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혼자이고 싶지만 외롭고 싶진 않다? 당신만 그런 것 아니다"

본문

17494139967909.jpg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했거나, 낳지 못했던 여성이 외로움이라는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신간 『외로움의 책』(책사람집) 다이앤 엔스가 중앙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외롭고 싶지는 않다는 건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소속감 역시 필수"라며 "두 가지 모두를 추구하며 그 사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행복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여성 철학자인 엔스는 외로움과 관계에 대해 천착해왔다. 그가 이 책에서 "외로움에 관해 얘기하는 건 암에 걸린 사실을 털어놓는 것과도 비슷하다"거나 "나는 깨달았다. 그들은 내가 혼자 외롭기를 바란다는 것을"이라고 쓴 것은 외로움에의 고찰의 여정이 외로웠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모두가 외로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누군가에게) 목격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책의 끝을 맺는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선 나뿐 아니라 남 역시 필요함을 풀어낸 문장이다.

17494139969473.jpg

외로움과 사랑에 천착해온 철학자, 다이앤 엔스. 출판사 책사람집 제공

예술과 문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외로움과 사랑 등 인간의 본성을 고찰해온 그의 다양하고도 통섭적 연구는 미국 컬럼비아대 출판사 등에서 출간됐다. 300쪽이 넘는 이 책중 30쪽이 주석이다. 그는 질문지를 받은 뒤 "한국 독자들에게 의미있는 답을 하기 위해선 한국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한 뒤 답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그렇게 공들인 그와의 일문일답 요지.

책 원제가 "외로움을 고찰하다(Thinking Through Loneliness)"인데.  
"제목을 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혼자임(aloneness) 또는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는 각기 다른 개념이다. 모두가 혼자이고는 싶은데 외롭고 싶지는 않다. '외로움의 해석' 등 제목을 생각하다가, 외로움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고찰하게 됐고, 그 제목에 도달했다."  
한국의 인기 웹툰 제목은 '타인은 지옥이다'인데.  
"그만큼 타인과의 관계는 힘들다. 하지만 동전의 한 면만을 보면 안 된다. 물론 타인은 지옥일 수 있지만 그 타인들이 없이 혼자서 외롭게 살아가는 건 또다른 지옥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타인을 위한 배려와 사랑, 나 자신을 위한 혼자만의 시간 이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타인을 견딜 수 있는 자기만의 한계가 있다. 때로 세상은 너무도 버거운 곳이고 우리는 도망치고 싶어진다. 일본의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방안에 틀어박히는 사람)처럼 말이다."  
17494139971171.jpg

표지

많은 이들이 혼자이곤 싶지만 외롭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인가.  
"균형을 잡는 건 어렵다.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지키면서 소속감 역시 이루는 건 어렵지만,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이 이기적인 것으로 치부되면 안 된다. 특히 여성의 경우, 아이를 낳는데 따르는 힘든 짐을 지고 있다면 더더욱 혼자 있고 싶을 수 있다. 반대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혹은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고 해서 당연히 외로워야 한다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 살아가게 되었다고 해서 당연히 외로운 사회는 뭔가 단단히 잘못된 공동체다."  
인간 삶의 의미는 뭔가. 결국 모두 바위를 산 정상으로 짊어지고 올라갔다 내려감을 반복하는 시시포스들 아닌가.  
"외로움이라는 바위를 계속해서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걸 바꿀 수 없는 숙명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게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풀기 어려운 과제이긴 하지만 외로움이라는 바위는 우리가 사회의 복지 제도, 과로에 대한 저항, 교육, 상상력, 우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도전이라고 믿는다."  
17494139972668.jpg

누구나 외롭다. 1인가구 칸막이 독방 벽 이미지. 사진제공=셔터스톡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대한 생각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찾아서 읽었는데, 주로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이 문제로 지적되더라. 특히 '학원'이라는 곳처럼 교육 현장의 뜨거운 경쟁이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게 마음 아팠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큰 고통이며, 치명적인 고문과도 같은 외로움으로 귀결한다."
한국인은 배고픈 건 견뎌도 배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도 있다.  
"인간의 본성이고, (내가 살고 있는) 북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런 인간의 본성을 잘 포착해서 영화나 문학 등으로 풀어내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공감과 각광을 받는 게 아닐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작별하지 않는다』등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관련기사

  • 17494139974013.jpg

    제주 온 미쉐린 스타셰프 "내 요리 별로? 아내 말, 이유 알았다"

  • 17494139975357.jpg

    한국 여성 최초, 나폴레옹이 제정한 프랑스 최고 훈장 받은 주인공

  • 17494139976683.jpg

    "임윤찬 피케팅 실패? 슬퍼 말라" 뜻밖의 감동 알려준 첼리스트

  • 17494139977998.jpg

    "뺄셈의 미학 필요하다"…日왕실 홀린 이케바나 장인의 조언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3,497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