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무심코 지나쳤는데 사람 살렸다…경북 학교 '빨간 버튼'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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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경북 구미시 봉곡동 경구중학교에 근무하는 당직 전담사 김두상씨가 지난 5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119 비상벨을 눌렀을 때 당시를 설명하며 119 비상벨을 가리키고 있다. 김정석 기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벨인데…. 119 비상벨이 없었다면 전 아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겁니다.”
16일 경북 구미시 봉곡동 경구중학교 숙직실. 이곳에서 교대하며 근무하는 2명의 당직 전담사 중 한 명인 김두상(69)씨는 숙직실 구석에 설치된 비상벨을 만지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져
그는 지난 5일 어린이날에 벌어진 아찔한 기억을 곱씹는 중이었다. 당시 공휴일이어서 학교에는 김씨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경구중학교에서 당직 전담사로 약 4년간 근무 중인 김씨는 여느 날처럼 학교 안팎 순찰을 마치고 숙직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이날 오후 7시34분쯤 그는 갑자기 가슴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김씨는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 때문에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16일 경북 구미시 봉곡동 경구중학교에 근무하는 당직 전담사 김두상씨가 지난 5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119 비상벨을 눌렀을 때 당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극심한 통증에 정신을 잃어가던 김씨는 문득 약 3년 전 숙직실 구석에 설치한 비상벨이 떠올랐다. 숙직실 바닥을 기어서 이동한 뒤 가까스로 벨을 눌렀다. 곧장 119로 신고가 됐고 비상벨에서 119 상황실 직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김씨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달했다. 이와 함께 학교 시설관리 담당 직원들에게도 비상벨이 작동됐다는 문자메시지가 전송됐다.
119 비상벨 눌러 병원 이송돼
김씨는 빠르게 출동한 구급차에 실려 7분 만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통증의 원인은 심근경색이었고 김씨는 며칠간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는 “2013년 등산을 하고 며칠 뒤 심근경색이 한 번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재발한 것이었다. 평소 술·담배도 하지 않고 운동도 꾸준히 했는데도 심근경색이 갑자기 일어날 수 있다니 정말 놀랐다”고 했다.
대부분 60세 이상 고령자로 구성된 당직 전담사는 심혈관 질환 등의 건강 위협에 특히 취약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보호 장치 마련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경북교육청은 2022년 전국 최초로 경북 지역 모든 교육기관과 공·사립학교에 982대의 119 비상벨을 설치했다.

16일 경북 구미시 봉곡동 경구중학교 숙직실에 설치돼 있는 '119 비상벨' 모습. 김정석 기자
김씨는 “숙직실에 처음 119 비상벨이 설치됐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수상한 사람이 학교에 들어오면 경찰에 신고하는 버튼인 줄 알았다”며 “가족들도 입을 모아 ‘만약 119 비상벨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겠느냐’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전했다.
“전국에 119 비상벨 설치해야”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김씨 사례는 비상벨 설치 사업의 현장 실효성과 정책적 타당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결과”라면서 “단순한 장비 설치를 넘어 교육 현장의 생명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한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될 만하다”고 평가했다.
119 비상벨로 당직 전담사의 목숨을 구한 실제 사례가 나오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북 구미시 경구중학교 내 숙직실 모습. 김정석 기자
김씨는 “119 비상벨을 설치할 때만 해도 설마 내가 저 벨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며 “작은 벨 하나로 사람 목숨을 살릴 수 있는 119 비상벨이 경북뿐 아니라 전국 교육기관에 설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종식 경북교육감은 “작은 장치 하나가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이 매우 뭉클하다”며 “앞으로도 경북교육청은 교육 현장에서 근무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위기 대응 체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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