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Health&] 유방암 투병에 무너지던 삶…'나' 먼저 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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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정원 경희정원한의원 원장

전이성 유방암으로 항암 뒤 수술
한방이 간·소화기·기력 회복 도와
한약·약침 등 건강보험 확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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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 원장은 “암을 직접 경험한 한의사로서 한의학이 ‘살고싶다’는 마음에 응답할 수 있는 의학임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동하 객원 기자

“살아 있다면 5년 뒤 뭐 하고 계실 거예요?” 유방암 투병으로 무너져 가던 최정원(경희정원한의원) 원장은 이 질문에 다시 일어섰다. ‘아이들도 키워냈고, 일도 할 만큼 했다…’ 싶었던 때였다. 앞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 희미해져 있었는데,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살고 싶다’는 본능을 건드렸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살리고 있을 거예요.” 그렇게 답하며 살아갈 이유를 찾고, 삶 전체를 회복하는 일에 눈을 돌렸다. 그는 “삶이 병들었던 걸 놓치고 암만 없앤다고 다 나은 걸까요?”라고 묻는다.

2018년 가을, 두 아이를 돌보며 진료와 강의·저술, 대한여한의사회 회장까지 맡던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양쪽 유방에 다발성 병변이 발견됐고 겨드랑이 림프샘에 전이가 시작된 상태였다. 두 번의 항암 후 1년 뒤 수술받기까지 몸과 마음에 부작용이 심했다. 기존 치료 노선을 수정했다. 환자를 위해 만들었던 건강습관 프로그램을 자신에게 처방했다. 요양병원에서 생활습관의학 국제인증을 획득하며 체계를 다듬었다. 식이·명상, 감사일기, 발효한약, 그리고 삶을 다시 짓는 시간에 집중했다. 그는 “제가 살아낸 시간이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등불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한의학의 언어로 말하는 암과 회복의 의미를 최정원 원장에게 들었다.

한의학에선 암을 어떻게 보나.
“유방암은 간·위·심포(심장의 바깥막) 경락의 흐름이 막힌 것과 관계 깊다. 지나친 스트레스와 감정 억압, 관계에서의 상처, 자기 돌봄의 부재가 쌓여 간의 기운이 막히는 상태(간기 울결)에 머물면 유방 주변의 기혈 순환 장애로 이어진다. 그러면 염증·혹·종양이 진행되기 쉬운 구조가 된다. 나도 그랬다. 일에 쫓기고 마음은 억눌러두고,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았다. 한의학에서는 암을 몸과 마음이 함께 무너졌을 때 나타나는 신호로 본다.”
회복의 의미는 뭔가.
“내 몸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유방암을 경험하며 ‘치료가 끝난 후엔 예전처럼 살아야 한다’는 압박이 더 괴로울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병이 내 삶을 멈춘 게 아니라 쉼 없이 달려왔던 삶 자체가 병을 부른 것이다. 몸에 맞는 식사를 하고, 내 감정을 느끼고 말하며 잊고 지냈던 취미를 다시 해보는 것에서 진짜 회복이 시작된다.”
구체적인 치료 과정은.
“허해지고 막힌 기운과 마음을 해소해 주면 몸이 따뜻해지고 마음도 자연스레 정리되기 시작한다. 소화력 회복이 관건이다. 그리고 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고 말하는 환자가 많다. 억울함·분노·두려움·미움·슬픔이 쌓여 병을 만든다. 여성으로서의 존엄과 감각을 회복하는 일상의 습관들이 있다. 예쁜 수건 하나로 얼굴 닦기, 따뜻한 차 마시기, 매일 걷기, 좋아하던 음악을 다시 듣기,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편지로 써보기다. 살고 싶은 마음이 깨어나는 일들은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디딤돌이다. 한의학에서 병은 나를 바라보라는 신호다. 내 인생을 다시 짓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의 전환을 함께 한다.”
한방 치료, 언제 병행하나.
“유방암 환자에게 침 치료는 어깨나 림프 주변의 긴장을 풀고 수면과 소화를 돕는다. 뜸 치료는 면역이 떨어지고 손발이 차가운 환자에게 따뜻한 기운을 더해준다. 다만 염증이 남아 있거나 림프샘 절제 부위에는 자극을 피해야 한다. 암 진단 직후엔 침, 뜸, 부드러운 한약으로  수면·식사·배변 리듬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우선이다. 수술·항암·방사선 치료 중엔 염증 억제, 간 해독, 위장 보강, 기력 유지 중심의 발효 증류 한약과 순한 보조 요법이 도움된다. 직접 암을 겪으며 심신이 가장 약해졌을 때도 소화 부담 없이 흡수되는 약을 고민해 발효 증류 한약을 만들었다. 약재의 성분을 미세하게 분해하고, 유효 성분을 맑게 정제했다. 치료 후 회복기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환자가 많다. 삶의 감각과 정체성을 회복해 ‘다시 살아갈 힘’을 되찾는 것이 치료의 새 출발점이다.”

최 원장은 한의학을 둘러싼 정보 혼탁에 우려를 전했다. 전문성과 철학이 필요한 분야를 비의료인이 포장해 대중에게 말을 전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일반인은 분별하기 어렵다. 본인을 사칭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는 “학회 활동 이력과 유방암 투병 이야기, 치료 이력을 그대로 따라 한 가짜 의료인이 있어 환자들이 혼동했다. 한의사협회에서도 최초로 법적 대응을 했고, 상대는 벌금형을 받았다”고 했다. 뼈 아픈 경험이자 환자를 돕고 싶은 마음이 왜곡될까 두려웠다. 직접 나서 살아낸 시간, 환자와 부딪히며 찾아낸 회복의 원리를 정확한 언어로 전달해 환자가 더는 혼란스럽지 않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진 이유다.

정책적 제언이 있다면.
“환자가 방황하지 않게 하려면 제도적 울타리가 필요하다. 첫째로 한·양방 협진 기반의 통합 암 치료 클리닉이다. 암 진단부터 한자리에서 함께 논의·조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은 환자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구조다. 둘째로 한의 치료 건강보험 확대다. 한약·약침 대부분 비급여다. 완화의료, 재활, 말기 회복기 범위만이라도 지원이 절실하다. 생활습관의학 프로그램 국가 인증도 제안한다. 수면, 감정 조절, 식이요법, 명상, 호흡 같은 비약물적 처방을 한의학적 진단과 연결해 표준화된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장기 생존율과 삶의 질 향상에 도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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