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새장 벗어나 '엑시트' 가능하게....한국 사회 불평등 출구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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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엑시트
이철승 지음
문학과지성사
직장인 치고 ‘나 이거 그만두면 다음에 뭐 하고 살지?’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탈출을 꿈꾸지만 막상 엑시트(exit)를 실행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정한 사회적 관계나 집단, 조직을 탈출하고자 할 때 이를 좌절시키거나 단념시키는 ‘심리적-제도적-환경적’ 장벽을 소셜 케이지(social cage)라고 한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작 『오픈 엑시트』를 통해 인공지능시대 도래, 저출생고령화, 이주노동자 급증 등 급격한 구조적 변동과 기존의 소셜 케이지가 충돌하는 와중에 새로이 생성되는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 대안으로서 엑시트 옵션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설 명절 연휴 직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시민들이 활기찬 발걸음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이 교수는 전작 『불평등의 세대』에서 386세대가 구축한 세대 네트워크를 분석하면서 세대 간 불평등의 구조를 고발했고, 『쌀 재난 국가』에서는 그런 불평등 구조의 기원을 동아시아의 쌀 경작 문화권에서 발달한 벼농사 체제라는 시각을 통해 추적한 바 있다. 이번에 『오픈 엑시트』 출간으로 이 교수의 불평등 3부작이 완성된 셈이다.
어떻게 하면 개인들이 불평등의 틀을 쉽게 깨고 나와 엑시트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정책이 전체 인구의 엑시트 옵션을, 특히 중하층의 엑시트 옵션을 확대할 수 있을까. 자본과 노동, 남성과 여성,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명문대와 비명문대, 영남과 호남으로 나뉘어 제로섬게임을 하고 있는 이 아귀다툼을 어떻게 자유인들의 잠정적 협업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지은이의 주된 고민이었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이렇게 머리끄덩이를 움켜쥐고 오도 가도 못 하게 서로의 발목을 잡으며 밀어내기 싸움에 목매는 이유는 바로 구조적으로, 엑시트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적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달초 연휴 마지막 날인 6일 서울 잠원IC 인근 경부고속도로에서 차량들이 서행하는 모습. 뉴스1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기업들은 집단주의적이고 위계적인 협업시스템으로 연대와 상호협력을 통해 단기간에 성장을 이룩했지만 한편으로는 외부 노동시장과 절연된 채 내부 노동시장에서 내부자들끼리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벌이는 토너먼트와 유사한 게임 경쟁을 벌여왔다. 이 소셜 케이지에 한번 들어서면 조직 안에서는 장기간 고용이 보장되지만 더 높은 자리와 보상이 주어지는 권력과 부를 향해 구성원 전체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적응하고 키워왔던 이런 소셜 케이지 시스템은 그동안 그럭저럭 버텨올 수 있었지만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동으로 이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 소셜 케이지의 작동은 더욱 삐걱거리며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지은이는 예측한다.
엑시트는 발전한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해법일 수도 있다. 엑시트 옵션이 증대될수록 노동시장에서 선택지가 늘어나고, 일자리 간 이동순환이 증가할수록 이탈하고자 하는 직원을 붙잡으려는 자본의 노력 또한 증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의 소셜 케이지를 바꾸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강제되는 협업 시스템의 업무 프로세스를 민주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부 노동시장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부 노동시장과 인사 교류가 가능하도록 열린 네트워크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은이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사진 문학과지성사]
국가 또는 정치가 해야 할 일도 많다. 노동의 이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적 절차를 간소화하고 소셜 케이지의 각종 제도적 문화적 장벽들을 낮춰야 한다. 직업이나 직장의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적 실업의 비용을 사회보험 형태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엑시트 옵션을 극대화하려면 자발적 퇴사에 대한 안전망 또한 마련해야 한다. 안식·육아 휴직제의 사회보험화도 필수다.
한국엔 다시 정치의 계절이 찾아왔다. 이런 대선 국면에서 소셜 케이지나 엑시트 옵션 같은 중요한 이슈가 제대로 다뤄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극단적인 정치적 대결 앞에서는 표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진지한 정책은 늘 실종되기 때문이다.
대선 후에라도 대통령을 배출한 당이건 선거에 패배한 당이건 이 책을 참고로 엑시트 옵션을 진지하게 논의하기를 추천한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당연히 기업이나 민간에서도 이 문제는 시급히 그리고 깊이 있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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