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혼자이고 싶지만 외롭고 싶진 않다? 당신만 그런 것 아니다"
-
2회 연결
본문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했거나, 낳지 못했던 여성이 외로움이라는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신간 『외로움의 책』(책사람집) 다이앤 엔스가 중앙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외롭고 싶지는 않다는 건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소속감 역시 필수"라며 "두 가지 모두를 추구하며 그 사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행복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여성 철학자인 엔스는 외로움과 관계에 대해 천착해왔다. 그가 이 책에서 "외로움에 관해 얘기하는 건 암에 걸린 사실을 털어놓는 것과도 비슷하다"거나 "나는 깨달았다. 그들은 내가 혼자 외롭기를 바란다는 것을"이라고 쓴 것은 외로움에의 고찰의 여정이 외로웠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모두가 외로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누군가에게) 목격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책의 끝을 맺는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선 나뿐 아니라 남 역시 필요함을 풀어낸 문장이다.

외로움과 사랑에 천착해온 철학자, 다이앤 엔스. 출판사 책사람집 제공
예술과 문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외로움과 사랑 등 인간의 본성을 고찰해온 그의 다양하고도 통섭적 연구는 미국 컬럼비아대 출판사 등에서 출간됐다. 300쪽이 넘는 이 책중 30쪽이 주석이다. 그는 질문지를 받은 뒤 "한국 독자들에게 의미있는 답을 하기 위해선 한국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한 뒤 답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그렇게 공들인 그와의 일문일답 요지.
- 책 원제가 "외로움을 고찰하다(Thinking Through Loneliness)"인데.
- "제목을 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혼자임(aloneness) 또는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는 각기 다른 개념이다. 모두가 혼자이고는 싶은데 외롭고 싶지는 않다. '외로움의 해석' 등 제목을 생각하다가, 외로움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고찰하게 됐고, 그 제목에 도달했다."
- 한국의 인기 웹툰 제목은 '타인은 지옥이다'인데.
- "그만큼 타인과의 관계는 힘들다. 하지만 동전의 한 면만을 보면 안 된다. 물론 타인은 지옥일 수 있지만 그 타인들이 없이 혼자서 외롭게 살아가는 건 또다른 지옥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타인을 위한 배려와 사랑, 나 자신을 위한 혼자만의 시간 이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타인을 견딜 수 있는 자기만의 한계가 있다. 때로 세상은 너무도 버거운 곳이고 우리는 도망치고 싶어진다. 일본의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방안에 틀어박히는 사람)처럼 말이다."

표지
- 많은 이들이 혼자이곤 싶지만 외롭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인가.
- "균형을 잡는 건 어렵다.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지키면서 소속감 역시 이루는 건 어렵지만,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이 이기적인 것으로 치부되면 안 된다. 특히 여성의 경우, 아이를 낳는데 따르는 힘든 짐을 지고 있다면 더더욱 혼자 있고 싶을 수 있다. 반대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혹은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고 해서 당연히 외로워야 한다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 살아가게 되었다고 해서 당연히 외로운 사회는 뭔가 단단히 잘못된 공동체다."
- 인간 삶의 의미는 뭔가. 결국 모두 바위를 산 정상으로 짊어지고 올라갔다 내려감을 반복하는 시시포스들 아닌가.
- "외로움이라는 바위를 계속해서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걸 바꿀 수 없는 숙명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게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풀기 어려운 과제이긴 하지만 외로움이라는 바위는 우리가 사회의 복지 제도, 과로에 대한 저항, 교육, 상상력, 우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도전이라고 믿는다."

누구나 외롭다. 1인가구 칸막이 독방 벽 이미지. 사진제공=셔터스톡
-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대한 생각은.
- "굉장히 복잡한 문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찾아서 읽었는데, 주로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이 문제로 지적되더라. 특히 '학원'이라는 곳처럼 교육 현장의 뜨거운 경쟁이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게 마음 아팠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큰 고통이며, 치명적인 고문과도 같은 외로움으로 귀결한다."
- 한국인은 배고픈 건 견뎌도 배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도 있다.
- "인간의 본성이고, (내가 살고 있는) 북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런 인간의 본성을 잘 포착해서 영화나 문학 등으로 풀어내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공감과 각광을 받는 게 아닐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작별하지 않는다』등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