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30이 이끌고 4050이 뒤따랐다…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최다 관객몰이 '론 뮤익…
-
4회 연결
본문

56일 만에 30만 관객을 넘어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론 뮤익' 전시장의 관람객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론 뮤익’ 전시가 개막 56일 만에 관객 수 30만 명을 돌파하며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단일 전시로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다. 지난해 서울관에서 4개월 남짓 열리며 25만 관객을 불러 모은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를 능가했다.
두 달도 안 돼 30만 관객 돌파, 7월 13일까지 전시
지난 4월 11일 개막한 이 전시는 호주 출신 조각가 론 뮤익(67)의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으로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공동 주최했다. 개막 후 20일 만에 10만 명, 한 달 만에 21만명, 56일 만에 30만명으로 관람객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하루 평균 5500명이 몰리는데,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일평균 관람객 최다 전시인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 ‘한국 근현대 자수’의 1800명에 비해서도 압도적이다.
미술관 관계자는 “전시 초반엔 10일간 5만 관객, 한 달 뒤엔 일주일에 5만명이 왔다. ‘이제 좀 줄어들겠구나’ 생각했는데, 20만을 넘기자 새로운 관객이 오더라”며 “이런 추세라면 오는 7월 13일 폐막까지 40만 넘어 50만 관객도 기대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입장료나 기간이 달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긴 어렵지만 최근 관객몰이 전시로는 50만명을 모은 ‘불멸의 화가, 반 고흐’(2024.11.29~2025.3.16, 예술의전당), 36만명이 관람한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2023.6.2~10.9, 국립중앙박물관), 33만명을 기록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2023.4.20~8.20,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론 뮤익’에 왜 이렇게 사람들이 몰릴까.

'론 뮤익' 전시를 보기 위해 로비에 대기중인 관람객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실제보다 작은 크기로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나뭇가지를 든 여인'(2009).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2030 견인하고 4050 뒤따랐다.
미술관에 사람이 많은 게 인상 깊었다. 젊은 관객들로 활기찬 분위기가 서울의 활기를 닮았더라.
지난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찾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의 체이스 로빈슨 관장의 소감이다. 미술관 집계에 따르면 ‘론 뮤익’ 관람객은 2,30대가 72%로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20대가 43.8%다. 4,50대중장년층 관람객 또한 20%를 넘겨 최근 2년간 서울관에서 열린 전시 가운데 중장년층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미술관 측은 “젊은 관객은 물론, 비교적 미술 전시에 대한 관심이 덜한 중장년층까지 관람 열기가 확산, 전 세대를 아우르며 일평균 관람객이 줄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각은 공간 예술이기에 빙 돌아서 360도 전체를 보길 권한다. '젊은 연인'(2013)이 특히 그렇다. 앞에서 보면 사랑을 속삭이는 10대 같지만, 뒤에서는 밀어내는 듯한 소녀의 손목을 억지로 잡아끄는 소년의 손이 보인다. 연합뉴스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인체 조각
모공과 솜털까지 그대로 재현한 론 뮤익의 조각은 인체라는 가장 친숙한 소재로 ‘현대 미술은 어렵다’는 진입 장벽을 허문다. 그러나 론 뮤익은 사람처럼 만드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건 삶의 깊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홍이지 학예사는 “사람과 비슷하되 똑같이 만들지는 않는다. 작가는 단 한 번도 인체 사이즈를 그대로 재현해 만든 적이 없다. 평생 만든 48점 모두 실제보다 크거나 작다”며 “이번 전시에서도 ‘극사실주의는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고 설명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외형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며 시대의 자화상을 마주하게 한다.
론 뮤익 스튜디오, 까르띠에 재단과 여러 달 동안 전시장의 동선을 고민했다는 홍 학예사는 “눈을 감고 있는 작가의 자화상으로 시작해 ‘나뭇가지 든 여인’과 눈을 마주치고 돌아 ‘침대에서’의 인물, 또 ‘치킨/맨’의 노인ㆍ닭과 차례로 눈을 마주치고, 어떻게든 시선을 회피하는 10대들을 지나 어디에 눈을 맞춰야 할지 모를 공허한 표정의 ‘쇼핑하는 여인’을 보게 된다"며 "마지막으로 ‘매스’를 보며 관객들은 여기가 지하였음을 인지한다”고 설명했다.

높이 1m 이상의 두개골 형상 100점을 층고 14m 지하 전시실에 쌓아 올린 '매스'. 권근영 기자
블록버스터 전시로는 값싼 입장료
‘론 뮤익’ 전시의 입장료는 성인 5000원. 전시 규모에 비해 싼 편이다. 만 24세 이하, 그리고 대학생까지는 무료다. 젊은이들이 이 전시에 몰려드는 이유 중 하나다. 앞서 반 고흐 전시 입장료는 2만원이 넘었고, 내년 일본 모리미술관에서 열리는 ‘론 뮤익’ 전시 입장료도 2만원 내외로 책정됐다. 인스타그램에는 거대한 작가의 자화상이나 침대에 누운 여인을 배경으로 찍은 관람객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전시 개막 후 국립현대미술관에 새로 회원 가입한 사람도 10만명이 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4배 급증했다.

'치킨/맨'을 제작중인 론 뮤익. '은둔의 조각가'를 25년 넘게 촬영한 고티에 드블롱드의 13분 짜리 다큐멘터리 속 장면이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대표조각 10점과 고티에 드블롱드가 촬영한 론 뮤익의 작업실 사진 연작, 작품을 제작 중인 작가를 담은 다큐멘터리 두 편으로 이뤄졌다. 전시장 마지막에서 오랜 시간 홀로 집중해 인체 조각을 다듬는 은둔의 조각가 모습을 숙연하게 바라보는 관객이 많다. 폭넓게 사랑받는 전시가 되면서 애초 의도했던 "고요한 명상을 불러일으키는 침묵의 전시"라 하기는 어렵게 됐다. 홍 학예사는 “오전 10~12시 사이에 사람이 적고, 수ㆍ토요일 야간개장 때도 괜찮다. 밤에 보는 미술관이 특별해 보이기도 하고 대표작 ‘매스’를 어두운 밤의 공간에서 보는 것도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소핑하는 여인'(2013) 앞의 관람객들. 영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는 이곳 수퍼마켓 체인인 세인즈베리의 오랜지색 비닐백을 실제보다 작은 크기로 매 전시 때마다 만들어 보낸다. 한쪽에는 파스타와 소스 등 가족의 식량, 다른 쪽에는 기저귀와 베이비 파우더, 이유식 등 아기를 위한 것들이 들어 있다. 단 하나도 이 여성 자신을 위한 건 없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