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카시트 98%가 중국산…워싱턴 엄빠 “관세폭탄 우리가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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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에 위치한 쇼핑센터 ‘타깃(Target)’의 유아용품 코너에 중국산 카시트가 진열돼 있다. 강태화 특파원
“관세를 물린다고 아이를 안 낳나요? 카시트나 기저귀에 부과되는 관세는 미국의 중산층 엄마·아빠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습니다.”
미국 워싱턴DC의 서민 주거지역에서 유아용품점을 운영하는 엘리자베스 밀러(가명)는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물품에 14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조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솔직히 우리 가게에서 파는 유아용품은 미국이든, 유럽 브랜드든 원산지는 모두 중국”이라며 “트럼프 말대로 인형 몇 개를 못 산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유아용 카시트가 없다면 아이들이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을지 누가 장담하겠느냐”고 했다.
밀러의 말처럼 유아용품점을 가득 채운 카시트, 유모차, 보행기를 비롯해 젖병, 고무 젖꼭지, 유아용 장난감 등엔 ‘메이드 인 차이나’ 문구가 찍혀 있었다.
당초 밀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지만, 인터뷰 직전 “남편이 언론에 가게 이름이 나가면 괜한 불이익을 볼 수 있다고 반대했다”며 실명 인터뷰를 고사했다. 그는 연신 “미안하다”면서도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다던 트럼프를 믿었는데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고 했다.
유아용품에 대한 관세 저항이 거센 이유는 압도적인 중국 의존도 때문이다.

한 남성은 인상된 가격표를 보고 “관세폭탄을 우리가 맞은 격”이라며 기자에게 “중고 카시트가 있으면 내게 싸게 팔 수 없느냐”고 물었다. 강태화 특파원
미 아동용품제조업협회(JPMA)에 따르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유아용품의 70%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된다. 특히 만 8세까지 의무로 돼 있는 카시트의 의존도는 98%에 달한다. 유모차는 97%, 유아용 침대 94%, 보행기 93% 등 육아 필수품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제품에 145%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소매 가격은 2배 이상 오르게 된다. 문제는 유아용품의 경우 생산공장을 미국 또는 중국이 아닌 제3국으로 이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알링턴에 위치한 유통업체 ‘타깃(Target)’에서 유아용품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조슈아 톰슨은 “아이들의 건강에 직결되는 유아용품은 제품 출시 전에 반드시 안전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현재 검사 시설 대부분은 중국 공장 인근에 있기 때문에 제조사들도 당장 공장을 중국 밖으로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톰슨은 이어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중국이 미국에 유아용품 공급을 중단할 경우 미국의 모든 부모들은 기저귀나 젖병·젖꼭지도 구할 수도 없고, 카시트 미착용에 따른 범칙금을 매일 내야 할지도 모른다”며 “판매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오늘이 가장 저렴한 때이니 하루라도 빨리 사두라’는 것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군복을 입고 둘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매장을 찾은 터너 잭슨은 “태어나지도 않은 둘째의 유아용품을 사러 나왔는데 중고로 알아봐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며 “한마디로 말하면 이건 ‘미친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날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하원 재무위원회에서 여러차례 유아용품에 관세 적용과 관련한 추궁을 받았다. “세부 사항을 말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해롭다”며 답을 주저했던 그는 야당의 잇따른 압박에 “(유아용품에 대한 관세 면제를)검토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날 중앙일보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기업의 부담을 이유로 여러 차례 관세 적용의 예외를 추가하는 등 약점을 노출해 왔다”며 “특히 서민들의 생계와 직결된 유아용품 문제는 중국과의 협상을 앞둔 시점에 협상력을 떨어뜨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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