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자연의 산물은 인간에게 '선물'....소유과 경제를 다르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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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다산초당
현대인의 삶은 끊임없이 일하고 소비하며 소유하는 일의 반복이다.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가진 게 많아져도, 바닷물을 마신 듯 목이 여전히 마르다는 점이다. 치열한 경쟁이 끝나면 더 큰 불안이 몰려온다.
끝없이 바위를 끌어올리고 미끌어지기를 반복하는 시지프스적인 삶에서 탈출해 보람과 감동, 공생으로 가득찬 세상을 만들 방법은 없을까. 미국 뉴욕주립대 환경생물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인간의 오랜 스승인 자연에 지혜를 구한다. 그가 자신의 뿌리인 아메리카대륙 선주민의 자연에 대한 전통적 지식과 접근법을 바탕으로 내놓은 해법은 ‘서비스베리적인 삶’이다.
서비스베리는 열매·약효와 함께 계절 변화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진 식물. 봄에 핀 꽃이 숲의 가장자리를 장식하면 겨우내 언땅이 녹았다는 기별이다. 어부들에게는 청어과 어류인 새드가 상류로 올라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냉동창고에 쌓인, 표준화된 맛의 사계절 판매식품이 아니라 풍미를 제대로 갖춘 제철식품을 먹을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낸다.
지은이의 뿌리언어를 살피면 ‘서비스베리적인 삶’의 의미가 더욱 명확하게 보인다. 오대호 서쪽에서 사용되다 지금은 사라져가는 포타와토미어에선 식물 이름 상당수에 ‘민’이라는 어근이 발견된다. 오데민(딸기), 미시민(사과), 만다민(옥수수), 미난(블루베리), 므스카디스(라즈베리), 그리고 보자크민(서비스베리) 등이다. ‘민’은 ‘베리’와 ‘선물’을 동시에 의미한다. 선주민 언어학자는 이를 “식물이 인간에게 베푸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표시”라고 표현한다.
지은이의 주장은 이처럼 땅과 흙, 숲을 비롯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먹을 것과 물, 공간을 ‘선물’로 생각해 공유하면서 감사하자는 삶을 살자는 얘기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대학의 천연자원학과를 ‘대지의 선물학과’로 바꾸자는 제안도 한다.
자연의 산물이 인간에 대한 선물이라면 지금까지 현대인의 소유와 분배 관계는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사용해 얻는 모든 번영은 상호적이라고 지적하며, 서로 나누고 베푸는 재분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이유도, 필요도, 의미도 없다며 미국식 ‘멱따는 자본주의’ 대신 북유럽식 ‘보듬는 경제’가 더 인간적이라고 평가한다.
지은이는 모든 생명의 기반은 경쟁이 아니라 공생이라고 강조하며 자연친화적 경제를 강조한다. 국내총생산(GDP)이 상품의 생산과 교환만 계산할 뿐 무한가치가 있는 대지‧공기‧편안함은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숫자‧소유‧소비가 아니라 ‘서비스베리적인’ 공생의 삶을 강조한다. 특히 자연의 바탕인 땅은 국가개입이나 시장경제 없이도 스스로 버틴다며 자연친화적이고 공생적인 삶의 방식, 그리고 인간관계의 회복을 제안한다. 자연은 풍요로웠으며, 오랜 세월 지속가능했다는 지은이의 말이 머리를 울린다.
번역자는 서비스베리를 비롯한 식물과 자연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님’자를 붙였다. 자연이 준 선물을 존중하는 의미일 것이다. 원제 The Serviceberry: Abundance and Reciprocity in the Natur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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