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관세 탓 말라" 월마트 질타에 트럼프 눈치보는 美 유통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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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앤디 재시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월 26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아마존 디바이스 신상품 출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현 시점에서 어떤 수요 감소도 보이지 않는다. 제품 평균 가격의 유의미한 상승도 없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앤디 재시 최고경영자(CEO)는 21일(현지시간) 연례 주주총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영향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수입품 가격 상승과 이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미국의 대표 온라인 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른 얘기를 한 셈이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 타깃은 이날 1분기 실적 발표를 하면서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8% 감소했고 올해 매출은 ‘낮은 한 자릿수대 감소’가 전망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관세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여러 수단이 있다. 가격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다.
NYT “얘기 잘못하면 백악관 화내”
미국 내 대표적인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차별 관세정책으로 인한 매출 실적 하락에 신음하고 있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이처럼 각별히 입조심을 하는 모습이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각 기업 경영진이 관세 때문에 가격이 올랐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해 분기별 실적 발표 등의 자리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발언하고 있다”며 “잘못 말하면 백악관이 화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특히 미 유통업체 월마트가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 ‘찍힌’ 사례가 반면교사가 됐다. 월마트 CEO 더그 맥밀런은 지난 15일 실적 발표회에서 “월마트가 관세로 인한 모든 압력을 흡수할 수는 없다”고 했고, 최고재무책임자(CFO) 존 데이비드 레이니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월마트 제품의 3분의 1이 해외에서 수입된다며 고율 관세로 인해 이달 말부터 가격 인상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 내 4000개 이상의 체인점을 갖추고 매주 수백만 명의 고객이 찾는 월마트는 미국 소비 물가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곳이다. 월마트의 가격 인상이 타깃, 로스, 홈디포 등 다른 유통업체 매장으로 도미노처럼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졌다.
트럼프에 혼쭐난 월마트 사례 ‘반면교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는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월마트를 겨냥해 “가격 인상 이유로 관세 탓을 하는 것을 멈추라”며 “내가 지켜볼 것이고 고객들도 지켜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블룸버그통신은 “(월마트가) 관세로 인한 매장 가격 인상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트럼프의 분노를 산 것”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는 월마트에서만이 아니었다. 아마존 경영진은 당초 이달 초 일부 상품 가격에 관세로 추가되는 금액을 따로 표시하는 방안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에게 직접 전화해 불만을 쏟아내자 돌연 백지화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미국의 대표적인 완구 유통업체 마텔의 CEO 이논 크라이츠는 이달 초 실적 발표회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초고율 관세로 장난감 가격을 145%까지 인상할 것이라고 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격분을 샀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텔 제품에 관세 100%를 부과하겠다. 미국에서 장난감 한 개도 팔지 못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다. 크라이츠를 향해서는 “그를 너무 오랫동안 경영진으로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플레전튼에 있는 월마트 매장으로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관세” 대신 “경제 불확실성” 돌려 말해
유통 기업들이 관세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일이 금기시되면서 기업 경영진은 관세 영향을 최대한 에둘러서 표현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NYT는 “상황을 이렇게 만든 트럼프 행정부 정책을 직접 거론하는 대신 ‘(경기) 유동성’이나 ‘불확실한 경제 환경’ 등으로 돌려 말하는 식”이라고 했다. 데니스 달호프 ‘컨퍼런스보드’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연구책임자는 “‘관세’라는 단어 자체도 언급을 피하고 ‘투입 비용’ 내지 ‘공급망 비용’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덜 자극적”이라고 NYT에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심기’를 의식해 관세 얘기를 회피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스테판 마이어 경영학과장은 “기업 CEO는 관세가 사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직접 설명할 책임이 있다”며 “특히 중국에서 상당한 양의 상품을 수입하는 소매업체는 관세에 취약한 만큼 이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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