의 전문성보다 독립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외이사를 단순한 감시자를 넘어 전략적 파트너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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