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무역전쟁 제약받으니 자본전쟁?…트럼프발 ‘복수세’에 떨고 있는 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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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발 무역전쟁에 대한 공포감이 자본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외국 투자자를 겨냥한 이른바 ‘복수세(Revenge tax)’ 추진 논란이다.

1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ㆍ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최근 하원을 통과한 세법 개정안의 899조에 ‘복수세’가 포함됐다. 이 조항은 미국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하는 국가나 기업, 개인에게 최대 20%의 추가 세금을 물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배당금·이자 같은 소극적 투자 소득뿐 아니라, 미국에 사업장을 둔 외국 기업이 자국으로 송금하는 수익 등에 부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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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무역전쟁과 자본전쟁을 이미지화. 챗GPT 생성

지난달 말 미 하원을 통과한 ‘2025년도 예산조정법안’은 1000쪽에 달한다. 경제잡지 포춘은 “월가가 해당 법안을 계속 검토하면서 드러난 한 부분(899조)이 특히 심각한 불안감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부과 대상국으로는 미국 기업에 디지털세를 물리고 있는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영국 등이 우선 거론된다. 한국 역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구글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이 한국의 디지털 규제가 과도하다는 주장을 펴왔기 때문이다. 또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정에 따라 매출이 큰 다국적 기업에 최소 15% 이상의 법인세(글로벌 최저한세)를 물리는 국가도 영향권에 있는데, 한국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법안은 상원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이 문턱까지 넘는다면 전 세계에 미칠 파급력은 무역 전쟁만큼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WSJ은 “시장을 뒤엎고 미국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했고, JP모건은 “미국과 외국 기업 모두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지 사라벨로스 도이체방크 외환 전략 총괄은 “미 법원 판결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이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세금 부과는 새로운 지렛대가 될 수 있다”며 “미국 행정부가 무역 전쟁을 자본 전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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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뉴욕 증권 거래소 전경. AP=연합뉴스

이 조항은 관세전쟁처럼 미국 경제를 역풍을 가져올 가능성도 크다.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를 대표하는 투자회사협회(ICI)는 “미국 자본시장의 핵심 성장 동력이며, 궁극적으로 미국 가정에 혜택을 주는 외국인 투자를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내 외국계 기업을 대표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연합의 조너선 샘포드 대표도 “이 조항이 미국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기업에 불이익을 준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투자 유치 정책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강조했다.

무역 전쟁 과정에서 미국이 ‘약달러’를 위해 환율 협상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보복세’ 역시 이를 뒷받침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진단도 있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들은 “(미 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지 않는다며 달러에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달러화에 직접 영향을 미칠 미 국채가 과세 대상에 포함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FT는 전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달러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이 외국 자본이 미국 시장에 너무 많이 투자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세금을 물려 미국에 대한 접근성에 제약을 건다면 미국 시장에는 큰 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 미 의회 합동조세위원회(JCT)는 이 조항이 도입되면 향후 10년간 1160억 달러(약 160조원)의 세금을 거둬들일 걸로 예상되지만, 2033년부터 오히려 관련 세수가 감소 것이라고 짚었다. 복수세를 지지하는 하원 세무위원회제이슨 스미스 위원장(공화당)조차 “복수세가 결코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며, 다른 국가들이 미국 기업에 부당하게 단속하는 것을 막는 억제력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보복세가 현실이 된다면 미국의 주식·채권 등에 투자하고 있는 서학개미의 투자도 위축될 걸로 보인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유럽과 영국 등 선진국 자본이 보복에 노출된다면 (유럽 자본의 이탈에 따른) 미국 내 자본 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한국 서학개미도 심리적으로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경민 대신증권 FICC리서치부장은 “당장은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유럽을 타깃으로 한 걸로 보인다”며 “미 재무장관이 대상을 정하기 때문에 한국을 지정할 가능성은 작고, 한국의 서학개미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걸로 보인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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