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건강권은 학생 권리" 5개월 외쳤다, 지자체 조례 만든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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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아동 건강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동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굿네이버스

"체육 시간은 점점 줄어만 갑니다. 하교 이후 운동하려고 해도, 학원 스케줄 때문에 시간 내기도 어려워요. 운동 시설 기구들마저 어른 몸에만 맞춰져 있어요."

대구 지역 초등 5학년인 이준후 군의 호소다. 이 군의 말대로 한국 사회의 미래인 아동 건강엔 '빨간불'이 켜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9~17세 비만율은 11.6%로 5년 전(2018년·3.4%)보다 3배 넘게 뛰었다.

같은 기간 학기 중 수면 시간은 8.29시간에서 7.93시간으로 줄었고, 주중 앉아있는 시간은 524분에서 636분으로 증가했다. 우울증·불안장애 진료를 받는 아동도 늘고 있다. 입시·경쟁 위주의 분위기 속에 기본 권리인 '건강권'조차 흔들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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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아동들이 서울 강서구의회에서 '아동ㆍ청소년 건강증진 지원 조례' 제정 관련 간담회에 참여한 모습. 사진 굿네이버스

불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아동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서울 강서구가 글로벌 아동권리 NGO(비정부기구) 굿네이버스의 아동권리모니터링단인 '굿모션' 제안을 바탕으로 '아동·청소년 건강증진 지원 조례'를 제정한 게 대표적이다. "건강이 일상과 가장 밀접한 중요한 권리"라는 아동들의 목소리가 5개월간 쌓여 지자체를 움직인 것이다.

이 조례는 구 차원에서 아동·청소년의 건강을 지킬 종합계획과 위원회를 세우도록 하고, 위해 식품 섭취 예방·신체활동 증진 등 각종 사업을 추진할 근거도 마련했다. 제정 과정에 참여한 한 학생은 "우리 의견이 실제 조례로 만들어진 게 놀랍다"며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밝혔다.

이들의 외침은 입법 기관인 국회로도 향했다. 지난해 청소년 4명은 건강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성장·발달 단계에 있는 아동의 건강권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직접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나섰던 이승준(16) 군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동 건강 문제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면서 "우리 사회는 아동의 체중·운동량 같은 눈에 보이는 수치만 볼 뿐, 스트레스·휴식 같은 문제는 쉽게 놓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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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체육수업을 받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어른들의 제도를 바꾸는 것만큼 중요한 게 아동 자신의 건강권 실천이다. 굿네이버스는 이달부터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함께 '지금, 움직여봐!' 캠페인에 나섰다. 아동들이 일상 속 작은 실천으로 건강권을 챙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내 생활 습관이 어떤지 확인하고, 걷기 같은 건강 수칙을 실천하는 '챌린지'에 참여하는 식이다. 틈날 때마다 운동한다는 이승준 군은 "또래 친구들이 현재 겪는 스트레스나 불안, 피로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나 자신을 돌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규하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은 "건강은 아이들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사회의 건강한 미래와도 직결된다. 아동 스스로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해 주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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