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슷한 지지율, 합쳐도 2위" 김·한 이유있는 단일화 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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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 승리를 이끈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민련 후보의 DJP연합. [중앙포토]
“어느 정도 진통은 있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9일 통화에서 한숨을 쉬며 말끝을 흐렸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의 단일화 협상을 두고 한 말이다. 양측의 협상은 왜 이토록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일까.
1987년 이후 대선후보 단일화를 추적한 『후보단일화 게임』에 따르면 단일화 성공에는 ‘네 가지’ 조건이 따라붙는다고 한다. ①지지율을 합쳤을 때 선두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계산 ②후보 간 지지층의 이전 가능성 ③양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작거나 비등한 상황 ④(양측의 격차가 클 경우엔) 사퇴 후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다. ①②③ 또는 ①②④ 조건의 부합도가 높을수록 단일화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성사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의 단일화. [중앙포토]
성공적 단일화로 꼽히는 2002년 대선의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단일화는 ①②③ 조건이 맞아 떨어진 경우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30% 중반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대세론’을 굳혀가는 가운데, 추격하는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20%대 초중반을 맴돌았다. 2002년 11월 24일(MBC·코리아리서치센터) 지지율 조사 결과는 이회창(32.9%)·정몽준(24.4%)·노무현(23.1%) 후보 순이었다. 노·정 후보의 지지율 합은 이 후보를 앞섰고(①), 두 후보의 지지율 차가 작았다(②). 두 후보 사이의 지지층 이전에 대한 확신(③)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노 후보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신계륜 전 의원은 노 후보가 단일화 제의를 결심한 건 “‘이회창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정서가 크다’는 최종 분석 보고서를 받아 들고서였다”고 회고했다. 단일화에서 승리한 노 후보는 대권도 거머쥐었다. 1997년 DJP연합 단일화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후보 사이의 지지율 차가 컸다. 단일화가 이뤄진 건 보상 협상(④)이 체결되면서다. 김종필 후보가 단일화 조건으로 내건 ‘내각제 개헌’ ‘국무총리’ ‘내각의 절반’을 김대중 후보 측이 수용한 것이다.
한편 현재 지지부진한 김문수·한덕수 단일화는 2개의 조건만 충족하고 있다. 환경만 본다면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에 가깝다. 두 후보의 지지율 차가 작고(②), 모두 보수·대구·경북(TK)·반탄(탄핵반대)층에서 지지가 높아서 단일화 시 지지층 이동(③)도 수월한 편이다. 다만, 지지율을 합쳤을 때 선두 후보를 앞서는 조건(①)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8일 공개된 전국지표조사(NBS·5월 1주차)의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 따르면 한덕수 후보(13%)와 김문수(6%) 후보의 지지율을 합쳐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2%)를 넘지 못했다. 다른 조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단일화를 하더라도 이 후보를 넘을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표가 붙으면서 대중적 관심과 흥행에도 한계가 있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김문수-한덕수 단일화의 경우는 지지층이 겹쳐서 각자 파이를 키우기 어렵다”며 “조속한 단일화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해 이재명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좁히지 않으면 점점 어려워진다. 양측의 단일화는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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