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기업 갈 바엔 차라리 내가 창업", 서울대에 스타트업 열기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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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창업의 길 80. 서울대 학생창업

지난 1일 저녁 서울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학생창업 행사 'SNUSV AZIT Bridging Event'에서 스타트업 레브잇의 강재윤 대표가 그간의 경험을 강연으로 풀고 있다. 최준호 기자
대학의 역할, 목적이 뭘까. 대학의 시작은 지식의 수호자 겸 교육의 장이었다. 근대에 들어서 연구가 더해졌다. 지난 세기 대학은 연구ㆍ개발(R&D)을 통한 국가 발전의 엔진 역할을 담당했다. 이제 또 대학의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ㆍ스탠퍼드대 등 미국 대학에서 불기 시작한 ‘창업’ ‘혁신생태계의 허브’ 바람이다. 아직 국내 고등교육법은 대학의 목적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으로 규정짓고 있지만, 캠퍼스 곳곳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투자시장 급랭에도 창업 급증#최소 수백명 예비창업자 활동 #융자 아닌 투자로 환경 바뀌고 #스타트업 인식 긍정적으로 변화
휴일에도 뜨거웠던 창업 교류 현장
일요일인 지난 1일 오후 7시 서울 역삼동 삼정호텔 아도니스홀에 서울대 학생 150명이 모여들었다. 서울대 최대 창업동아리 서울대학생벤처네트워크(SNUSV)가 동문 선배 투자자들과 한자리에 모여 창업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업하기 위한 행사였다. ‘SNUSV AZIT Bridging Event’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애초 100명 규모로 마련했는데, 신청자가 200명 이상 몰려 참석 인원을 조정해야만 했다. SNUSV를 비롯한 서울대의 여러 창업동아리 회원과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참가자의 대부분이었지만, 조민식(59ㆍ경영학과) 한국엔젤투자협회장 등 졸업한 동문 투자자와 창업가들도 함께 했다.
본 행사는 최근 초저가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설립 5년 차 스타트업 레브잇의 강재윤(32ㆍ전기정보공학부 졸업) 대표의 강연으로 시작했다. 그는 ‘두 번의 실수를 통한 교훈’이란 제목으로 그간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풀어냈다. 다음은 SNUSV 소속 5개 창업팀의 ‘3분 피칭’. 인플루언서 마케팅팀 오초크리에이트의 이예은(29ㆍ국어국문학ㆍ벤처경영학) 대표를 시작으로, 조경학과ㆍ경영학과ㆍ물리학과ㆍ수학교육학과 학생들의 짧은 발표가 이어졌다. 이어 재학생과 동문 선배 투자자들의 질문ㆍ코멘트가 쏟아졌다. 행사는 같은 창업 아이디어와 경험을 공유하는 네트워킹 시간 등의 순으로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사회와 진행을 맡은 한서현 SNUSV 대표는 “올해 처음 하는 행사인데, 분위기도 뜨거웠고 너무 성공적”이라며 “창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모이긴 했지만 서울대에 학생 창업의 열기가 이렇게 뜨거울 줄은 우리도 몰랐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서울대에 학생 스타트업 창업 바람이 거세다. 교내 창업지원단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 학생창업으로 법인을 설립한 스타트업은 49개로, 2020년보다 배 이상 늘어났다.〈표〉 창업 아이디어 단계에서 법인 등록까지 이어지는 비율이 평균 15%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교내 학생창업 동아리 등을 중심으로 한 예비창업자들은 최소 수백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점까지 감안하면 이례적 창업 붐이다. 서울대에는 창업 친화적 학사제도가 적지 않다. 2023년부터 창업학점제를 도입, ‘창업현장실습’이란 과목 개설을 통해 재학생이 창업(법인 등록 기준)을 할 경우 최대 9학점까지 인정하고 있다. ‘창업휴학제’도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창업 학생에게 최대 4개 학기의 휴학을 인정해준다. 이외에도 2013년 복수전공의 일환으로 국내 최초 창업 관련 학사과정인 ‘벤처경영학’ 전공을 도입해, 매년 40명을 선발해오고 있다. 올해 경쟁률은 3.7대 1에 달했다.
"대학이 혁신 생태계의 중심축 역할"
모범생들이 많은 서울대에 웬 스타트업 창업 바람일까. 과거 융자 중심이던 창업 자금 조달 환경이 투자 중심으로 바뀌었고, 정부의 지원도 다양해져 회사 설립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면서 창업 생태계 문화가 긍정적으로 바뀐 게 주원인으로 평가된다. 저성장 시대가 계속되면서 취업이 어려워지다 보니 창업이 대안으로 떠오른 측면도 있다.
이준만 서울대 벤처경영기업가센터장은 ”여전히 로스쿨과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최근 들어서는 대기업에 갈 바에야 차라리 스타트업을 선택하겠다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그런 사람을 기발하고 '힙하다'고 여기는 학내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의대생조차 벤처 캐피탈과 접촉할 정도로 창업 붐이 실제로 불고 있다”며 “대학의 역할이 이제는 교육과 연구에 그치지 않고 창업의 산실로서, 혁신 생태계의 중심축 역할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저녁 서울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학생창업 행사 'SNUSV AZIT Bridging Event의 3분 피칭 시간에 한 창업팀이 발표를 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학생창업이지만 수백억 투자유치도
학부생 창업은 기술력이 부족해 아이디어 창업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서울대 학부생 스타트업 중에는 교수나 연구소 창업처럼 연구ㆍ개발(R&D) 기반 딥테크 창업이 적지 않다. 교내에 창업 지원 관련 인프라가 풍부하고, 지도교수 등 선배 연구자ㆍ창업가들과 협업을 통해 기술력과 경영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창업 이후 수백억원 안팎의 투자유치를 한 스타트업들도 출현하고 있다.

서울 봉천동에 있는 스타트업 블루시그넘 사옥에서 윤정현(맨 오른쪽) 대표가 회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블루시그넘=인공지능(AI)을 이용해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 정신 건강에 대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매일의 기록을 통한 감정 추적 애플리케이션(앱) ‘하루콩(DailyBean)’과 인공지능(AI) 기반 스트레스 관리 앱 ‘라임 AI(Lime AI)’가 주력 서비스다. 대화 기능이 핵심인 라임AI는 챗GPT와 제미나이 등 범용 거대언어모델(LLM)을 부분적으로 활용하지만, 상담 관련 전문 데이터를 학습하는 방식의 AI 에이전트 시스템으로 차별화를 할 수 있었다. 창업 이듬해인 2021년 처음 내놓은 하루콩은 누적으로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는데,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호응을 받고 있다. 90%가 미국 등 해외 이용자들이다. 3년 연속 구글플레이 올해의 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출시한 라임AI는 영국과 캐나다의 구글 앱 랭킹에서 1위를, 미국에선 2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앱 연간 이용료를 받는 구독모델인데, 지난해 1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향후 라임AI를 유료로 전환하면 매출이 최소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학부생 스타트업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전문가들도 참여해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투자자들의 반응도 좋다. 최근까지 한국투자파트너스 등으로부터 총 21억원을 투자받았다.
창업자 겸 대표는 올해 28살의 윤정현씨. 용인외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경영학과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윤 대표는 “제 주변뿐 아니라 서울대생의 절반 이상이 학업 스트레스와 외로움 등으로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한다”며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을 이용해 우울증을 진단하고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저녁 서울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학생창업 행사 'SNUSV AZIT Bridging Event.레브잇의 강재윤 대표가 참석자들에게 창업 경험을 강연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레브잇(LEVIT)=초저가 이커머스를 표방하는 플랫폼 ‘올웨이즈’(Alwayz)’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소비자에게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제공하고, 가장 편한 상품 탐색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력이 길지 않지만 올웨이즈 서비스의 총가입자 수는 1000만명에 달한다. 덕분에 최근 시리즈 B 투자까지 총 800억원가량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인 DST 글로벌 파트너스가 레브잇의 시리즈 B 투자 라운드를 주도했고, 국내에선 KB인베스트먼트, 미래에셋캐피탈 등도 참여했다. 창업자 겸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나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를 졸업한 강재윤(32) 씨. 2021년 고교ㆍ대학 동문들과 함께 레브잇을 설립했다.

양승찬 스타스테크 대표ㅣ김경록 기자
◆스타스테크=어부들의 골칫거리인 불가사리로 제설제와 화장품을 만들어 연간 3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스타트업이다. 스타스테크의 대표는 양승찬(30)씨. 경기과학영재고를 거쳐 서울대 화학생명공학부에 입학한 양씨는 군 복무 당시 제설 경험을 바탕으로 제대하던 2017년 회사를 설립했다. 염화칼슘이 주성분인 제설제가 눈을 녹이는 데는 뛰어나지만, 자동차 부식이나 아스팔트 파손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과, 영재고 시절 연구한 불가사리 추출물이 제설제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어촌의 골칫거리인 불가사리를 이용하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제품이 상용화되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국내 지자체와 한국도로공사가 스타스테크의 제설제를 찾았고, 캐나다 도로교통부의 인증을 받아 고속도로에 공식 사용되는 유일한 친환경 고체 제설제가 됐다. 불가사리에서 추출한 콜라겐이 피부에 좋다는 점에 착안해 화장품 사업에도 진출했다. 국내외 뷰티 기업에 공급하고 있을뿐 아니라 자체 브랜드인 ‘라보페’와 ‘리라브’를 만들어 판매도 하고 있다. 2018년 매출 10억 원을 시작으로, 2024년에는 매출 280억 원을 기록하는 등 빠르게 성장 중이다. 최근까지 누적 투자금 250억 원을 확보했고, 내년 상반기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양 대표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창업을 꿈꿨다”며 “스타스테크는 쓰레기로 환경을 지킨다는 비전 아래 글로벌 기후기술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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