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李, 강제징용 문제에 “정책 일관성 중요”…尹 3자변제 유지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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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한·일관계와 관련해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징용 피해 배상 방안인 '3자 변제 해법'을 흔들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무성의한 태도에 문제의식을 표해 왔지만, 취임 뒤엔 "협력할 건 협력하고 정리할 건 정리하자"며 안정감에 방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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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등 인선발표를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통령은 4일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첫 인선을 발표한 뒤 '징용공 문제에 대해 지난 정부의 해결 방안을 그대로 진행할 수 있느냐'는 일본 마이니치 신문 기자의 질문에 "국가 간 관계는 정책의 일관성이 특히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국가 간 신뢰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국가 정책에 있어 개인적 신념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관철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개인적인 생각과 별개로 대통령으로서 국가 간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에는 정책 연속성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2023년 3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3자 변제 해법은 강제징용 소송에서 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피고인 일본 전범 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재원은 한·일 민간의 자발적 기여로 마련하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비롯해 일본 기업의 참여는 전무하다.

일본 측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2018년 10월, 11월 두 차례의 대법원 판결로 승소한 피해자 15명 중 고(故) 박해옥 할머니를 제외한 14명이 지금까지 3자 변제 해법을 대승적으로 수용했다. 이어 2023년 12월과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총 52명의 피해자가 추가로 승소 판결을 받았는데, 해법을 수용한 이들에 대해선 지급 절차가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이날 답변 과정에서 "강제 징용 문제, 여기에는 위안부 문제 같은 것도 같이 포함될 수 있겠다"며 질문에선 등장하지 않은 위안부 문제까지 포괄해서 설명했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까지 큰 틀에서 존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재검토를 벌인 뒤 "중대한 흠결이 있다"고 밝혔지만, 합의를 무효화하진 않았다. 이어 문 대통령이 직접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 간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며 유지 입장을 확인했다.(2021년 1월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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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21대 대통령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통령은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해선 "안타깝게도 과거사 문제, 독도 영토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으나, 일본과 한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상인의 현실감각, 서생의 문제의식' 두 가지를 다 갖춰야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했는데, 어쩌면 한·일 관계도 그런 실용적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이와 별개로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구하는 '투트랙 접근'을 대일 외교 원칙으로 제시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또 "기본적으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가능하면 현안들을 뒤섞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강조했는데,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또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거론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수상 간 한·일 관계에 관한 아주 바람직한 합의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가급적 그런 국가 간 합의도 지켜지면 좋겠다"며 "국가 간 관계도 개인적 관계와 다를 바 없이 진지하게 본심으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협력할 건 협력하고, 경쟁할 건 경쟁하는 합리적 관계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시 선언은 일본이 진심으로 식민 지배 등을 사죄하고, 한국은 이를 받아들이고 미래지향적 협력을 꾀하기로 한 게 핵심이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한·일 협력의 중요성과 대일 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한 건 올해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아 관계 개선의 전기가 필요한 시점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로 평가된다. 앞서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를 두고 “일본의 역사 세탁에 앞장서 퍼주기만 한다”(지난해 8월 페이스북)며 강하게 비판, 일각에선 외교 노선 변화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날 발언으로 이런 우려도 상당 부분 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의 질문에 이처럼 전향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 역시 일본 측을 배려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날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사령탑에 임명된 위성락 신임 국가안보실장도 지난달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에서 3자 변제 해법과 관련해 "이미 진행된 것을 크게 바꾸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며 "그동안의 틀이 계속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엔 한·일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게 한·미·일 협력과 한·미 동맹 강화라는 선순환의 고리에서 핵심이라는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취임 선서 뒤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도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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