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삶과 추억] 힘의 매력보다 매력의 힘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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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을 중시했던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그는 2021년 한 세미나에서 “한국의 (문화 등) 소프트 파워는 미국뿐 아니라 북한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 전망했다. [중앙포토]
국제정치에서 군사력 등 ‘하드 파워’와 구별되는 ‘소프트 파워(연성 권력)’ 개념을 정립한 미국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지난 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8세. ‘소프트 파워’란 용어는 한 국가가 물리적 힘이 아닌 문화적 매력 등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힘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고안한 용어다. 교육·학문·언어·예술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그는 한국이 활기찬 민주주의 정치, 코로나19 대응, 대중문화 성공 등으로 획득한 소프트파워를 높이 평가했다.
뉴저지에서 태어난 그는 프린스턴대, 영국 옥스퍼드대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64년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됐다. 국제정치학계에 60년간 몸담으며 학계와 현실 정치 양쪽에 모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이는 각국 지도자급 인사들이 거쳐 ‘지도자의 컨베이어 벨트’로 불리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을 약 10년간 지냈다. 주중대사를 지낸 니컬러스 번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수많은 이에게 그는 없어서는 안 될 멘토였다”면서 “그는 모두에게 거인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행정부에서 근무한 건 두 차례에 달한다.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부 안보원조·과학기술 담당 부차관보와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산하 핵무기비확산 소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빌 클린턴 1기 행정부 때는 다시 정부 일을 맡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위원장에 이어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역임했다.
그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에 미군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이른바 ‘나이 이니셔티브’다. 한국 등 미국의 동맹국을 중시한 정책이다.
그는 지난해 2월 미국외교협회(CFR) 대담에서 “억지력을 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우리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중국에 러시아와 북한이 있다면 미국은 유럽과 호주·일본·한국이라는 동맹이 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토니 블링컨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국에 그만큼 기여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고인을 기렸다.
과거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성노예(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담은 고노 담화를 부인하는 것은 “자학적 행위”라고 비판한 적도 있다. 그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심포지엄에서 “고노 담화를 철회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은 (한국·중국 등) 이웃 국가들에 (일본 군국주의가 강했던) 1930년대를 떠오르게 한다”며 “고노 담화를 부인하는 주장은 일본의 발에 총을 쏘는 격”이라고 말했다.
고령에도 왕성히 활동해 온 그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소프트 파워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나이는 최근 FT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뉴욕 부동산 업계에서 쌓은 경력 때문에 권력을 강압과 거래에만 국한하는 단편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일갈했다.
나이는 “진정한 현실주의는 자유주의적 가치나 소프트 파워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서 “트럼프처럼 극단적인 자기애주의자는 진정한 현실주의자가 아니며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향후 4년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짚었다.
도예가인 몰리 하딩과 결혼해 아들 셋과 손주 9명을 두며 63년간 해로했다. 아내는 지난해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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