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프랑스 최고훈장 받은 첫 한국 여성…그 뒤엔 스승같은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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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이사장(오른쪽 두 번째)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수훈식에서 필립 베르투 프랑스대사로부터 훈장을 받은 직후 미소 짓고 있다. 김종호 기자

"시집은 안 가고 불란서 유학이라니, 안 될 말이다."  

1978년 7월, 당시 만 22세였던 한 여성이 김포공항 출국장에 서서 어머니의 이 말을 곱씹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된 그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비행기표를 샀다. 그리곤 한국인 최초 프랑스어 동시통역사가 됐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이사장 겸 한불클럽 사무총장의 이야기다. 지난 15일, 그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Légion d'Honneur) 오피시에(officier)급 훈장을 받았다. 한국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다.

그는 이날 주한프랑스대사관저에서 열린 수훈식에서 소감을 말하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19일 중앙일보에 "부모님 생각이 나서 목이 메었다"며 말했다. 애지중지 키운 딸을 한국에 두고 싶었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해줍시다. 프랑스 카페의 갸르송(웨이터)과 결혼하면 또 어떻소. 아이가 행복하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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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이사장이 15일 수훈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종호 기자

부모님의 예언은 대개 맞았다. 최 이사장은 39세가 되던 해, 주한프랑스대사관저 업무만찬에서 만난 동갑내기 프랑스 남자, 디디에 벨투와즈 당시 인터컨티넨탈 호텔 총지배인과 열애 끝에 면사포를 썼다. 부부가 처음 만났던 그 관저에서, 필립 베르투 주한 프랑스대사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대신해 최 이사장에게 훈장을 달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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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베르투 주한 프랑스 대사가 15일 주한프랑스 대사관저에서 레종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의 의미를 중앙일보에 설명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베르투 대사는 수훈식 직후 중앙일보와 만나 "오피시에 급 레종 도뇌르 훈장은 프랑스 정부가 각별히 인정하는 인물에게만 수여되는 영예"라며 "통역사와 교육자로서뿐 아니라 문화외교에서도 양국 관계 지평을 넓혔다는 점이 인정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요지.

수훈식에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는데.
"부모님을 포함해 감사한 모든 분들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다. 어머니가 (유학) 비행기표를 찢어버리려고도 하셨지만 결국 부모님과 가족, 남편, 친구들의 지원 덕에 오늘날의 내가 있다. 박수도 손바닥이 만나야 칠 수 있듯, 제가 혼자 아무리 열정을 불태운들, 옆에서 호응을 해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멀리 부산과 대전에서부터 수훈식에 와준 분들께도 진심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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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만든 레종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지난 15일 수여된 실물이다. 김종호 기자

훈장이 본인에게 갖는 의미는.  
"늘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잇는 보이지 않는 가교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해왔고, 가족과 친구들 덕에 여기까지 왔다. 이 훈장을 받은 건 영예로운 일이자 큰 격려다. 계속 더욱 돈독하고 역동적인 한불관계를 위해 노력할 작정이다."  
올해가 결혼 30주년이라고 하던데.  
"CICI 초기에 예산을 아끼려고 현수막을 재사용했는데, 꾸깃꾸깃해진 걸 보더니 디디에가 어디에서인지 다리미를 갖고 와서 직접 다려주더라. '너가 원하는 걸 해서 너가 기쁘면 그게 나의 행복'이라고 말해주는 디디에는 나에게 남편이자 스승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 그리고 헌신에 배울 점이 어찌나 많은지. 이 훈장도 디디에와 함께 받은 것이다."  

베르투 대사도 수훈식에서 남편 디디에 벨투와즈를 각별히 언급했다. 베르투 대사는 "프랑스엔 '성공한 남자가 있다면 그 부인을 보라'는 말이 있는데, 최 이사장의 경우는 '성공한 여자가 있다면 그 남편을 보라'는 말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베르투 대사는 중앙일보에 "둘의 인연을 맺어준 이 관저에서 수훈식을 하게 되어 의미가 크다"며 "아마도 당시 대사가 프랑스인 특유의 촉(the French flair)을 발휘한 게 아닌가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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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CICI 이사장과 남편 디디에 벨투와즈. 2016년 사진이다 전호성 객원기자

레종 도뇌르 훈장은 국적 불문 프랑스의 정치ㆍ경제ㆍ문화ㆍ예술ㆍ종교 등 각 분야에서 프랑스 정부가 인정하는 공로를 세운 이에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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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이사장의 수훈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참석자들 일부.김종호 기자

15일 수훈식엔 류진 풍산그룹 회장 겸 한국경제인협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연합회 회장 겸 CJ그룹 회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이광형 KAIST 총장 등 국내 오피니언 리더는 물론,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 주한유럽연합(EU)대사 등 주요 외교인사들이 70여 명 넘게 대거 참석해 축하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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